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면 보고? 그게 필요하다고 생각하세요?”

이 대사가 어디서 나온 것인지는 독자들이 더 잘 알 것이다. 2015년 1월 12일에 진행됐던 대통령 신년기자회견장에서 나온 말이다.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당시 그 장면을 뉴스로 되새겨 보면서 충격을 금할 수 없었다. 국가를 대표하는 국가 원수요 모든 행정부의 실질적인 권한을 갖는 자가 대면보고를 무시한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힘들었다.

예전에는 전화나 이메일도 없었기 때문에 대면하는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주를 이룰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발달한 지금은 대면 보고가 필요 없고 메신저, 전화 또는 이메일로 내용만을 알리기만 하면 커뮤니케이션이 되는 것일까?

 

간접 소통이 간첩(?)을 키운다

대면 보고를 기피하는 자세를 꼬집은 언론 매체가 적지 않았다. 대면 보고를 피하고 보고서만 신뢰하는 통치방식은 대통령과 각료, 국회 그리고 국민 사이에 커다란 간극을 만들어 버렸다. 누가 이 사이에 끼어들어 농간을 부리는 지도 알 수 없기에 국정농단 게이트는 피할 수 없었는지 모른다. 머리를 맞대고 함께 해결해 나가고자 하는 열린 마음이 없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기득권을 혼자 독차지 하기 위해 움켜쥐고 이를 나눠 가지려는 마음이 전혀 없기 때문에 발생된 일이기도 하다.

전화나 메일도 주요 커뮤니케이션 수단임은 분명하지만 어디까지나 대면하여 이루어지는 커뮤니케이션을 보조하는 수단이다. 대면하는 커뮤니케이션이야말로 인간 대 인간이 만나서 감정, 표정을 포함해 종합적인 것을 나누는 행위이다. 마주 보고 이야기를 나눌 경우 한 두 마디면 무엇이 문제인지 알 수 있다. 서면에서는 나타나지 않은 미묘한 문제점들까지 전달이 가능하다. 만나서 이야기 하게 되면 보고서의 활자는 그 다음이다. 기억을 되살리는 데에 활용되는 정도고,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쓰일 뿐이다.

2013년 이후로 전정권의 청와대는 회식하는 문화도 거의 없었다고 한다. 술을 마시는 것만 회식이 아니라 함께 식사하며 의견도 교환하고, 몰랐던 것도 알게 될 뿐만 아니라 감정과 분위기를 함께하며 조직 단결도 강화하는 자리가 회식이다. 드라마에서나 봤던 것처럼 회식이 꼭 사람들을 억지로 동원하여 술이나 먹고 시간이나 축낸다고 생각해서인지 그런 문화가 자취를 감춰버렸다고 한다. 이렇게 커뮤니케이션을 단절해버린 상태에서 나타날 수 밖에 없는 것이 문고리 권력과 십상시 같은 인물 아니면 비선실세다. 필연적일 수 밖에 없다. 위기에 처하면 할수록 그런 조직은 커뮤니케이션이 더 어려워지고 특정 소수에게만 기댄다.

청와대나 정치만 그런 것이 아니라 회사 조직에서도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은 말로 표현을 할 수가 없다. 회사 일이 모두 보고서를 기안하고 결재를 받아서 움직인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것은 결과로 나타나는 것일 뿐, 실제 조직생활의 8할이 커뮤니케이션이다.

 

커뮤니케이션 불량은 망가진 시스템의 증거

경험에 의하면 대기업들의 경우 적어도 수천 명 이상이 국내외 곳곳의 법인과 사업장에서 근무하기 때문에 어떤 사안에 대해 커뮤니케이션 하기에는 시간도 더 많이 걸리고 힘이 들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줬다는 것은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이 제대로라는 말과 같다. 비록 적은 인원이더라도 회사가 아직 단계에 오르지 못했다면 그 커뮤니케이션 시스템도 비교할 바 못 된다. 이런 조직일수록 커뮤니케이션 시스템 미비로 인하여 웃지 못할 촌극들이 자주 벌어진다. 마치 ‘입 없는 아나운서’와 ‘귀 없는 청중’간의 대화가 그 짝이 아닐까 싶다. 입 없는 아나운서가 하는 말을 귀 없는 사람들이 듣고 이행하는 것처럼 비춰진다.

커뮤니케이터들의 특권 중에 하나가 회사 대소사에 다 관여하게 되는 것이다. 예전 조선시대 홍문관 사헌부 사간원 시절부터 왕의 지근에서 소통을 담당해 온 역할과도 일치한다. 한 회사의 커뮤니케이션 책임자는 그룹 전략회의에서부터 각종 회의, 그리고 신입사원 대상 설문조사에 이르기까지 내부 커뮤니케이션이라면 바닥부터 꼭대기까지 꿰고 있어야 한다. 거기서 커뮤니케이션 업무가 시작된다.

글로벌 대기업과 같이 수만 명이 전세계 각 지역에 퍼져서 근무하는 조직도 커뮤니케이션은 일사불란하다. 컴퓨터로 유명한 HP 같은 회사는 공장 벽면에 ‘커뮤니케이션하고 커뮤니케이션하고 또 커뮤니케이션 하라’고 써 놓았단다. 또 GE 같은 기업의 경우 열 사람과 커뮤니케이션하기 위해서는 열 번을 커뮤니케이션해야 한다는 원칙을 지켰다. 글로벌 대기업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삼성을 비롯한 많은 국내 대기업들도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중요성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다.

