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모 기업의 브랜딩 프로젝트에 자문을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다양한 IT 솔루션과 온라인 및 오프라인을 넘나드는 최신 트렌드를 나름 기자의 시각으로 풀어가는데 그 과정에서 재미있는 경험을 했습니다. 무언가를 알리는 홍보와 마케팅의 경계에서 기업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 예전과는 많이 달라지고 있구나. 세련된 방식과 유연한 전략을 바탕으로 이제 기업은 그 어떤 언론보다 콘텐츠를 잘 만드는 곳이 될 수 있겠구나.

어차피 콘텐츠는 기업의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풀어가는 방식은 그 어떤 언론사보다 재기발랄하며 날카로웠어요. 언론의 사명감과 정의에 대한 가치를 차치하고 순수하게 콘텐츠 작성에만 포커싱하면 이제 언론사는 비교우위를 가질 수 없겠다는 생각까지 미쳤습니다.

 

맞습니다. 이건 모골이 송연해지는 경험이었습니다. 인터뷰 내내 공포영화의 조연이 된 기분이었어요. 주인공에게 악령이 들린 저택의 비밀을 말해주고 혼자 밤길을 걷다가 비명 한 번 못지르고 어둠속으로 끌려가는 조연.

삼성전자 뉴스룸...이건 가치가 있다
네이버에 '뉴스룸'을 검색하니 JTBC 뉴스룸이 최상단에 뜹니다. 아래로 마우스를 스크롤 해봅시다. 지식백과에 미국 HBO에서 방송했던 동명의 드라마가 소개되는가 싶더니 통합 뉴스룸이 저널리즘에 미치는 영향을 알리는 콘텐츠도 보입니다.

그러니까 뉴스룸이라는 것은 언론사의 전유물과 비슷하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저널리즘은 활자나 전파를 매체로 하는 보도나 그 밖의 전달 활동, 나아가 이를 바탕으로 사업을 전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개념을 나눠보자면 두개의 키워드가 부상합니다. 이견의 여지는 있겠지만 사명감과 정의감으로 어두운 비밀을 폭로해 사회의 빛이 되는 것과 양질의 콘텐츠를 제작해 세상에 보탬이 되는 것. 전자의 경우 언론이라는 개념이 존재하는한 절대 사라질 수 없는 절대적인 가치입니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 상당히 애매합니다. 콘텐츠를 제작하는 주체는 상당히 다양하며 이는 최근 동영상 기술의 발전으로 'MCN'의 대두라는 극적인 특이점을 끌어내는 등 비단 언론사의 전유물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물론 사명감도 언론사의 전유물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언론의 개념에 가장 근접한 패러다임이에요. 그런데 콘텐츠를 제작해 세상에 보탬이 되는 것. 이 부분도 언론사의 주특기 중 하나였으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삼성전자 뉴스룸에 관심이 가는 이유에요. 현재 삼성전자 뉴스룸에는 하루 평균 2건에서 많게는 4건의 콘텐츠가 올라옵니다. 주로 자사의 제품을 소개하거나 공지사항을 전파하고 기업의 입장을 밝히는 콘텐츠입니다. 가끔 '그 자체가 뉴스가 될 수 있는 콘텐츠'도 심심치않게 올라옵니다. "삼성전자 뉴스룸에 따르면..."이라는 일반 언론사의 기사가 많아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 출처=삼성전자 뉴스룸

삼성은 지난해 최순실 비선실세 논란을 겪으며 그룹의 대외 홍보창구 역할도 하던 그룹 미래전략실을 해체했으며 기존 삼성그룹 홈페이지와 블로그, SNS 등은 4월3일 모두 폐쇄됐습니다. 그리고 모든 홍보 포인트를 삼성전자 뉴스룸에 집중하고 있어요. 미래전략실 소속 직원 일부가 삼성전자 뉴스룸 제작팀으로 넘어왔으며 지난 5월 기준 해외판 삼성전자 뉴스룸은 10여곳으로 확대되었습니다. 글로벌, 한국, 미국, 베트남, 브라질, 인도, 독일, 러시아 등 스펙트럼도 다양합니다.

삼성전자 뉴스룸의 콘텐츠는 분명 홍보입니다. 자사 제품이나 서비스를 알리는 것이 대부분이에요. 당연히 편파적일 수 있기 때문에 공정성과는 약간의 거리가 있습니다. 다만 정보전달의 측면에서 상당히 세련된 파괴력을 보여줍니다.

QLED TV의 비전과 미래를 설명하는 대목에서는 예술의 역사와 의미를 짚어보는 스토리텔링을 적용하고 인공지능 빅스비를 알리는 콘텐츠에는 상세한 정보와 서비스의 가치, 나아가 핵심 인력의 인터뷰까지 담아내는 치밀한 구성을 자랑합니다. 깔끔한 디자인과 텍스트 사용자 경험이 상당한 수준입니다. 최근 국내 언론사들이 카드뉴스와 의미없는 동영상 뉴스에 집중하며 관성적인 콘텐츠만 뽑아내는 상황과 극명하게 비교됩니다.

자신감이 붙었기 때문일까요. 지난달 28일 공개된 '웹 전성시대, 저널리즘은 지각 변동 중!' 콘텐츠는 마치 기존 언론사에 통렬한 일격을 가하는 것 같습니다. 워싱턴포스트가 레딧 공개 게시판을 런칭하는 순간을 시작으로 페이퍼 저널리즘과 닷컴 서비스의 역사를 깨알같이 전달합니다. 언론사의 온라인 따라가기 과정에서 불거진 흑역사와 '변신의 도태'를 제법 촘촘하게 설명하는 대목도 백미입니다.

