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겜의 시대, 갓겜의 조건① <이어서>

핵과금러만 우대하는 불공평한 세상

페이투윈(Pay to Win). 대다수 한국 게임들의 과금 구조를 지칭하는 표현이다. 이는 과금을 해야 이긴다는, 무과금 유저가 과금 유저를 이길 수 없다는 법칙이다. 일반 과금 유저가 고과금 유저를 앞지를 수 없다는 원칙도 포함된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보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게임 밸런스가 과금 여부에 좌우되면서 90% 이상인 무과금 유저들의 불만이 쌓이는 구조다.

C 씨는 과도한 수익모델이 걱정스럽지만 게임사 일원으로서 이런 정책을 거스르긴 어렵다고 했다. “손해보지 않기 위해 안전한 구조로 개발할 수밖에 없어요. 수익이 크게 나지 않으면 게임 서비스를 중단한다든지, 팀을 해체한다든지 여러 케이스가 발생하기 때문이죠.”

게임사 입장에선 과금 유도를 열심히 하는 것이 ‘합리적 판단’일 수 있다. A 씨 설명에 따르면 국내 모바일 게임 유저 중 과금 유저 비중은 5% 미만이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게임사가 수익성을 극대화하려면 어떻게 유료 상품을 설계해야겠냐고 반문했다. “과금 성향이 큰 유저들이 반복적인 구매를 유도하도록 설계하는 것이 합리적 접근”이란 설명이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게임사는 딜레마에 빠진다. 90%가 넘는 무과금 유저가 불만을 품을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일단은 전체의 만족보단 수익을 택한 걸로 보이지만.

“사업적인 관점이나 회사 입장에서 보면 페이투윈 또는 랜덤박스(확률형 아이템)는 다른 방식에 비해 압도적인 매출이 발생하기에 포기하기는 어렵습니다. 흔히 황금알을 낳는 오리의 배를 가른다고 하는데, 매출에 연연해 이런 과금 방식과 게임 시스템을 지속하는 것은 언젠가 반동이 따라올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B 씨의 말이다.

정확히 말하면 과금 유저 중에서도 극소수 ‘핵과금러’(고과금 유저를 이르는 말)가 게임 매출을 책임지는 구조로 흘러가고 있다. 극수소 핵과금러가 쓰는 돈이 게임사 과금 수익의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 년 동안 100만원 이상을 결제한 고과금 유저는 전체 게이머의 0.15%에 불과하지만 매출 기여도는 41%에 달한다는 조사결과도 존재한다. 모바일인덱스가 발표한 ‘2016년 구글플레이 게임 카테고리 총결산 보고서’의 내용이다.

국내 게임 산업의 핵과금러 의존도가 높다는 걸 짐작 가능하다. 백화점이 명품을 찾는 VIP 고객 의존도가 높은 것과 유사한 형태다. 그러니 게임사 입장에서는 핵과금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코어(Core) 유저다. 고객 중의 고객이다. 일반 유저와의 차등대우는 필연이다. 게임이 핵과금러 올림픽처럼 바뀌면서 역풍으로 다수 유저들의 한국 게임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있는 형국이다.

어떤 출구 전략을 모색해야 할까. C 씨는 조심스럽게 의견을 내놨다. “한국 게임사만 유달리 (과금 유도가) 심하다는 건 편견일 것입니다. ‘마인크래프트’ 등 확률형 아이템 시스템을 사용하지 않고도 수익을 내는 게임들이 있으므로 이 부분은 게임사들이 일정 부분 반성하고 새로운 모델을 찾아낼 필요성은 있습니다.”

A 씨는 다소 근본적인 솔루션을 내놨다. “수익성 극대화를 위한 게임이 아니라 유저들의 좋은 플레이 경험을 위한 게임을 제작하고 글로벌 시장에서 더 많은 유저들을 끌어들이면 수익성 극대화 모델을 활용하지 않더라도 게임의 수익은 갈수록 높아질 겁니다. 제한된 한국 시장에서 점점 높아지는 개발비를 감당하기 위해 고과금 유저에 의존하기보단 글로벌 시장에 나가서 플레이의 재미로 유저들을 상대하는 게임을 제작하면 자연스럽게 이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 업계에 신선한 자극을 주고 있는 배틀그라운드. 출처=블루홀

 

‘똥겜 프레임’ 극복하려면

게임업계에 주어진 미션은 분명하다. 억울한 오명일 수 있는 ‘똥겜 프레임’을 벗기고 글로벌 갓겜을 꾸준히 개발해 산업의 지속성을 확보하는 일이다. 앞서 논의한 두 문제점을 온전히 해소하는 일은 미션 수행의 시작일 수 있다.

