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인가 트위터에서 관심을 끈 그림(아래)이 있다. 이런 그림을 보고 설명을 달면 사족이다. 그냥 느끼고 공유하는 것.

평등과 형평이다. 사실 두 상황 모두 평등이긴 하다. 각자의 키와 상관없이 공정하게 한 개씩의 디딤목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대로 된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기회 ▲조건 ▲결과의 균등이 궁극적인 평등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한쪽으로 지나치게 치우치지 않게 균형을 맞추는 것이다. 이 같은 ‘조건의 평등’을 실현하려면 배려와 양보가 있어야 한다.

그림에서처럼 키 큰 이가 키 작은 이에게 디딤목을 나눠주면 되는 것이다. 현실에서는 쉽지 않다. 줄 수 있는 것과 받아서 해결할 수 있는 것의 개수가 딱 맞아 떨어지지 않는 데다 키 큰이에게 강제해선 안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실로 돌아오면 평등이나 형평에 대한 논쟁이 치열하다. 때로는 유식한 철학과 이념의 탈을 쓰고 대립한다. 증오하기도 한다. 새 정부에서 임명된 경제부처 관료들이 내뱉은 일성을 보면서 안도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불안해 하는 이도 있다. 인위적 조건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정부가 나서서 디딤목을 뺏어서는 안 된다. 자본주의가 평등하다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200여년 전 애덤 스미스가 이미 간파했던 것 아닌가.

김현미 국토교통부장관은 취임 직후 강력한 부동산 투기 억제 시그널을 내놨다. 선악의 기준으로 부동산 투자자들을 재단하는 것은 아닐까 염려스럽다. 어차피 시장은 정의롭지 않다. 정부의 개입은 디딤목을 만들어주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디딤목을 많이 가졌다고 패널티를 부과한다면 또 다른 관점에선 불의다.

현실로 돌아와 보자. 그림처럼 두 경우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균형만 문제되지 않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의 상상력과 창의력은 끝이 없어서다. 그림과 똑같은 상황에서 앉아서 볼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는 자도 생긴다.

디딤목 세 개를 한꺼번에 쌓아놓고 올라 앉는 것이다. 당연히 한 명이 편안하면 두 명은 불편해진다. 두 사람이 한 사람에게 항의해야 하는 것이 정상처럼 생각할 수 있겠지만 꼭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다툼과 폭력이 있어야만 한 명이 편안할 것이라는 건 착각이다.

때로는 나머지 두 명이 흔쾌히 양보할 수도 있다. 앉아서 보는 한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하기 위해서다. 나머지 두 명은 한 사람의 편안한 모습을 보면서 행복을 느낄 수도 있다. 때로는 디딤목 세 개를 독차지하고 앉은 이가 나머지 두 명의 항의라도 받게 되면 버릇없다고 나무라거나 큰소리도 친다.

이렇게 말도 안 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우리가 속해 있는 사회다. 한 명을 위해 손해를 감수하되 손해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살아가는 두 명을 우리는 쉽게 찾을 수 있다. 시장에 특권은 존재한다. 이것을 부정하고 공평만을 얘기하는 것이야말로 이율배반이다.

시장이 정의로워야 한다면 어떻게 정의롭게 할 것인가. 예컨대 자영업자들이 문을 닫는 이유는 대기업의 골목상권 진출만은 아니다. 인터넷을 통한 홈쇼핑 증가와 해외 직접구매까지 여러 이유가 합쳐진 현상이다. 제품에 따라서는 독점적 지위를 확보하고 있는 선두 기업들도 있다.

시장은 자본으로 인한 계급 질서를 인정하고 특권을 눈감아줘야 한다. 이것이 우리 삶 속에 침투해 있는 시장의 룰이다. 정부가 공정한 시장과 거래질서를 확립한다는 명분 아래 몇몇 기업을 재물로 삼는다면 효력은 뛰어날 수 있어도 효과에는 의문이 생긴다. 선생님의 질문에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순간을 모면하려는 학생들만 양산하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시장을 선과 악으로 구분지어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강력한 규제는 반발이라는 반대급부만 양산하는 부작용을 야기할 뿐 양보와 배려를 가져올 수 없다.

새 정부에 거는 기대가 크다. 지난 세월 부조리에 눈감아 왔던 회한이 깃들어 더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정부가 무리해선 안 된다. 정부가 배려와 나눔이 있는 선한 시장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착각을 버려야 한다. 그것은 오만이다. 시장의 생리에 대해 무지한 것이다.

정부는 정해놓은 룰이 잘 작동하는지 살피면 된다. 시장에 필요한 디딤목을 제공할 능력이 없으면 차라리 가만히 있는 편이 낫다. 정부가 나서 디딤목을 뺏어 없는 사람에게 나눠 주겠다는 발상은 올바르지 않다. 오히려 시장을 망칠 수 있다는 것을 새 정부가 잊어선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