커뮤니케이션이 힘든 조직일수록 구성원 상호간의 신뢰가 약하다. 이런 조직일수록 비선라인이 발달해 있다. 삼성 창업자 이병철 회장이 강조한 ‘의인물용 용인물의 (疑人勿用 用人勿疑)’라는 말을 웬만한 기업가들이면 숱하게 들었겠지만 실제 그대로 행하는 곳은 많지 않다. 일을 시켜 놓고도 못 미더워 다른 이를 시켜 감시하고 견제하는 일이 곳곳에서 벌어진다. 견제와 균형이라는 원칙에서의 경영이 아니라 TOP의 눈과 귀가 곳곳에서 보고 듣고 고자질하게 한다. 보고를 담당자로 하여금 정식 보고라인을 통해 받기 보다 문고리 실세로 하여금 사심 가득한 측면에서 조망된 의견을 받게 된다.

 

단순 지시와 보고, 반도 못한 커뮤니케이션

‘지시’를 커뮤니케이션으로 오해를 하는 경우도 많다. 지시 사항과 이에 대한 결과를 보고하는 것으로 모든 커뮤니케이션은 다했다는 생각이다. 아마 어떤 사안에 대해 뭔가 지시하고 지시대로 이행해서 결과를 보고하면 커뮤니케이션이 제대로 된 것 아닌가 하고 오해하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국어사전에서 커뮤니케이션이라 함은 ‘사람들끼리 서로 생각, 느낌 따위의 정보를 주고 받는 일로써 말이나 글, 그 밖의 소리, 표정, 몸짓 등을 포함한다’고 되어 있다.

예전에 근무하던 회사에서 해외 오퍼레이션을 담당했던 적이 있었다. 전 세계 260여 브랜치 근무자들이 서로 연락을 주고 받았는데 주사용 수단은 팩스였다. 아침에 출근하면 6개의 팩스에서 수신된 분량만 200장이 넘었다. 전날 요청한 답변이나 세계 각지에서 요청하는 사안들이 뒤섞여 있었다. 긴급 사안일 경우에는 ‘URGENT’ 도장을 대문짝 만하게 찍어 보냈지만 효과가 없었다. 그럴 땐 전화가 최고였다. 아침엔 미주지역, 낮에는 아시아와 호주, 저녁에는 유럽에 전화를 했는데, 즉각 해결이 되곤 했다.

그 전에 근무하던 선배들은 아시아를 벗어난 다른 지역에서 답을 받는 데는 이삼일씩 걸렸다. 팩스 한장 보내놓고 마냥 기다릴 뿐이었다. 다음날에 답장을 받으면 다행이지만, 안 그러면 팩스 보내고 또 하루를 소비해야 했다. 나는 그날 일은 어떻게 해서든 그날 처리해야 하는 성격이라 팩스를 보내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엔 바로 전화로 해결했다. 처음엔 선배와 나누어 가진 업무분량이 5 대 5 정도였다가 나중에는 1 대 9 정도가 되었다. ‘서울에 새 직원이 왔는데, 부장급으로 깐깐해서 팩스를 보내고 바로 답이 없으면 바로 전화를 한다’고 세계 여기저기 지사마다 소문이 퍼졌다. 그 뒤로 내가 보낸 팩스에 대해서는 모두가 각별한 신경을 써줬다. 사실 그때 나는 신입사원이었다.

문자로만 된 커뮤니케이션 보다 사람의 감정을 조금 더 실어 보낼 수 있는 목소리가 더 강력하고, 여기에 몸짓이나 제스쳐 또는 분위기까지 전달하게 되면 그건 더욱더 완성된 커뮤니케이션이 되는 법이다. “Good Morning! Julia, How’s it going? Nice to hear your voice.” 전화를 걸어 이렇게 인사하는 데는 불과 5초면 충분하지만 수십 장의 문서에도 싣지 못할 느낌을 보낼 수 있다.

 

일을 되게 하는 것이 커뮤니케이션이다

커뮤니케이션이 힘든 조직에서 드러나는 가장 큰 문제점은 회사가 어떤 일을 하게 될 때 서로 책임지기를 꺼리는 경향이다. 리스크 있는 일이거나 심각하거나 핵심적인 사항에 대해서는 모두 입을 닫는다. 의사 결정권자가 그렇게 만든 책임이 크다. 어떤 조직은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각 분야의 전문가를 모아 놓고도 그들의 의견을 들어보려 하기는커녕 결정권자 자신의 고집만 내세운다. 경험도 지식도 부족한 비전문가인 그가 결정권자라는 이유로 전문가들에게 자신의 뜻대로만 행하도록 하는 얼토당토 않은 무리한 지시임에도 자신은 커뮤니케이션이라 오해한다. 그러고 나서 이행여부를 다그치는 것을 또 커뮤니케이션이라고 말한다. 이것이 바로 입 없는 아나운서와 귀 없는 청중 간의 대화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위에서는 책임을 아래로 전가 하려하고 아래에서는 그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사용하는 온갖 방법이 그 일의 진행을 막고 있다. 그래서 뭔가 하자고 할 때는 온 조직 사람들이 입을 다물지만, 그 일을 하지 말아야 될 이유에 대해서는 입에 침이 마르도록 설명한다. 회사는 일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지, 뭔가를 하지 않는 이유를 찾는 조직이 아니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

1. 일과 조직의 운영은 커뮤니케이션에서 시작된다.

2. 사람들의 생각과 느낌이 반영되지 않은 것은 제대로 된 커뮤니케이션이 아냐.

3. 조직의 발전은 일을 되게 하는 발전지향적인 커뮤니케이션에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