최근 업계를 자극한 사례 하나가 나왔다. 블루홀이 서비스 중인 ‘배틀그라운드’ 말이다. 모바일 게임이 아니며, RPG도 아니고, 한국 시장을 타깃으로 한 게임도 아니다. 과도한 과금 유도의 핵심으로 불리는 확률형 아이템 중심 수익모델도 채택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흥행 중이다. 출시 13주 만에 글로벌 매출 1억달러를 돌파했다. 전체 판매량의 95%가 해외에서 발생했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모바일 게임 시장의 확률형 아이템-결제 구조를 크게 벗어난 게임인데 나름의 성과를 거두고 있죠. 그렇기 때문에 국내 게임사들도 조금은 시야가 넓어져 이런저런 플랫폼에서 여러 시도를 해보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C 씨가 그랬다. 배틀그라운드와 같은 ‘특이 사례’가 일상화된 미래를 왜 상상할 수 없겠는가.

게임인 셋은 마지막으로 외적인 요인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규제당국으로부터 비롯되는 ‘과도한 규제’ 문제 말이다. 업계의 노력만으로는 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그들의 발언을 그대로 옮겨본다.

먼저 A 씨다. “한국에서 게임 산업과 게임 개발자들은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게임을 마약과 같이 나쁜 것으로 취급하는 정부의 정책이 크게 한 몫 했음은 두말할 나위 없습니다. 정부는 게임 산업과 게임에 대한 이미지를 나쁘게 만드는 정책을 폐지하거나, 이미지를 쇄신하는 정책을 쓸 수 있습니다. 결자해지의 마음으로 게임 산업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정부가 주도해서 바꿔나갈 수 있지 않나 합니다.”

다음은 B 씨의 말이다. “현재 정부에서 진행하는 자체등급분류 사업자와 같이 업계 자율을 존중하면서, 업계의 이익과 공공의 이익이 상충하는 부분에서 기준안을 확실히 마련해준다면 이용자들도, 기업들도 윈-윈 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또한 게임 규제가 풀려야 합니다. 게임은 미래입니다. 게임 기술이 IT 발전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합니까. 3D 엔진·기술의 혁명부터 인공지능까지. 모두 게임 기술의 산물입니다.”

C 씨도 목소리를 높였다. “PC게임 업계에 먼저 도입된 셧다운 제도라든지, 결제 한도를 둔다든지 하는 건 업계의 발전 측면에서는 좋지 않습니다. 규제가 너무 과도하면 해외 개발사들이 국내에 쉽게 유입되기 어렵고, 규제를 회피하는 편법들이 생겨나면서 마치 일본 게임시장과 같은 갈라파고스화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업계는 이미 자율확률규제안 등을 내놓으며 과도한 확률형 아이템 판매 구조를 제한하려는 자정의 움직임이 있습니다. 정부는 규제만 하려 하지 말고 시장을 육성하려는 제도적 고민을 같이 해야 할 것입니다.”

다시 A 씨는 인재 육성 차원에서 정부의 역할을 얘기했다. “게임 개발은 결국 사람이 핵심입니다. 재능 있는 게임 개발자들이 비전과 장인 정신으로 꾸준히 노력하다 보면 좋은 게임이 나오는 겁니다. 한국에서도 속칭 갓겜이라 불리는 훌륭한 게임이 지속적으로 나오길 바란다면, 게임 업계에 재능 있는 청년들이 계속 유입돼야 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게임을 자연스럽게 접해온 청년들은 성인이 돼서 게임을 접한 사람들과 비교해서 게임에 대한 이해가 매우 깊습니다. 게임 업계에서 신입 개발자들에 해당하는 청년들을 꾸준히 채용해서, 장기적인 안목으로 성장시켜나가야 합니다. 청년실업이 가장 중요한 문제 중에 하나라면, 정부 정책을 통해 게임 업계가 신입 개발자 채용을 장려하도록 할 수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갓겜의 조건 일부는 똥겜 프레임을 완전히 해체해버리는 작업으로 선취할 수 있을 거다. 확실한 건 업계엔 ‘억울하다’며 현실을 부정하기보단 지적에 수긍하고 해결책을 적극 모색하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란 점이다. 한국 게임산업의 고도 성장기는 지났다. 이젠 성숙기에 접어들고 있다. 어쩌면 진짜 시작은 지금부터다. 웃자란 틈새를 다시 다져나가야 할 지점에 그들이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