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재형 도트윈 공동대표(출처=도트윈)

“해외에는 DSI(DESIGN FOR SOCIAL INNOVATION) 학과를 운영하는 대학도 있어요.”

박재형 도트윈 공동대표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단으로 디자인을 활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DSI는 사회·환경 문제를 조명하는 디자인 분야다. 도트윈은 DSI를 추구하는 국내 디자인 기업이다. 주력 제품은 지갑, 여권 케이스 등의 가죽제품이다. 이 회사는 독특한 디자인 콘셉트로 이목을 끌고 있다. 제품 디자인에 점자를 접목한 것.

박재형·박재성 쌍둥이 형제는 지난 2015년 도트윈을 설립했다. 형 재형 씨는 디자인을, 동생 재성 씨는 재무를 담당하고 있다. 서울시 성동구 성수동에 위치한 도트윈 스튜디오에서 박재형 공동대표를 만나봤다. 20대 초반인 이 젊은 사업가는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에서 매개 역할을 하고 싶다고 했다.

공방에서 놀던 쌍둥이, 소셜벤처 창업

이 형제가 소셜이노베이션(사회적 혁신) 분야에 첫 발을 내딛은 것은 고등학생 때였다. 고용노동부와 한국사회적 기업진흥원이 주관한 ‘2011 전국소셜벤처경연대회’에 참가해 청소년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우연히 소셜벤처경연대회 포스터를 보게 됐습니다. 세상을 바꿀 아이디어를 공모한다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대회 내용을 살펴보니 청소년 부문도 있었습니다. 그해 처음 신설된 부문이었죠. 그간 동생과 저는 사회공헌활동이나 사회적 기업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다만 비영리 활동인 만큼 경제적 자립 측면에서 한계가 있다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런데 소셜벤처라니. 센세이션 그 차제였습니다. 당시만 해도 소셜벤처를 착한 일 하면서 돈을 벌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 정도로 받아들였습니다. 포스터를 보자마자 바로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이 나타났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이들은 소셜벤처경연대회에 출범했던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도트윈을 설립했다. 도트윈은 가죽제품에 구매자가 원하는 문구를 점자로 새겨준다. 도트윈이라는 사명 역시 점을 뜻하는 영문 ‘도트(Dot)’와 사이를 의미하는 ‘비트윈(Between)’의 합성어다. 대학 입학 후 창업의 뜻을 밝힌 형제의 태도에 부모는 당황했다. 박 대표는 도트윈 창업에 가장 큰 영감을 준 사람이 다름 아닌 부모였다고 회상했다.

“부모님이 부산에서 오랫동안 가죽공방을 해오셨습니다. 기계보다는 손으로 직접 바느질하는 수공업 방식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디자인을 전공하지 않은 제가 가죽공예에 익숙한 이유입니다. 사회적 기업, 소셜벤처 같은 개념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지는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고등학교 시절만 해도 관련 인프라나 자료를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가끔 관련 강연이 부산에서 열릴 때면 부모님께 말씀드리고 참석했습니다. 저희 형제 덕분에 부모님도 대부분 강연에 함께 하셨죠. 창업 의사를 밝혔을 때 지인이나 친지 중 저희를 이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전공과 무관한 일인 데다 휴학도 불가피했습니다. ‘돈도 안 되는 남 좋은 일’이라는 반응이 보통이었습니다. 부모님도 처음에는 황당하다는 반응이었습니다. 그래도 결국은 이해해주셨죠. 지금은 비즈니스상 파트너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도트윈 제품들은 현재 부산에 위치한 박 대표 부모의 공방에서 제작된다. 초기에는 생산공정을 서울 사무실에서 직접 운영했다. 얼마 안 가 주문량은 두 형제가 소화하기 어려운 만큼 늘어났다. 외주 제작도 알아봤지만 품질이 만족스럽지 않았다. 신뢰할 수 있는 공방을 찾다 결국 부모가 운영하는 공방과 계약을 맺게 됐다고 박 대표는 설명했다.

박 대표는 지난 2015년 3월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400만원의 자금을 지원받았다. 이후 HGI로부터 임팩트투자를 유치해 약 5000만원의 자본금으로 법인을 설립했다. 주문이 들어오면 작업을 시작하는 수공예 방식 특성상 다른 사업 대비 거액의 초기자본은 필요하지 않았다. 작업 도구도 어릴 때부터 사용한 것들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 출처=도트윈

도트윈 제품은 점자를 담고 있지만 시각장애인 특화 제품은 아니다. 비장애인들이 갖고 있는 시각장애인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개선하는 게 이들의 목적이다. 실제로 주문고객 중 장애인보다 비장애인 비율이 더 높다는 부연이다. 점자를 일종의 암호문으로 활용해 사람들이 점자에 호기심을 갖도록 유도한다. 제품에는 점자 해석표도 함께 동봉된다. 해석표에는 자음, 모음 등이 점자로 어떻게 표현돼 한 줄의 문구가 되는지 표기돼 있다. 명함 지갑, 여권 케이스 등에 글귀가 새겨져 있지만 점자를 모르는 사람은 읽을 수 없다. 도트윈 제품을 구매하지 않은 사람도 주변 사람 중 구매자가 있다면 간접적으로 점자를 접하게 되는 셈이다.

“한글을 점자로 번역해주는 자료는 있지만 반대로 점자를 한글로 번역할 수 있는 자료는 부족한 실정입니다. 유관기관에 문의해봤지만 점자를 한글로 풀이하는 작업이 이뤄진 적이 없던 것 같습니다. 도트윈은 사람들이 직간접적으로 점자를 경험하는 데 목적을 둡니다. 그렇게 한번 접하게 되면 또 다른 점자들이 눈에 들어오게 될 것입니다. 사실 우리 주변에는 이미 많은 점자들이 있습니다. 지하철이나 건물 엘리베이터 혹은 표지판에도 점자는 표기돼 있습니다. 관심을 갖지 않았을 뿐입니다. 과거와 달리 장애인을 차별하는 사람은 줄어들었습니다. 반면 ‘장애인은 불쌍하다’ ‘장애인은 무능하다’라는 편견은 여전합니다. 점자 문화가 대중화될수록 시각장애인에 대한 잘못된 관념들도 개선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박 대표는 올해 다양한 시도를 준비하고 있다. 최근 손거울, 필통, 가방 등 실험적인 제품을 상품군에서 제외했다. 점자라는 콘셉트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판단에서다. 다음 달 온라인 판매 채널을 리뉴얼하고 팔지나 지갑 제품군을 확대하겠다는 방침이다. 더불어 시각장애인들에게 좀 더 직접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고심하고 있다. 실제로 시각장애인이 겪고 있는 안내견, 대중교통 등의 문제에 대안이 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겠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