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케이션 업무를 한 뒤로 제대로 휴가를 가 본 적이 없다. 십여 년간 휴가 날짜를 합쳐봐야 열흘 남짓 되려나 모르겠다. 거의 포기하고 살았다. 덕분에 집에서는 찍히다 못해 내놓은 아빠가 되었다. 커뮤티케이션 팀장 십년 정도까지만 해도 집사람이 해마다 휴가 계획을 묻기도 했으나, 그 뒤로는 휴가에 대해 얘기도 꺼내지 않았다. 방학한 아이들과 여행 떠나기 하루 전쯤 통보했다. 덕분에 가족이 휴가간 집에서 홀로 휴가 아닌 휴가를 보냈다.

회사에 이슈가 많기도 했거니와 언제 올지 모를 날카로운 취재 문의에 대신해 줄 사람이 없었다. 포기하면 되려니 했지만 한시도 맘을 놓을 수 없는 형국이라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웬만한 다른 업무라면 담당자가 자리에 없거나 휴가 중이라면 미뤄지기도 했겠지만, 언론은 기다려주는 법이 없다.

휴가지에서 난처한 취재 전화라도 받게 되면 상황은 더 힘들어진다. 회사 내에 있다고 통화 내용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외부에서 취재 연락을 받으면 불안감이 더하다. 관련된 자료가 머릿속에 있긴 하지만, 눈 앞에서 바로 확인 가능한 것과 엄연히 다르다. 피해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휴가지서 받는 취재 문의는 차라리 악몽

문제 기사가 나왔을 때도 회사에 있다면 보고하고 바로 달려가서 어떻게 해볼 수도 있지만, 휴가지에서는 그러지 못하기에 연락 자체가 악몽이다. 그러다 보니 휴가를 쓸 엄두를 내지 못했다. 가끔 아침에 눈을 뜨니 12월 마지막 날이라 아까워서 오전 반차를 겨우 몇 번 쓴 적이 있다.

초년병 시절부터 겪은 혹독한 경험들은 노이로제처럼 괴롭혔다. 해가 뜨는 것이 무서웠다. 2002년 검찰 고발과 함께 진행된 1심 소송에 이은 승소, 전국적 관심 폭발, 후속 제품 준비 등이 이어졌다. 진짜 대체에너지로 출시할 예정이었다. 이름하여 ‘휘발유를 대신할 지구상 유일 물질’이라는 의미를 담아  ‘Sole’과 미지의 물질 ‘X’를 결합해 쏠렉스로 명명했다.

그때 핸드폰을 2개를 가지고 다녔는데, 출근할 때 석간 매체 기자들 전화로 시작해서 하루 종일 잠시도 쉬지 않고 번갈아 대며 벨이 울린 적도 있다. 주말은 물론 명절연휴 때도 계속이었다. 명절에 시골에서도 전화에 계속 매달렸다. 언론은 사소하고 예상치 못한 것까지 집요하게 파고 들었다.

통화를 하고 나서 검색을 해보면 어김없이 기사가 올라와 있었다. 명절을 하루 앞두고 차례 준비에 여념이 없을 그 시각에도 기사는 올라왔고, 친척들과 함께 있다가도 벨이 울리면 부리나케 핸드폰을 들고 나가기 일쑤였다. 별 얘기를 하지 않아도 기자들은 뉴스를 쐈다. 어떻게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어서, 번번이 고향집에 내려간 경영진에게 불편한 맘으로 연락하는 수 밖에 없었다.

“얘네들은 명절도 없나? 왜들 이래? 다들 미치기라도 한거야?”

명절을 하루 앞 둔 연휴에 당번을 서면서 남들 하지 않을 때 뭔가 하나 건지고 싶은 심정은 이해가 된다. 하지만 입장 바꿔 놓고 보면 어땠을까?  연휴 내내 맘은 콩밭에 있었다.

“할 수 없지 뭐.”

“예, 연휴 잘 보내십시오.”

10년차 정도 되어서야 농담도 하고 넉살도 부리지만 그래도 매번 뭔가 헤집는 취재에는 당황할 수 밖에 없다. 떠 넘길 수도 없고 누가 대신 해 줄 수도 없다. 소수 인원으로 일당백을 해야 했다.

기본적인 베이스는 인간 관계다. 같은 말이라도 다른 사람이 했을 때는 오해 생기기 십상이다. 민감한 이슈에서 단어 한 두 개 잘못 나갔을 때 그 여파는 엄청나다. 조사 ‘은’을 ‘도’로 바꾸는 것만 해도 상당한 의미 차이가 있다. 잘 형성된 관계가 커뮤니케이션 업무에서 가장 중요한 밑천이다.

