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불어 민주당 제윤경 의원, 사진=제윤경 의원실

상사(商事) 소멸시효 5년. 상거래 관계로 생긴 채무는 5년이 지나면 강제집행 당할 책임이 없어진다는 의미다. 상법에 있는 있는 규정이다.

일반적으로 은행과 대출계약에 따라 대출받은 채무는 상거래 채무로 취급된다.

시효기간이 지나 강제집행 당할 책임이 없어지려면 그 5년동안 채권자의 `법적 청구` 행위가 없어야하는 게 조건이다. 

채권자가 5년 안에 채무자를 상대로 지급명령을 신청하거나, 대출금 반환청구 소송을 하거나, 반대로 채무자가 채무를 일부라도 상환하면 시효로 채무가 소멸하는 일은 중단된다. 시효의 연장과 달리 이를 '시효의 중단'이라고 한다. 추심행위와 같은 독촉은 법적 청구행위가 아니어서 시효 중단 효력이 없다.

따라서 대출을 받고 시효로 채무가 소멸됐다는 것은 채권자가 이 기간 안에 압류, 가압류, 소송(지급명령 포함) 등 채권 회수를 위한 법적 조치를 게을리했다는 의미다. 일종의 법적 패널티다.

금융기관은 이처럼 5년의 시효기간이 완성된 채권을 받을 수 없는 것으로 간주하고 회계장부상 회수가 불가한 '특수채권'으로 분류한다.

그러나 민법에는 이렇게 5년의 시효가 지난 채무라도, 다시 부활되는 길을 열어 두고 있다. 특수채권이라도 채권자가 소송을 제기했을 때 채무자가 채무를 인정하거나 소송에 대응하지 않으면 소멸한 채권은 다시 살아난다. 소멸시효 완성채권이 연장되는 법 원리다.

금융기관이 채권회수를 게을리한 결과 상환 책임이 없어진 채무가 다시 살아나는 경우는 어떤 상황일 때일까.

우선 채무자가 일부를 변제하는 경우다.  

김준하 한국파산회생변호사회 사무처장은 "금융기관의 채권추심이 계속되면서, 시효의 법리를 잘 모르는 채무자가 당장 채권추심을 피하는 방법으로 일부 변제하거나 채무를 인정하는 경우에 채무가 부활되는 일이 다반사"라고 설명했다.

채무자의 무대응도  이유가 된다.

채권추심을 피해 정상적으로 주민등록을 할 수 없는 채무자의 경우 시효완성 채권에 대응하지 못할 경우가 대부분이다. 주소지가 일정치 않아 금융기관이 5년 동안 채권회수 조치로서 법적 청구를 했는지 알 수 없는 일이 많다. 때문에 시효가 소멸됐음을 다투지 못한다.

현행 재판제도는 금융기관이 제기한 소송서류가 채무자의 주소 불분명으로 도달되지 않아도 재판은 판결이 날 수 있다. 이른바 '공시송달 제도에 의한 재판'이다. 재판이 있었음을 대법원 인터넷 게시판에 공지하고 재판은 종결된다.

이와 같은 재판은 채권이 시효로 없어졌다 하더라도 이를 법원에 가서 다툴 여지가 없다. 재판사실을 알지 못하기 때문.

무엇보다도 복잡한 소송을 대응할 법률적 지식이 없다는 점이 가장 큰 요인이다. 채무자는 소송에서 금융기관이 5년 동안 법적조치가 없어 시효가 완성되었다는 부분을 다투어야 하는데 그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장기 연체자인 채무자는 이를 대응하기 위해 변호사를 선임하는 등 법률비용이 발생하는데, 이 비용 부담으로 소송을 포기하기도 한다.

백미옥 주빌리은행 사무국장은 "소멸시효가 지나면 갚을 의무가 사라지니까 채권사가 채권을 소각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고 목록을 가지고 있다가 채권을 거래한다"며 "그 중 어떤 채권사는 무작위로 지급명령을 신청해 한 두건이라도 소멸시효가 연장되도록 하고, 채무자 중에 이의제기를 하는 사람이 있다면  원래대로 소멸시효가 완성된 거니까 손해 볼 일은 전혀 없다는 계산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채무자가 왜 이의를 제기하지 않느냐에 대해 백 국장은 "법원의 지급명령내에 문구를 보면 마치 `당신이 채무가 있으니 갚을 의무가 있다`는 해석하게 해, 채무자가 갚아야 한다고 착각하게 만든다"며 "법률 용어에 익숙치 않은 사람이면 이의 제기를 한다든가, 소멸시효를 따져 보기 쉽지 않고,  소멸시효를 알아보려고 원채권자에게 전화해도 채권이 이미 여러차례 거래되었거나, 아직 갚지 못해 채권자에게 직접 전화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금융권, 채권 10개 중 4개는 시효연장...수십년 채권 추심받아

특수채권을 보유한 금융기관은 채무자의 이와 같은 사정을 이용, 교묘하게 채권의 시효를 연장한다.

금융권이 보유한 특수채권 약 20조 1542억원 가운데 40%에 해당하는 8조 2085억원이 금융사의 소송 등으로 인해 소멸시효가 1회 이상 연장된 채권인 것으로 나타났다.

▲ 자료=제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3번 이상 소멸시효가 연장돼 연체된 지 25년 이상된 장기채권도 700억원이 넘었으며, 연체기간이 길어질수록 이자가 원금보다 많아지는 역전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연체 채권 10개중 4개 꼴로 소멸시효가 연장되고 있어 상법상 금융채권 소멸시효 기간인 5년이 무력하다는 지적이다.

국회 정무위 소속 더불어민주당 제윤경 의원이 금융감독원을 통해 각 금융사로부터 제출받은 '금융권 특수채권 현황' 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 

제 의원실은 "2017년 3월말 기준 전체 금융사(증권업, 대부업 제외)의 5년이상 연체된 채권 규모는 20조 1542억원(원금 11조 9660억원, 이자 8조 1882억원)"이라며 "이중 소멸시효가 1회 이상 연장된 채권이 총 8조 2085억원으로 전체의 40%"라고 분석했다. 

채권 10개 중 4개꼴로 법정 소멸시효 5년을 채운 후에도 소송 등의 방법으로 계속해서 연장되고 있다는 것.

소멸시효 1차 이상 연장된 비율을 살펴보면, 가장 많이 연장된 곳은 상호금융 68%, 저축은행 51%, 은행 30%, 보험 29%, 카드사 25% 순이었다.

시효는 한 번 연장되면 5년의 대출금 시효기간도 10년으로 시효가 늘어난다. 10년이 지난 후 금융기관이 다시 소송을 제기하면 10년으로 늘어난다.

처음 5년의 상사시효 대출금 채무가 이렇게 순차적으로 2번이 연장된다고 하면 채무자는 25년 동안 특수채권의 멍에를 지고 살게 된다. 

제윤경 의원은 "소멸시효가 연장돼 10년, 20년간 채무가 지속되면, 채무자의 경제생활이 아예 끊기는 등 사회적으로도 손해가 막대하다"며 "새 정부가 일시적으로 이런 장기연체채권을 소각하고, 죽은채권부활금지법(공정채권추심법)을 통과시켜 무분별한 시효연장을 막아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