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 청문회를 보면 옛날에는 인재를 등용할 때 어떻게 했는지 궁금해진다. 중국 수나라의 영향을 받아 우리나라도 고려 중기 이후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주기적으로 전문 분야별로 시험에 해당하는 소위 과거에 급제시켜 고위직 공무원에 임명했다. 그 내용은 간단히 ‘신언서판(身言書判)’을 기준으로 삼았다.

신(身)이란 사람의 풍채와 용모를 뜻하는 말이다. 이는 사람을 처음 대했을 때 첫째 평가 기준이 되는 것으로, 아무리 신분이 높고 재주가 뛰어난 사람이라도 첫눈에 믿음직스러운 풍채와 편안한 용모가 아니면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 또한 예의가 바르지 못하면 신뢰를 얻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신’은 외모로 풍기는 분위기인 지적인 풍모가 요구되었다.

언(言)이란 사람의 언변을 이르는 말이다. 이 역시 사람을 처음 대했을 때 아무리 뜻이 깊고 아는 것이 많더라도 말에 조리가 없고 말이 분명하지 못했을 경우, 언어 전달과 사고의 진정성과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게 되기 쉽다. 그래서 ‘언’은 진정성 있는 말을 하는지를 평가하는 수단이었다.

서(書)는 글씨(필적)를 가리키는 말이다. 예로부터 글씨는 그 사람의 됨됨이를 말해주는 것이라 하며 매우 중요시했다. 그래서 인물을 평가하는 데 글씨는 매우 큰 비중을 차지했으며, 글씨에 능하지 못한 사람은 그만큼 지적 능력도 평가도 받지 못한 데서 ‘서’는 개성을 읽는 중요한 판단이었다.

판(判)이란 어떤 사람이 사물의 이치를 아는 판단력과 정책적 대안이나 인간 사회를 보는 관점을 중요시했다. 사람이 아무리 외모가 뛰어나고 말을 잘하고 글씨에 능하며 사물의 이치를 깨달았다 해도, 정확한 행동방향이 없으면 그 인물됨이 출중할 수 없다 하며 소신이 얼마나 바르고 의지가 강한가 판단하는 기준이었다.

이상 네 가지 조건을 ‘신언서판’이라 해, 옛날에는 이를 모두 갖춘 사람을 으뜸으로 삼고 배려, 능력, 실천력을 검증해 다면적 평가로 중요한 인재를 뽑아 임명했다.

그런데 여기에는 주관적인 면이 많아 계량화하기는 힘들었다. 오죽하면 모 대기업에서는 짧은 시간에 많은 정보를 알 수 있다며 점쟁이를 심사위원으로 이용하기도 했겠는가? 이해가 간다. 최근엔 다면적 인성검사라는 것을 가지고 얼마나 원만한 인격을 가지고 있나 검사하는 방법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글씨는 자신만의 개성을 표출하는 창구이자 자신의 삶에 대한 태도를 드러내는 흔적이다. 꼭 긴 글이 아닌 간단한 서명만 보아도 개인의 분위기와 느낌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대체적으로 양인은 글씨가 크고, 힘 있게 끝까지 획수를 마무리한다. 그러나 음인은 글씨가 작고 주로 곡선이며, 받침이나 삐침 부분에 힘이 없다는 것이 특이하다.

태음인의 글씨는 성격처럼 둥글둥글하고 똑바르며 글씨의 크기나 간격이 일정하다. 너무 활자를 찍은 것처럼 규격이 딱딱 맞으며 항상 똑같은 글자로 글씨를 쓰며, 글 쓰는 속도가 느리다. 대체적으로 지식이 많은 것을 자랑하느라 많은 내용을 길게 나열하는데 결론이 무엇인지 알기 어렵다. 또한 명쾌한 결론보다는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고 책임을 면하기 위한 방어막이 곳곳에 숨어 있다.

폰트 글자도 궁서체나 굴림체로 획수가 부드러우면서도 지면을 꽉 채우는 것을 선호하고 붓글씨는 전서(篆書)체로 복잡하고 왠지 무엇인가 있어 보이고 비밀이 숨어 있어 한참 후에야 알아낼 수 있는 글자체를 좋아한다.

소음인은 글씨가 작고 힘이 없으며 필체가 약하다. 특히 받침이나 삐침에서 힘이 없어 보이고 세로로 된 획들이 약간 굽어 힘이 없다. 결국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귀찮은 모습이 역력하다. 마지못해 쓴 듯 내용이 선명하지 않으며, 때로 의욕이 넘치면 아주 철저하게 논리가 분명하고 강의록처럼 정돈이 잘된 것도 있다. 글씨가 일정치 않고 어느 곳은 몰려 있고 어느 곳은 횡-한 여백을 보여 어떤 감정의 호감과 비호감이 뚜렷하다. 대표적으로 학교 때 좋아하는 선생님의 과목은 성적이 좋고 비호감인 선생님의 과목은 과락인 경우가 많다. 주로 명조체나 바탕체를 좋아하고 서예에서는 글씨가 올망졸망 모여 있는 예서(隸書)체를 좋아한다.

소양인은 글씨를 빨리 쓰며 글씨가 가볍다. 전체적으로 간략하게 써서 빈 공간이 많고 받침을 끊지 않고 흘려버리고 다음 글자와 이어져 분구가 쉽지 않으며 너무 간략히 쓰려고 해서 한참 보아야 이해가 간다. 글 내용을 보면 흥분해서 쓴 글이 많고, 정의롭지 못한 부분에서는 감정이 그대로 나타나 있다. 모든 획이 처음에는 굵게 시작하나 끝이 약해지는 용두사미가 많고, 강의록이라기보다는 연설문 형식이 많고, 다소 과장을 해서라도 감동을 자아내려고 하며 때론 선동하는 듯한 내용이 많다. 고딕이나 돋움체를 선호하고, 붓에 힘이 들어가고 빠지는 것이 뚜렷한 굵고 가느다란 강약과 리듬과 같은 부분이 멋을 드러내는 행서(行書)체를 좋아한다.

태양인은 글씨가 비스듬히 약간 누워 있으며 받침이 강조되는 강한 마력을 지닌 글씨를 쓴다. 글자의 크기가 일정하지 않고, 잘난 것을 참았다가 드러내는 한층 멋을 낸 세상을 약간 삐딱하게 보듯 글씨도 그런 감정과 비웃음이 숨어 있다.

요즈음 컴퓨터의 발달로 글씨를 잘 안 쓰다 보니 옛날에 펜글씨를 쓸 때보다 손가락의 힘도 빠지고 글씨로 남기려 하지 않는다. 누구나 똑같은 글씨로 만나다 보니 이젠 개성도 없어지고 글씨를 쓰며 한 번 더 생각을 정리하던 인내심도 없어져서 갈수록 인성이 각박해지는 것 같다. 글씨 쓰기도 수양이라 생각하고 자판으로 폰트화하기보다는 손 글씨로 하고픈 말을 편지로 쓴다면 정성에 감동받아 부부싸움이나 직장 내 갈등도 줄어들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