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27일(현지시간) 구글에 무려 24억2000만유로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과징금을 부과했다. 자체 쇼핑 사이트를 출시하며 경쟁사 홈페이지 노출을 의도적으로 줄였다는 의혹이 일정부분 사실로 확인됐다.

마르그레테 베스타게르 유럽연합 경쟁담당 집행위원은 "구글이 자회사 제품에 불법적인 혜택을 주었으며 검색엔진으로서의 시장 지배력을 남용했다"며 "이는 명백한 유럽의 경쟁법 규정 위반"이라고 강조했다. 나아가 "총 세건의 제재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구글은 당장 항소의 뜻을 내비쳤다. 유럽연합의 결정이 내려진 직후 켄트 워커 구글 부사장은 성명을 발표해 "유럽연합의 결정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 출처=구글

유럽연합의 실리콘밸리 압박

유럽과 실리콘밸리는 지금 전쟁을 치르고 있다. 당장 천문학적인 과징금 처분을 받은 구글은 잊혀질 권리 논란에서 시작된 노골적인 논란에 몸살을 앓고있다.

2014년부터 시작된 잊혀질 권리에 대한 논란은 온라인 공간에서 잊혀지고 사라질 권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글이 데이터 정보를 통해 '당연한 권리'를 부정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며 지난해 3월 프랑스 국가정보위원회(CNIL)는 구글이 잊혀질 권리를 충분히 지원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구글에 10만유로의 벌금을 부과하기도 했다.

조세회피도 심각한 이슈다. 구글은 유럽에서 소위 '더블 아이리시 위드 어 더치 샌드위치(Double Irish with a Dutch Sandwich)'로 불리는 조세회피 기법으로 논란의 중심에 선 상태다.

애플이 창조한 `더블 아이리시` 수법이 아일랜드에 설립한 두개의 법인을 통해 본사가 세금을 줄이는 방법이라면, `더블 아이리시 위드 어 더치 샌드위치`는 여기에 네덜란드 법인을 넣어 세금을 더욱 아끼는 방식이다. 일각에서 구글을 두고 '조세회피의 혁신기업'이라고 비웃는 배경이다.

유럽의 각국은 이미 행동에 나서고 있다. 영국은 지난 2015년 소위 구글세를 처음으로 도입해 구글에 1억3000만 파운드의 과징금을 물리기도 했으며 이탈리아도 구글에게 10년간의 세금을 계산해 3억6000만달러를 부여하기도 했다. 유럽연합의 24억2000만유로 과징금이 곧 그동안의 밀린 세금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물론 2014년 아일랜드가 유럽연합의 압박에 절세 지원을 중단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이 방식은 곧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진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8월 유럽연합이 아일랜드 법인을 통해 세금을 아껴온 애플에 과징금을 추징하려고 하자 즉각 반발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마이클 누난 아일랜드 재무장관은 "아일랜드 정부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의 결정에 절대 동의하지 않는다"고 날을 세우기도 했다. 다국적 기업에게 절세혜택을 베풀어 자국민 일자리 창출에 나섰던 상황에서 유럽연합의 방식은 아일랜드 정부 입장에서 충분히 위협적이다.

독과점 이슈도 있다. 구글이 시장지배적 위치를 악용해 경쟁자를 압박하고 있다는 것이 핵심이며 이번 과징금의 배경이기도 하다.

사실 유럽연합의 압박은 비단 구글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 애플과 페이스북 등 대부분의 미국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비슷한 공격을 받는 상황이다. 대부분 구글과 동일하게 독과점과 조세회피 등의 논란이다. 심지어 온디맨드 기업인 우버를 두고 유럽사법재판소는 ICT 플랫폼 기업이 아닌 운송 사업자라고 규정해 강력한 제재조치를 걸었으며 독일에서 에어비앤비는 일부 주에서 불법판정을 받기도 했다.

유럽은 왜 구글을 비롯한 실리콘밸리 기업에 전방위적 공세를 퍼붓는 것일까. 1차적으로는 조세회피의 달인이 된 실리콘밸리 기업을 대상으로 정당한 세금을 걷으려는 의도다.

