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 경매 역사에는 몇 가지 전설로 전해지는 모델들이 있다. 가령 체 게바라가 체포되었을 때 차고 있었던 롤렉스 GMT 마스터라든지, 김재규가 박정희를 위해 거금을 주고 파텍필립에게 주문한 (박정희가 죽는 바람에 구매를 취소했음에도 파텍필립 스스로 완성도가 너무 높아 제작을 강행했다고 알려진) 시계와 같은 것이 그 예다. 이런 모델들은 어느 날 갑자기 대규모 경매에 나와 한화 10억~20억을 호가하는 가격에 낙찰되지만, 가격보다 시계 자체가 더 큰 주목을 받는다. 이런 시계들은 마치 상상 속의 동물인 네시나 빅풋과 같이, 모습은 본 적 없고 시계에 얽힌 스토리만이 전설처럼 남아있기에 마니아들은 그러한 ‘전설의 시계들’이 세상에 나와 언제가 됐든 그 신비로운 모습을 꼭 목격할 수 있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얼마 전, 위와 같이 전설로 전해지는 시계 중 하나가 실제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당장 올해의 경매에 등장한다는 소식이 알려지며 수집가들과 자산가, 심지어는 재테크를 위한 업자들까지 경매 출품을 기다리고 있다. 이번 경매에 등장할 전설 속 네시의 이름은 바로 롤렉스 “폴 뉴먼 데이토나”다.

 

무엇이 데이토나를 폴 뉴먼으로 만드는가

▲ 롤렉스 데이토나 레퍼런스 6239의 두 모델. 출처=Antiquorum

호딩키에서 재미있는 비교를 본 적이 있다. 사진 속 두 시계는 동일하게 레퍼런스 넘버 6239, 1967년대에 만들어진 시계다. 하지만 왼쪽에 있는 시계는 2013년 12월 약 2천5백만 원에 팔렸고, 오른쪽에 있는 시계는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약 1억 원에 팔렸다. 과연 둘 사이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바로 오른쪽은 폴 뉴먼 데이토나로 불리는 다이얼을 장착한 시계고 왼쪽은 아니라는 것뿐이다. 그 외에는 동일한 시계다.

그렇다면, 폴 뉴먼 데이토나가 유명해진 이유는 무엇일까. 폴 뉴먼 데이토나는 발매 당시 너무도 특이한 다이얼의 흔히 말하는 “비주류”의 시계였다. 폰트, 아웃 트랙의 구분, 붉은색의 사용 등 파격적인 요소를 담은 이 시계는 전통적인 데이토나의 다이얼을 선호했던 롤렉스의 고객들에게 외면을 받았고, 적은 판매 성과는 생산량과 정비례할 수밖에 없었다. Shear Time의 앤스류 쉬어는 일반적인 롤렉스 다이얼이 20개 만들어질 때, 폴 뉴먼 데이토나 다이얼은 1개 정도의 비율로 생산되었다고 추정하고 있다. 그리고 1960년대에서 1970년대에 인기가 적었던 시계들이 세계에서 가장 핫한 빈티지 시계가 될 때, 폴 뉴먼 데이토나 역시 세계에서 가장 소유하고 싶은 빈티지 중에 하나도 등극했다. 여기에 폴 뉴먼이 해당 시계를 착용하면서 그 가치는 천정부지로 솟았다.

