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팟캐스트에 나가서 나의 책 <파산수업>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팟캐스트와 일반 방송국에서 하는 녹음은 기본적으로 같다. 하지만,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팟캐스트는 조금 더 발언 수위가 높고 자유롭다는 것이다. 비속어나 방언 등에 조금 더 너그럽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녹음을 하는 내내 나도 마음속에 담아 두었던 감정들을 청취자들에게 전달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파산에 대한 솔직한 심정들을 쏟아내었던 것 같다. 출간 이후로 책의 많은 부분에서 관심을 받았지만, 이 팟캐스트는 유독 피터 한트케의 <소망없는 불행>편에 대해서 관심을 보였다. 이제껏 조명되지 않은 책의 소중한 부분을 같이 나눌 기회를 가진다는 것은 작가로서 분명히 행복했다.

피터 한트케의 <소망 없는 불안>을 다시 읽은 것은 집이 경매로 넘어가고 나서였다. 나는 급하게 책 속으로 빠지지 않으면 안 될 정도의 위로가 필요했다. 술을 먹자니 친구들이 바쁘다고 했고, 집에 들어가자니 아내가 걱정했다. 그래서 공원의 벤치로 갔다. 그리고 아침 출근길에 세계문학전집 중 가장 얇은 책을 골라 가방에 넣었다. 얇기 때문에 골랐던 이 책. 그러나 이 책이 주는 여운은 바로 어린 시절 잠겨있던 안방의 문으로 나를 이끌었다.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케른텐에서 발행되는 신문 <폭스차이퉁>일요일 자 부고란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다.

<토요일 밤 A면(G읍)의 51세 가정주부, 수면제 과다 복용으로 자살,> (P.9)

작가 한트케는 어머니의 장례식을 치르고는 7주가 지난 이후 어머니를 회상하기 시작한다. 그는 어머니의 자살소식을 듣고는 장례식에서부터 줄곧 글을 써야 하다는 강박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바로 글쓰기에 착수하지 못했던 이유는 ‘이 끔찍한 사건’을 최대한 객관화 시켜, 자신의 문장을 만드는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수면제를 먹고 깊은 잠에 빠져들기 전, 아들에게 보낸 유언장을 등기 우편으로 보낸다. 그리고, 아들은 우체국에서 보낸 영수증을 유품으로 발견한다. 이제, 아들은 수면제를 먹는 그 시점부터 어머니의 일생을 재구성 한다. 50년 전, 어머니가 태어나던 장소로 기억의 테이프를 되돌린다. 그는 마치 인터뷰처럼 이 자살사건을 재현한다.

만약, 작가의 엄마처럼 내 엄마가 자살을 한다면, 나는 과연 이렇게 글을 쓸 수 있을까. 집이 경매로 처분 되고, 법원 집달관들이 들이닥쳐 집안 살림을 정리한 그날, 허망해 하던 엄마의 표정이 아직도 아른거린다. 그 표정이 깊은 아픔으로 각인된 나는, 과연 한트케와 같이 ‘거리두기’ 혹은 ‘낯설게 하기’와 같은 기법으로 덤덤하게 엄마의 죽음에 대해 글을 쓸 수 있을까. 아니다. 나는 절대로 그렇게 거리를 두며 남 이야기하듯이 쓸 수 없을 것이다. 그러기에 이 <소망 없는 불행>은 나에게 너무나도 소중하다. 자살한 어머니의 이야기는 절대로 쉽게 쓰일 수 없는 글이다. 한트케는 이 작품을 착수하는데 7주나 걸렸다고 고백한다.

매일 아침 성당의 미사를 나가시는 엄마를 보며 나의 어렸을 적 기억을 떠올린다. 안방에서 간헐적으로 들리던 흐느낌, 코 푸는 소리, 그리고 토끼처럼 빨개진 엄마의 눈동자가 아른거린다. 나의 엄마야말로 만약 ‘소망’이 없다면 불행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녀는 매일 아침 미사를 통해 늘 소망한다. 그녀가 겪었을 수 많은 고통들로 인해 어쩌면 그 시절, 잠궈 놓은 안방 문에서 이미 그녀의 현세에서의 영혼은 자살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매일매일 다가오는 또 다른 ‘고통의 수면제’를 미사 참여를 통해 복용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한트케는 책의 말미에 이렇게 이야기한다.

“나중에 나는 이 모든 것에 대해 훨씬 더 자세하게 쓸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을 것이다. 이미 충분히 고통스러웠고, 어머니가 수면제와 신경안정제를 복용 했을 때와 같은 느낌을 이미 느끼고 있으므로.