실제로 2014년 영국의 조지 오스본 재무장관은 '구글세'라는 단어를 만들어 설명하며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세금을 회피하는 기업에게 필요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여기에 외국기업으로 자국기업을 보호해야 한다는 정치적 함의도 있다. 인공지능과 가상현실 및 증강현실 등 사물인터넷 시대가 열리는 상황에서 미래 먹거리를 외국기업에 넘길 수 없다는 위기감인 것.

유럽연합의 정체성에서 답을 찾는 이들도 있다. 지난 2009년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인텔에게 10억유로에 달하는 과징금을 부여할 당시 미국의 CNN머니는 "유럽연합은 본연의 권한보다 회원국 정부의 주권이 앞서지만 반독점 및 국제무역법 등에 대해서는 초국가적인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발표. 출처=픽사베이

유럽의 공포는 훨씬 깊은 곳에 있다

2014년 11월 28일(현지시간) 유럽연합은 향후 글로벌 ICT 업계에 엄청난 파장을 던지는 결단을 내린다.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전체회의를 열고 반독점 지위 남용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구글의 검색 서비스와 기타 부가 서비스를 분리하는 결의안을 찬성 384표, 반대 174표로 가결시켰기 때문이다. 일명 구글 쪼개기다.

물론 법적인 구속력이 없기 때문에 일종의 선언에 불과하지만 그 여파는 상당했다. 구글에 대한 유럽의 발작적인 공포를 여과없이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이기 때문이다.

당장 미국 정치권이 나섰다. 미국 공화당과 민주당의 상원 재무위원회와 하원 의원들은 공동성명을 통해 “미국의 IT기업에 대한 (유럽의회) 결의안은 자유로운 시장경쟁에 대한 유럽연합의 생각을 의심하게 한다”며 "구글 문제를 정치쟁점화하지 마라”고 경고했다.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도 나섰다. 그는 2015년 3월 "유럽의 제재가 지극히 상업적 목적으로만 행해지고 있다"며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했다. 또 국제적 명성을 가진 비벡 고살 조지아공과대학 경제학 교수는 구글을 비롯한 실리콘밸리 기업에 가해지는 유럽의 견제를 두고“왜 우월한 형태의 서비스 제공을 차별하는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겉으로 보면 유럽이 반독점 등의 이유로 실리콘밸리의 기업을 압박하고 미국이 자국기업 보호를 위해 반발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미국 정부에 있어 구글은 강력한 ICT 인프라를 보유한 자국기업이면서 미국 패권주의의 훌륭한 파트너이자 선봉장이다.

구글과 미국 정부의 밀월은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2013년 미국 국가안보국의 무차별 감시 프로그램을 폭로하고 해외로 망명한 에드워드 스노든은 그 해 6월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대중문화 축제 ‘사우스바이사우스웨스트(SXSW)’의 인터랙티브 행사장에서 화상대화에 나서 “미국 국가안보국의 감시 프로그램에 가장 협력을 많이 했던 곳이 바로 구글”이라고 폭로했다.

놀라운 점은 구글도 인정한다는 대목이다.  2014년 발표된 구글의 투명성 보고서(transparency report)에 따르면 각국 정부가 정보공조를 위해 구글에게 알려 달라고 요구한 사례가 2013년 대비 120% 증가했고 거의 대부분이 미국 정부로 알려졌다. 이 보고서에는 구글이 확보한 각국 정부의 은밀한 정보가 미국 정부에 흘러갔다는 사실이 비교적 상세히 적혀있다.

유럽연합 입장에서는 불편할 수 밖에 없다. 유럽에서 구글의 점유율이 90%를 넘어가는 상황에서 미국 정부와 긴밀하게 공조하는 상황은 유럽 대륙의 안보적 측면에서도 위험한 것. 