 

폴 뉴먼을 향해 쏴라

▲ 이탈리아 잡지 화보에 등장한 가장 유명한 폴 뉴먼과 데이토나의 사진. 출처=Jake’s Rolex World

‘내일을 향해 쏴라’, ‘스팅’, ‘탈출’의 공통점은 시대를 상징하는 영화라는 점이다. 이 오래된 영화들은 아직도 새로운 마니아들을 만들어내고 있을 정도다. 이 영화들이 가진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는데, 바로 주연이 폴 뉴먼이라는 점이다. 영화와 함께 폴 뉴먼은 한 시대를 상징하는 문화의 아이콘이었고, 그가 영화에 데뷔했을 때부터 별세한지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폴 뉴먼과 함께 그가 입은 옷, 그가 먹은 음식, 그가 다녀온 장소를 향유하는 것은 지금까지도 ‘멋진 일’로 여겨져 사람들의 지갑을 열게 할 정도다. 폴 뉴먼은 생전에 인기가 많지 않았던 레퍼런스 6239의 특이한 데이토나를 착용하고 다녔는데, 무려 이탈리아 잡지의 커버 사진을 찍을 때에도 해당 시계를 착용할 정도로 애정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많은 마니아들은 이때부터 해당 데이토나가 <폴 뉴먼 데이토나>로 불렸다고 추측하고 있다.

▲ 체 게바라와 그의 롤렉스. 출처=핀터레스트

롤렉스의 모델 역사상 000의 시계라고 불린 것은 폴 뉴먼 데이토나가 유일하다. 심지어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가 착용했던 롤렉스의 시계조차 평범하게 레퍼런스 넘버로 불린다. 단지 폴 뉴먼이 착용했다는 것만으로 해당 모델들 전부가 폴 뉴먼 데이토나로 불리며 같은 6239모델 중에서 4배, 5배 이상의 가격으로 팔린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며 그만큼 해당 모델이 희귀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 폴 뉴먼 데이토나의 가격 변화 추이. 출처=호딩키

1993년부터 2013년까지 폴 뉴먼 데이토나의 경매 가격 상승가를 조사해놓은 표가 인상적이다. 그 어떤 브랜드의 어떤 시계도 이런 가격 상승을 보인 적이 없다. 매년 세계 경매업계의 주역은 언제나 폴 뉴먼 데이토나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단지, 이것이 폴 뉴먼이 찼던 것과 동일한 디자인의 시계라는 이유에서다.

 

네시의 귀환

▲ 폴 뉴먼이 생전에 착용했던 데이토나 레퍼런스 6239. 출처=필립스

다이얼이 폴 뉴먼이 착용했던 모델과 동일하다는 것만으로 가격이 뛰는 폴 뉴먼 데이토나. 그런데 올해 10월, 필립스 뉴욕 경매에 실제로 폴 뉴먼이 생전에 착용하고 다녔던 ‘바로 그’ 데이토나가 나온다.

▲ 폴 뉴먼 데이토나 레퍼런스 6239의 백 케이스. 출처=필립스

백 케이스에는 아내 조앤 우드워드가 새긴 ‘안전 운전 하세요(Drive Carefully me)’라는 사랑스러운 말까지 적혀있다. 그야말로 업계에서 소문만 무성했던 <전설>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필립스 측에서는 약 11억 원대를 예상하고 있지만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100억 원(?!)까지 예측을 해보는 사람들도 있다. 폴 뉴먼 데이토나의 전설이 벌써 현실의 시계업계에 또다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11억 원에 낙찰이 되든, 100억 원이 되든 그것은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닐 것이다.

▲ 폴 뉴먼과 그의 데이토나. 출처=Douglas Kirkland Corbis via Getty Images

‘이번에 마을에 용사가 나타났던데, 그가 정말 용을 처치할 수 있을까?’ 와 같은, 전설에 대한 즐거운 주전부리. 폴 뉴먼 데이토나의 경매 출현은 그저 가끔 있는 화젯거리가 아니라 내가 살고 있는 시대에 전설의 시계를 실제로 목격하고, 그 가격을 서로 논의해볼 수 있는 전 세계 시계 마니아의 이벤트다. 10월 경매까지 남은 시간은 단 4개월. 당신이 시계 마니아라면 전설이 선사한 이 소중한 디데이를 신나게 즐겨보길 바란다.

 

<참고문헌>

Rolex, Jake’s Rolex World, Antiquorum, hodinkee, phili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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