"25세 미만 모바일 뉴스 소비자에 주목하라"라는 메시지도 강렬합니다. 본문을 그대로 인용하자면 싱크탱크(think tank) 대신 ‘팩트탱크(fact tank)’란 용어를 유행시킨 미국 민간 연구 단체 퓨리서치센터(Pew Research Center)가 내놓은 보고서 ‘현대 뉴스 소비자(The Modern News Consumer)’까지 거론하며 모바일 시대의 저널리즘과 콘텐츠의 가치를 설파합니다. 나아가 미디어 혁명의 전제는 기술에 있으며 이를 종교개혁의 상징인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의 행보와도 연결합니다.

마지막 결론은 너무 인상적이라 전문을 옮깁니다. [오늘날 수많은 미디어가 자체 시장 조사를 벌이고 그 결과에 입각해 전략을 수립, 끊임없이 변신을 꾀하는 건 바로 그 때문이다. 환경 급변기엔 변화의 방향을 면밀하게 읽고 그에 맞춰 변화를 선도하는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 그건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진리다]

▲ 출처=삼성전자 뉴스룸

언론의 위기는 인공지능 따위가 아니다
인공지능 기자의 등장으로 언론이 위기에 처했다는 말이 나옵니다.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핵심이 될 수 없어요. 만약 기술의 발전으로 기자라는 직종이 사라진다면 이는 비단 기자만의 문제가 아닐겁니다. 속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모두의 변화일 가능성이 높아요.

게다가 기자는 철저하게 인문학의 수평선을 달리는 직업입니다. 최적의 보도와 결과만 추구하는 인공지능이 그림자를 통해 들어오는 압박을 어떤 알고리즘으로 처리할 것인가. 또 모든 지표와 데이터가 보도의 가치를 '제로'라고 판단하지만 인간 기자는 모든 변수를 뚫고 세상을 향해 붓을 휘둘러야 합니다. 여기에는 사회문화적 가치판단과 인류감성의 기본적인 재조명이 필요합니다. 언젠가 정복당할 수 있겠지만, 당장은 아닙니다.

하지만 정보전달과 관련된 언론사의 기능은 조만간 가치가 없어질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기술의 발전으로 모바일 시대가 도래한 상황에서 기업은 자신들의 콘텐츠를 더욱 극적으로, 그리고 유연하게 풀어낼 수 있는 역량을 보였기 때문이에요.

특히 국내 언론사가 육하원칙에 드라이한 정보전달, 속보와 단독으로 점철된 의미없는 경쟁을 계속하는 상황에서 콘텐츠 자체를 최신 트렌드에 녹여 '읽히는 무언가'를 만드는 기업은 이미 비교우위에 섰습니다.

치열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국내 언론사는 저널리즘의 사명감과 정의감을 가슴 한켠에 반드시 아로새긴 상태에서 콘텐츠 가치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해야 합니다. 모바일에서 긴 글이 대세다? 짧은 글이 대세다? 만약 둘 중 하나를 선택했다면 그 사람은 바보입니다. 콘텐츠의 속성에 따라, 기술과 플랫폼의 형태에 따라 변화무쌍하게 변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언제까지 인쇄시대에 갇혀 '기사는 이래야 한다'며 거드름만 피울 셈입니까.

힘있는 콘텐츠를 모바일 ICT 기술에 맡게 유연한 방식으로 풀어내야 합니다. 가상현실이나 증강현실처럼 화려한 기술에 집중하는 것도 좋지만 본질을 봐야 합니다. 묻겠습니다. 국내 언론사는 삼성전자 뉴스룸처럼 기사를 쓸 생각을 했나요? 꼭 기획의도가 있어야 합니까? 정해진 틀에서 속보경쟁을 해야 합니까? 아무도 읽지 않는 콘텐츠는 좀비나 다름이 없습니다. 언제까지 '의제설정능력'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글로벌 전자기업이 자사 '뉴스룸'을 통해 독자적인 방식으로 모바일 콘텐츠를 제작하는 한편, 새로운 시대의 패러다임에 먹힐 수 있는 강력한 콘텐츠의 도래를 저널리즘으로 풀어내는 시대입니다. SNS를 통해 방송을 하고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 방식을 통해 승부를 거는 시대입니다. 텍스트의 한계까지 말하지 않겠습니다. 언론으로서 기본적인 아웃라인을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아도 최소한의 유연함은 보여야 하는 시대입니다.

다행히 몇몇 국내 언론사에서 늦었지만 색다른 실험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더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분명 어려운 길이지만 방법이 있을 겁니다. 정보전달의 측면에서 이제 전문가가 SNS에 올린 글이 언론사 기사보다 더 전문성이 넘치며, 10대가 유튜브에 욕설을 섞어 올린 시사동영상이 100만뷰를 찍고 있습니다. "그래도 어찌 언론이 그런 놈들처럼..."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단언합니다. 직업인으로서 당신의 인생은 이제 5년도 채 남지 않았습니다.

저도 답을 모르지만, 그래도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왕 공포영화에 출연했다면 최소한 최종보스인 악령과 아이컨택 한 번은 해야하지 않겠습니까. 살아남아 속편을 암시하게 되면 더할 나위가 없고요.

[IT여담은 취재 과정에서 알게 된 소소한 현실, 그리고 생각을 모으고 정리하는 자유로운 코너입니다. 기사로 쓰기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한 번은 곰곰이 생각해 볼 문제를 편안하게 풀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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