특히 독일의 경우 미국 국가안보국이 2011년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휴대전화를 도청하는 사건이 벌어진 상태에서 2014년 10월, 독일은 물론 유럽 최고의 언론사인 악셀 스프링어가 구글의 독과점 지위에 반발해 자사의 콘텐츠를 철수시켰으나 급격한 트래픽 하락에 결국 구글에 복귀하는 굴욕을 겪기도 했다. 당시 악셀 스프링어는 “홈페이지 트래픽이 폭락한 것은 구글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행정당국이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뾰족한 대안이 없다. 한때 프랑스가 독일과 협력해 `나는 찾는다`라는 의미의 라틴어인 콰에로(Quaero) 프로젝트를 가동하며 유럽 토종 포털 사이트 구축을 시도한 적이 있으나 결론적으로 실패했다.

자크 시라크 당시 프랑스 대통령은 "구글, 야후 등 미국 업체들이 장악하고 있는 검색엔진 시장에 프랑스와 독일이 대항해야 한다"고 말해 유럽의 자체 검색엔진 개발 필요성을 역설했으나 시장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구글의 여론전도 교묘하다. 2014년 구글의 후원을 받는 유럽국제정치경제연구소(ECIPE)는 각국의 데이터 국지화 현상이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을 둔화시킨다는 보고서를 발표해 관심을 모은 바 있다. 핵심은 ‘데이터를 내부에 수렴’하는 국지화 현상이 벌어질수록 국가의 GDP 증가율이 순식간에 반토막 날 것이라고 경고다.

바꿔 말하면  “데이터 국지화와 180도 다르게 활동하는 구글의 영향력이 미치지 못하는 나라가 데이터 국지화, 즉 구글과 같은 글로벌 기업과 데이터를 공유하지 않으면 GDP 증가율이 추락한다”는 겁박이다. 다만 학계에서는 데이터 국지화와 GDP 증가율의 상관관계는 연결고리가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결론적으로 유럽연합의 구글에 대한 견제구는 곧 국가 안보와도 직결되는 문제이자 미래 ICT 먹거리를 빼앗길 수 없다는 절박함이 묻어난다는 평가다. 현재 구글은 모회사 알파벳 체제로 전환한 후 드론, 자율자동차, 우주 개발사업, 이동통신 진출 등 C-P-N-D를 가리지 않고 있다. 자연스럽게 전선은 확장되고, 치열한 다툼이 벌어지고 있다.

유럽연합과 실리콘밸리의 전쟁을 유럽과 미국의 전쟁으로 오해하면 곤란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국가와 국가의 관계로 보면 양쪽은 여전히 정보교류의 밀월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이 상식이다. 실제로 영국의 가디언은 영국을 두고 "한때 대영제국의 경험을 통해 세계 패권국가를 경험했던 상황에서 21세기 정보를 쥐고 있는 미국이 가장 훌륭한 파트너라는 점을 강렬하게 자각하고 있다"고 평하기도 했다.

폭로자 에드워드 스노든과 줄리언 어산지의 사례가 이러한 양쪽의 관계를 잘 보여준다. 위키리스크의 줄리언 어산지는 민감한 정보를 폭로한 후 영국 정부의 보호를 받으려 했으나 체포의 위협에 노출되어 에콰도르 대사관에 피신했으며, 에드워드 스노든을 단독으로 취재해 미국 국가안보국의 만행을 알렸던 가디언은 당국으로부터 보복성 압수수색을 당했다.

결국 유럽연합은 국가와 국가의 관계로 보면 미국과 정보공조 및 기타 다양한 협력을 이어갈 준비가 되어 있으나, 카운터 파트너가 일개 기업이 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구글과 애플, 페이스북이 유럽의 방대한 데이터를 취합해 초연결 ICT 인프라 산업을 키우는 것을 멍하니 지켜볼 이유도 없다.

앞으로 전개 방향은

유럽연합의 실리콘밸리 압박의 연장선에서 구글의 천문학적인 과징금 사태 배경을 읽어야 하며, 그 중심에 유럽연합이 가지고 있는 두개의 불안요소를 간파해야 한다. 바로 국가안보와 미래 신사업 위기다.

