국내외에서 인기를 얻어 시장의 검증을 받은 상품을 갖고 있으면서도 수출길이 봉쇄돼 울상을 짓는 업체들이 있다.  좋은 제품을 국내에서 생산하고 내수 시장에서 안정적인 판매수익을 올리면서  해외수출로 판로를 확장하는 선순환은 이들에게는 이룰 수 없는 꿈에 불과하다. 동서식품의 맥심커피믹스, 시리얼 오레오 오즈, 한국야쿠르트의 야쿠르트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동서식품 맥심 커피믹스, 시리얼 오레오 오즈 

국내 커피믹스 시장에서 압도적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동서식품은 '맥심 커피믹스'를 수출하지 못하고 있다. 이 제품은 우리나라에서 세계 최초로 개발한 발명품과 같은 제품이다. 1976년 동서식품이 처음 만든 커피믹스는 커피·프림·설탕을 한 봉지에 섞어 놓아 뜨거운 물에 털어 넣기만 하면 맛좋은 커피를 만들 수 있는 획기적 상품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약 40년 이상 커피업계의 스테디셀러로 군림해 온 커피믹스의 맛은 해외에도 알려져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의 필수 구매품목 ‘1순위’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특히 최근 포스트 차이나로 떠오르고 있는 인도에서 맥심 커피믹스에 대한 선호도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라고 알려져 있다.   

▲ 출처= 동서식품

아쉽게도 동서식품의 커피믹스는 해외로 수출되지 못한다. 이유는 바로 ‘맥심(Maxim)’이라는 커피 브랜드의 소유권이 동서식품에 없기 때문이다. 동서식품은 미국의 글로벌 식품업체 제너럴푸즈(General Foods, 현재의 크래프트 푸드)와 동서식품의 1968년 모기업인 (주)동서가 50 대 50으로 투자하고 기술을 제휴해 만든 합작회사다. 이 합작 계약에 따라 동서식품은 거의 모든 커피 제품에  제너럴푸즈가 보유한 커피 브랜드 맥심과 맥스웰하우스(Maxwell House)를 사용한다. 그래서 맥심이라는 브랜드는 동서식품 맘대로 해외로 수출할 수 없는 것이다. 40년째 수출길은 꽁꽁 막혀 있는 셈이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중국, 인도 등 큰 시장에서 커피믹스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에서 만든 커피믹스 제품도 해외시장에서 충분히 경쟁력이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동서식품은 커피 크림 '프리마'를 수출하고 있는 만큼 굳이 커피믹스를 해외에 수출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이러한 계약 관계는 식품 업계에서 비슷한 사례를 찾는 것이 쉽지 않을 만큼 굉장히 드문 경우지만 ‘놀랍게도’ 동서식품에는 비슷한 사례의 제품이 하나 더 있다.  동서식품의 시리얼 ‘오레오 오즈’다. 여기에는 글로벌 식품업체들의 아주 복잡한 인수합병 관계가 얽혀있다. 

담배 말보로(Marlboro)로 유명한 필립모리스(Phillip Morris)는 글로벌 식품기업 크래프트 푸즈(Kraft foods)와 시리얼 브랜드 포스트(POST)를 보유하고 있는 제너럴 푸즈를 인수한다음 두 회사를 합병한 제너럴 크래프트 푸즈(General-Kraft foods)를 보유하고 있었다.

▲ 동서식품 오레오 오즈. 출처= 동서식품

1995년 제너럴푸즈가  경영난으로 문을 닫자 포스트의 소유권은 크래프트푸즈로 넘어갔다. 크래프트푸즈는 1998년 비스켓 브랜드 오레오(OREO)를 보유한 필립모리스 산하의 제과업체 나비스코(Nabisco)와 함께 시리얼을 만들었으니 이게 바로 포스트 오레오 오즈(Oreo O's)다. 

동서식품은 크래프트푸즈 기술 제휴로 포스트와 오레오 브랜드를 활용한 제품 생산권을 얻어 2003년부터 오레오 오즈를 국내에서 생산해 판매했다. 그런데 돌연 2007년 크래프트 푸즈는 경영난을 이유로 포스트 시리얼 사업권을 매각하면서 동서식품은 일시 포스트와 오레오 브랜드를 활용한 제품을 생산할 권리를 보유한 세계 유일의 업체가 됐다. 그렇지만  미국에서 시리얼 브랜드 포스트는 단독 법인 포스트 홀딩스(Post Holdings)가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동서식품은 오레오 오즈를 해외로  수출할 수 없었다.

한국야쿠르트, 야쿠르트 

한국야쿠르트의 ‘야쿠르트’는 한국의 발효유 시장에서 절대 우위를 보유하고 있는 스테디셀러 제품이자 해외로 수출되지 못하는 대표적인 상품으로 꼽힌다. 한국야쿠르트의 전신은 1969년 11월 일본 야쿠르트혼샤(ヤクルト本社)의 유산균 발효 기술을 들여와 세운 합작회사 ‘한국야쿠르트유업’이다. 당시 합작사 설립 조건에는 “일본 야쿠르트 기술이 반영된 제품으로는 해외진출을 하지 않는다”는 조항이 있었다. 이 때문에 한국야쿠르트는 지금까지 주력 제품인 야쿠르트 수출을 비롯한 해외사업을 독자적으로 진행할 수 없다. 거의 40년간 수출길이 봉쇄된 셈이다.

▲ 한국야쿠르트 연구진. 출처= 한국야쿠르트

1981년 한국야쿠르트는 유산균 종균배양에 성공해 자체 유산균 기술을 개발하는 등 일본 야쿠르트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수출 판로를 개척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유산균 발효유 특유의 짧은 유통기한과 까다로운 냉장 조건, 국내 유통에 최적화된 방문판매 시스템의 해외시장 구축 어려움 등  현실적인 한계 탓에 한국야쿠르트의 제품 해외수출은 끝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대신 한국야쿠르트는 이런 제품 특성과  국내 유통에 최적화된 방문판매 시스템을 접목해 국내 판매에 집중하고 있다. 

한국야쿠르트는 일본야쿠르트와 관계되지 않은 별도의 사업으로 1983년 라면 브랜드 ‘팔도’를 론칭하고 제품 생산 첫해부터 해외로 제품을 수출해 그간의 수출갈증을 풀었다.  

한국야쿠르트 관계자는 "일본야쿠르트가 한국야쿠르트의 운영에 대한 의결권이 거의 없는데도 복잡하게 얽혀있는 양측의 관계는 우리의 성장에 큰 제약이 되고 있다"면서 "계속 제품을 연구해  일본 측이 간섭할 여지를 줄여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한국야쿠르트는 독자 기술력을 갖추고 있으며 윌, 쿠퍼스, 하루야채와 같이 차별화된 제품을 시장에 내놓고 있다" 면서 "유산균 연구를 통해 경쟁우위에 나설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식품업계 관계자는 "해외 식품기업들의 제조 기술에 의존한 과거와 달리 이제는 우리 기업들도 독자 기술로 경쟁력있는 제품을 만들 수 있는 여건을 갖췄다"면서  "국내 식품업체들이 장기적 안목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해외 기업에 종속된 브랜드나 기술 의존도를 반드시 최소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