 

약속 잡기 귀찮은 사람에게 관계는 없다

모 유통업체 대표이사를 지낸 분과 대화 중에 기자들과 얽힌 이야기가 나왔다.

“일년에 약속이 적을 때는 300건 정도 많을 때는 400건 정도였어요.”

“무슨 약속이 그렇게 많았나?”

“365일 중 근무일수가 250일 정도 되고 매일 점심 약속이 있었고, 저녁은 일주일에 기본적으로 두어 번은 있으니 100건 정도가 됩니다. 합치면 기본적으로 350번 정도가 됩니다. 실제 그보다 더 많았지만요.”

“대단하네. 특수한 경우였겠지, 내가 사장으로 있을 땐 어쩌다 한번 기자들과 술 한잔 하는 정도였지. 난 기사 때문에 언론중재위원회에 나갔던 적도 많아.”

“예? 그렇다고 언론중재위원회에 그렇게 나가셨을 상황이…. ?”

“이상한 기사가 뜨면 최고경영진이 제소하라고 하는 통에 어쩔 수 없었어.”

“……..”

대화를 나누다 보니 약속 횟수에서 언론과 싸운 얘기로 흘렀다.  경험은 있지만 언론과 여론을 피상적으로만 생각하고 저지르기 쉬운 대표적인 사례가 아닌가 싶다. 아무리 발이 넓어도 모든 기자를 다 알 수는 없다. 특히 경제 산업의 범위를 벗어나 사회부에서 취재하게 되면 감당하기 힘들다. 회사로서는 자존심을 세우면서도 가성비 높고 효과적인 방법으로 언론중재위에 제소하는 방식을 택했던 것이라 생각된다.

제대로 된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지 않았다는 증거였다. 그런 이슈가 있거나 예견 된다면 미리 커뮤니케이션의 길목에 진을 치고 있어야 한다. 가능하다면 매체별로 그 이슈를 취재하는 기자단을 파악해 둬야 한다. 어떻게 해서라도 그들 주변을 어슬렁거려야 한다. 회사 입장이나 상황에 대해서 알릴 것은 알리고, 가까워지면 결과는 훨씬 나아진다. 그게 아니고 이리 저리 피하기만 하면 예상치 못한 폭탄을 만나게 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평소에 시간 투자하고 노력을 쏟아야 한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듯이, 이슈 많은 회사의 커뮤니케이터에게 휴가는 언감생심이다.

 

미안! 황금 연휴에는 결혼식이 줄줄이다

2010년 여름이었다. 재무개선에 돌입한 지도 삼 년째가 되던 그 해는 그룹의 최고경영자도 구원투수로 영입해서 속도전을 펼쳤다. 그 해 역시 휴가는커녕 주말에도 불려 나가기 일쑤였다. 일요일 오전 모처럼 아이들과 함께 시내 수영장으로 향했다. 차도 밀렸고 표를 사서 입장하는 데만도 적잖은 시간을 허비한 뒤에야 물가로 자리했다.

주먹밥으로 허기진 배부터 채우고 아이들을 목욕탕인지 수영장인지 구분도 되지 않는 물 속에 들여보냈다. 잠시 땀이라도 식힐 겸 한강을 바라보며 산책 중이었는데 문자메세지가 하나 날아왔다.

“비상회의 소집, 오후 5시 대회의실”

가족들은 두고 혼자 가려 했지만 그러고 싶지 않다는 집사람 뜻에 도착한 지 삼십 분도 안 되어 황급히 옷을 갈아 입히는 아빠 엄마를 쳐다보던 아이들 표정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되돌아가는 내내 온갖 생각에 머리가 복잡했다. 비상회의는 재무적 성과에 대한 점검이었다. 사고가 아니어서 다행이었지만 휴일은 날아가고 없었다.

이슈 상황이 아니더라도 주말에 쉬기만 하는 커뮤니케이터는 없다. 예고 없이 발생하는 장례식, 황금 연휴면 어김없는 결혼식이 줄줄이 있고, 그렇지 않으면 기사 때문에 주말 내내 발을 동동 구르거나 언론사를 찾아 헤매기 일쑤다. 일요일 오후 마트에서 장 보기도 꺼려했다. 가족들 원성이 자자하다. 그야말로 월화수목금금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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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언론이 쉬는 날이 커뮤니케이터가 쉬는 날이다.

2. 약속 잡기 귀찮은 사람에게 관계는 없다.

3. 커뮤니케이터가 소홀하기 쉬운 가족도 신경 써야 할 대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