앞으로 어떻게 될까. 일단 유럽연합은 실리콘밸리 기업에 전방위적 공세를 가하며 정당한 세금을 걷는 한편 자국 ICT 정책을 키우는 투트랙 전략을 구사할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구글세 도입에 박차를 가하며 이를 세계적인 이슈로 키우는 작업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도 영향을 받고있다. 공정거래위원회를 중심으로 구글세 논의가 급물살을 타는 가운데 유한회사를 외부감사 대상으로 포함시키는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외감법)' 개정안이 추진되고 있다. 대부분의 글로벌 ICT 기업들이 스텔스 회사로 불리는 유한회사의 형식으로 들어와 철저한 비밀주의에 집착하는 상황에서 이에 대한 대응이다. 

나아가 SK브로드밴드와 레이턴시 충돌을 빚고있는 페이스북의 경우 조만간 본사 임원이 방한해 방송통신위원회와 면담하기도 한다.

다만 미묘한 부분이 있다. 최근 공정위는 불공정 행위를 중심으로 글로벌 ICT 기업의 횡포를 잡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실제로 김상조 위원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글로벌 ICT 업계의 불공정 행위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글로벌 ICT 기업에 대한 제재가 '불공정'이라는 잣대에 천착하면 네이버와 카카오 등에도 불똥이 튈 가능성도 제기한다. 구글의 공습에서 상대적으로 무풍지대인 국내의 경우 네이버와 카카오라는 이례적 토종 ICT 기업이 존재하며 이들도 일정정도 불공정 행위의 당사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럽과는 상황이 다른 이유다.

글로벌 ICT 시장에서 반 실리콘밸리 진영이 뭉치는 현상도 감지된다. 유럽이 실리콘밸리 외 국가와 협력해 큰 그림을 그리는 전략이다.

대표적인 국가가 프랑스다. 유럽 문화권력의 핵심인 프랑스는 자국이 가진 콘텐츠 파워를 바탕으로 프랜치 스타트업 프로젝트까지 가동해 기초체력부터 차근차근 다지고 있다. 나아가 기술기반 플랫폼 전략과 글로벌 행보를 동시에 추구하는 네이버와도 협력하고 있다. 플뢰르 펠르랭 전 프랑스 디지털경제 장관이 유럽 금융전문가 앙투안 드레쉬와 설립한 Korelya Capital(코렐랴 캐피탈)의 유럽 투자 펀드인 K-1펀드에 네이버와 라인이 참여한 상태다.

플뢰르 펠르랭 전 장관은 2016년 9월 국내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국가의 경계는 사라지고 있지만 이 문제와 별도로 현지의 법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입장"이라며 구글에 불편한 감정을 내비치기도 했다.

▲ 플뢰르 펠르랭(Fleur Pellerin) 전 프랑스 디지털경제 장관. 출처=네이버

ICT 업계의 근본적인 고민도 이어질 전망이다. 일단 유럽에서 문제 삼고있는 독과점 이슈는 플랫폼 사업자의 정체성과 상당한 괴리가 있다. 플랫폼 사업자의 경우 필연적으로 독과점이 최고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조세회피를 두고도 일각에서는 '기업이 절세를 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반발도 나온다.

또 구글의 천문학적 과징금 배경인 '검색'을 두고도 설왕설래가 나온다. 포털 사업자가 검색광고를 통해 막대한 수익을 올리는 상황에서 이를 제지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라는 반문이다. 검색어 과금 모델로 수익을 올리고 있는 네이버와 카카오도 해당되는 문제다.

긴 호흡으로 보면 역시 유럽의 독립 ICT 인프라 구축 실험과 실리콘밸리의 격돌이다. 나아가 최근 자국경제제일주의, 즉 보호 무역주의가 판을 치는 상황에서 미국은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며 제조업 중심의 국가 전략이 거침없이 진행되는 상황이다. 실리콘밸리가 트럼프 행정부와 일정정도 거리를 두는 상황에서 그 간극을 유럽연합이 파고들고 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