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노연주 기자

게임은 한국사회에서 세대 간의 경계를 가르는 이정표다. 그리고 나는 그 보더라인에 서 있는 슬픈 이방인이다. 내가 속한 기성세대는 게임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아니면 적대적인 군상으로 구성돼 있다. 나의 대학 동기에 모임에 나가 게임을 이야기하면 ‘아… 내 아들이 하고 있는 것 같더군’이라고 답해 준다. 그래도 친구들이니 이 정도면 호의를 가지고 반응해 주는 수준이다.

반면에 나보다 아래 세대, 특히 30대 이하 세대는 ‘본 게이머(born gamer, 태어나면서부터 게이머)’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게임에 대해 친화적이다. 아니 그들은 게임이라는 하나의 가상 세계에서 매일 매일을 살아가는 새로운 인류다. 청소년들에게 있어 게임을 모른다는 것은, 특히 남학생에게 있어서는 사회적 연결망을 끊고 지내는 것과 같다. 누구도 로빈슨 크루소처럼 사회적으로 고립된 채 살아가고 싶지는 않다.

나도 원래의 신체 연령으로 볼 때는 게임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적대적인 그룹에 속해야 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게임 연구를 시작하면서 나는 몸은 기성세대에 속하지만, 머리는 그 세대와 전혀 다른 세대에 속한 이방인이 돼버린 것이다.

알베르 까뮈의 소설 ‘이방인’에 나오는 주인공 뫼르소는 그 이전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규범적이고 이성적인 인간이 아니다. 그는 어머니의 죽음에 무감각하고, 아랍인을 총으로 살해하고도 햇빛 때문이라고 말하는 모순된 인간이다. 실존주의자 까뮈가 생각하는 사회적 부조리와 모순 속의 인간이 바로 뫼르소다.

뫼르소처럼 나도 몸과 정신 세계가 다른 인간이 공존하는 실체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그 덕분에 나는 새로운 인류와 대화 가능한 인간이 되기도 했다.

내 주변의 부모들 중에는 자녀가 몰두하는 게임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많다. 소위 말하는 게임 중독이다. 아들의 게임 때문에 고민하는 지인의 가정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 집에 가자마자 나는 초등학생과 중학생이던 두 아들을 불러 대화를 시작했다. 이런 식이었다.

“지금 어떤 게임 하니?”

“어떤 종족을 선택했니?”

“레벨이 어느 정도고 아이템은 주로 어떤 걸 모으고 있니?”

“어떤 길드에 속해 있고 레이드는 좀 어떠니?”

한 시간에 걸친 대화를 듣고 있던 지인이 이렇게 한 마디 툭 던졌다.

“마치 외계어를 듣고 있는 거 같네요.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가 안된요”

그리고 한 마디를 덧붙였다.

“나는 애들과 전혀 대화가 되지 않는데 왜 교수님은 대화가 되는지 모르겠네요”

1990년대 후반부터 한국 온라인 게임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자료수집과 연구를 시작한 나는 귀국 후 온라인 게임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물입성을 이용해 교육한다면, 특히 경영학 교육에서 혁명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경영학 관련 학회에 출석한 나는 행사 마지막 회원 총회에서 발언을 신청해 이런 아이디어를 설명해 보았다. 당시 교수들의 반응은 놀라운 것이었다. 총회 자리를 채운 수백명의 교수들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침묵만이 흐르고 있었다. 찬성하는 사람도 없었고 반대자도 없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있는 나를 쳐다보는 교수들의 얼굴에는 ‘저 사람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지?’라는 의아함과 함께 묘한 정서적 불일치가 떠돌고 있었다.

지금부터 15년 전의 일이다. 15년 전이니 지금 생각해 보아도 교수들의 반응이 무리는 아니다. 더구나 학회의 교수들은 태반이 머리가 반백이 된 중장년 교수들이 많았다. 온라인게임이 무엇인지 그 자체를 모르는 분들에게 게임을 활용한 경영학 교육을 이야기하고 있었으니 이것은 마치 자동차를 모르는 사람에게 고속도로를 깔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다를 바 없지 않은가.

내가 그런 발언을 할 때 교수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지만 학회에서 보여준 교수들의 무반응은 나에게 충격과 동시에 오기를 줬다.

그날 이후 나는 온라인 게임을 이용한 혁명적 교육을 보여주고야 말겠다고 결심한다. 그리고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G러닝(G learning, 게임 기반 학습)이라는 개념을 만들게 된다. 하지만 그 과정은 고난의 연속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진행형이다. 그 점에서 세상은 너무도 빠르게 변하고 있지만 또 너무도 변하지 않는다.

게임은 지금도 아웃사이더 컬처다. 영화도 그랬다. 1895년 12월 28일 뤼미에르 형제는 프랑스의 한 카페에서 자신들이 만든 영화를 사람들에게 상영했다. 상영된 세계 최초의 영화는 ‘열차의 도착’이라는 50초 내외의 짧은 작품이었다. 이 영화는 스토리도 없이 단순히 열차가 도착하는 장면만 보여주는 것에 불과했지만 19세기 후반의 사람들에게는 충격 그 자체였다. 이를 본 카페의 사람들은 경악했고, 스크린에서 열차가 진입하는 장면이 나오자 모두들 혼비백산해 비명을 지르며 달아났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스크린의 열차가 들어오는 장면을 보고 아무도 극장에서 뛰쳐나가지 않는다.

지금부터 다시 15년이 지나면 게임은 메인스트림의 컬처가 될 수 있을까? 만일 그런 날이 온다면 32학번 대학생들에게 이렇게 질문하고 싶다. ‘20년전 여러분이 태어날 당시 게임은 사회적 비난의 대상이었다’고. 그들의 표정이 벌써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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