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영어공부가 가지는 위상은 남다르다. 사람들은 언제나 영어공부에 대한 열병에 걸린 것처럼 영어에 달려든다. 수많은 사람이 영어학원에 등록하고, 인터넷 강의를 보며 이어폰을 꽂고 쉴 새 없이 공부한다. 자신의 모국어는 자세히 들여다보려 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실제 영어를 이용한 토론이나 자신의 의견을 밝힐 때, 깊이 있는 영어를 잘 구사하려면 사실 영어보다 모국어가 더 중요할지 모른다는 역설적 발상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필자는 오랜 기간 영어교육 현장에서 몸담아왔다. 영어를 가르치다 보면 회사 혹은 취업에서 살아남기 위해 영어를 배우는 수많은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런데 그들을 가르칠 때마다 느끼는 것은 한국어를 잘 구사하는 사람이 영어를 훨씬 더 잘 구사한다는 것이다.

이는 깊이 있는 주제를 영어로 말할 때 드러난다. “인생에서 힘든 시기를 어떻게 극복했는지 설명해보시오” 혹은 “지금 발생한 문제점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해보세요”라는 깊이 있는 주제가 나오면 브레인스토밍을 시작한다. 대부분 영어를 배우는 사람은 외국어보다는 한국어로 먼저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그다음 한국어를 영어로 말하기 위해 문장을 조합하는데, 이때 모국어를 잘하는 사람이 더욱 간결하고 깔끔한 문장을 구사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이러한 문제들은 초급보다 중상위권 영어 사용자들에게서 차이가 분명히 드러난다. 자기 생각을 말하고 의견을 공유하는 것은 한국말을 잘하는 사람이 더 유리하다. 실제 영어교육 현장에 종사하고 있는 많은 강사는 영어가 문제가 아니라 한국어가 문제라고 한결같이 얘기한다.

국내 소설 <채식주의자>를 번역해 영국에서 2016년 맨부커상 인터내셔널부문을 수상한 데보라 스미스는 한국어 구사 능력이 우수한 편이 아니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그녀가 번역한 영어는 사람들 사이에서 예술이라며 칭송받는다. 물론 영어에서 쓰기와 읽기는 조금 별개의 문제이기는 하다. 하지만 영어 말하기에서도 모국어의 힘은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이는 한국어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에서 영어교육을 전공하고 영어를 원어민보다 더 잘하는 터키인을 만난 적이 있다. 그는 터키 사람이고 20살이 되던 해에 미국으로 건너온 필자의 유학 시절 친구였다. 처음 그를 보았을 때 영어를 아주 자연스럽게 구사해 당연히 원어민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는 터키에서 오랜 기간 살아온 친구였다. 그는 자신의 영어 구사 능력은 모국어를 제대로 배웠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필자는 책벌레인 그가 영어로 된 책뿐 아니라 모국어로 된 책을 들고 있는 것을 수시로 목격하기도 했다.

실제 대기업에 토익스피킹 수업으로 출강을 나갈 때도 문제해결력을 요구하는 문제가 나오면 신입사원들이나 일반 직원들은 침묵할 때가 많다. 반면 임원급 간부들은 훨씬 대답을 잘한다. 신입사원들은 한창 영어에 대한 감을 아직 잃지 않았을 시기인데도 말이다. 오히려 임원들은 훨씬 나이가 있고 영어를 놓은 지 한참 뒤다. 이러한 점을 볼 때 같은 이슈나 문제에 대해서 고급 레벨인 신입사원들보다 초급 레벨인 임원들이 영어로 대답을 잘한다면 우리가 따지는 영어 레벨이 얼마나 모순적인지도 알 수 있다. 물론 임원들이 지닌 지식과 시각이 남다르다는 점도 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사건이나 물체를 해석하는 모국어의 능력이 외국어로 어떻게 투영되는지를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언어를 월등하게 잘하려면 모국어를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힘이 동반되어야 한다. 이에 기본적인 모국어 구사 능력이 부족하다면 제2외국어로도 고차원적인 언어 구사력을 갖기는 힘들다고 감히 예상해본다. 주위의 젊은 엄마들이 한글을 제대로 익히지 못한 아이들을 영어유치원에 보내거나 파닉스의 열풍에 빠지는 것을 보면 안타깝다는 마음이 든다. 영어는 모국어를 제대로 익힌 이후에 배워도 충분하다. 내 아이가 큰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모국어로 쓰인 책을 많이 읽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사고가 늘고 표현능력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레 외국어 능력도 오르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