"문학은 그녀에게 자신에 대해 생각하도록 가르쳐준 것이 아니라 그런 생각을 하기에는 이제 너무 늦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녀도 어떤 역할을 할 수도 있었을텐데. 이제 그녀는 적어도 한번쯤 자신에 대해 생각했고 때때로 시장을 오가는 길에 커피 한잔 정도 마시는 것을 허용했으며 사람들이 그것에 대해 무어라고 하든 별로 개의치 않았다." (P.58)

엄마가 혹시 자살을 한다면…. 이라는 가정을 해본다. 절대 그럴 수 없다고 본다. 그러기에 그런 ‘말도 안되는’ 가정이 가능하지 않은가. 그런데,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회사가 부도가 나자, 모든 자금이 막혔다. 당연히 은행 이자도 내지 못했다. 그러자, 집을 담보로 회사 자금을 대주었던 은행에서는 담보 설정을 했던 집을 경매로 처리하겠다고 통보를 해왔다. 이자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보니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경매로 현재 살고 있는 집이 없어진다는 사실이 피부로 와 닿지 않았다. 어쩌면 그 동안 잘 먹고 잘 살았기에 어떻게 하다 보면 ‘경매’까지는 가지 않겠지… 하는 안일함도 있었는지도 모른다. 정말 경매로 집을 날리게 될 줄은 몰랐다. 경매 일정을 알리는 등기우편이 법원으로부터 송달 되었지만, 여전히 우리는 그 ‘터전’에서 살고 있었다. 어떠한 대안도 없었다. 그래도 시간을 흘러 1차 경매일이 지나고 유찰되고, 2차에 낙찰이 되자, 입찰자는 우리에게 통보를 해 왔다.

2014년 5월 26일까지 집을 비워주십시오. 이사 비용은 500만원 입니다.

최후 통보였다. 그리고 모두가 회사에 가 있는 동안 법원에서 파견된 집달관들이 당일에 우리 집 앞에 와 있었다. 아파트에 살았던 우리는 ‘공무집행’이라고 써 있는 복장을 한 집달관들이 서성대자, 이웃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저 302호 무슨 일 났나봐.’ 서로 소곤대는 듯한 그들의 눈초리에 두려움과 고소함이 공존하고 있었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우리는 짐을 싸면서 동시에 ‘도대체 어디로 이사해야 하는지’ 장소를 찾아야 했다. 단, 3시간 만에 부리나케 이주할 곳을 찾은 우리. 새로 이사 간 곳에서는 평일에 저녁시간까지 이사를 한다며 불평이 대단했다. 이삿짐 차량으로 인해서 입주인들 주차하기가 힘들다는 이유였다.

이삿짐을 느닷없이 옮기던 그 날. 나는 혹시나 엄마가 자살이나 하지 않을까, 하는 공포감에 휩싸였다. 마루에 아무렇게나 나동그라진 짐들 사이로 제대로 몸을 펴시지도 못한 채 쪽 잠을 주무시는 엄마가 혹시나…, 하는 생각을 했다. 문득, 어렸을 적 잠겨있는 문 안에서 기척이 없는 엄마의 모습에 훌쩍이던 나의 모습이 현재와 동일시 되었다.

그러나 나의 엄마는 그런 두려움을 단숨에 종식시켰다. 그 동안 내가 기억하는 한, 단 하루도 빠지지 않으셨던 새벽 미사에 집이 경매로 날아 간, 바로 그 다음날에도 어김없이 참례하신 것이다. 하루아침에 보금자리가 없어진 그 상실감을 무엇으로 보상 받을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엄마는 강했다. 아마도 그날, 엄마는 새벽 미사에서 이렇게 기도하지 않으셨을까.

주님. 저희 집이 주님의 뜻 안에 경매로 처리하였습니다. 그나마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하게 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주님. 이것이 끝이 아님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주님 원하시는 곳으로 저희를 이끄소서.

엄마는 성당의 교우들에게 ‘경매’로 인해서 이사를 해야 했다,는 말씀을 직접적으로 하시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거짓말은 하지 않으셨다. 경제적으로 어려워져서 집을 정리해야 했다,고 담담하게 말씀하셨다.

<소망없는 불행>을 읽으며, 나는 일단 ‘자살’은 어림없다는 마음을 지니고 계시는 엄마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이 책을 읽으며 나의 머릿속에 엄마를 잃고 나서 훌쩍거리고 있는 작가 한트케의 모습이 그려졌다. 다가오는 새벽미사에는 이미 세상을 떠난 모든 엄마들을 위해 기도 드려야겠다. 오늘도 새벽 미사에서 간절히 기도를 하시는 엄마의 모습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주)아이메디신 이사. 금수저로 살아온 그에게 갑자기 닥쳐온 가족 기업의 부도는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었다. 남다른 감수성으로 일과 생활의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자 한다. 칼럼 <낭만적 기업회생 이야기>은 경영일선에서 만난 일과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문학과 함께 공존하고자 하는 그의 행보이다. 저서로 <파산수업> <구본형의 마지막 수업>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