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혁 편집국장 (kh@asiae.co.kr)

금융소비자에게 은행은 항상 문턱이 높다. 시중금리가 높건 낮건, 은행에 돈이 많건 적건 은행은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행은 필요할 때마다 금융소비자에게 손을 내민다. 금융소비자는 그걸 알면서도 내민 손에 돈을 쥐어준다. 그리곤 시간이 지나면 그 사실을 잊어버린다.

은행과 금융소비자의 관계는 대부분 이런 식이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닐 것 같다. 바로 대출금리 문제다. 금융소비자들은 “시중금리는 내리는데 왜 대출금리는 떨어지지 않느냐”고 아우성이다.

금융소비자들이 이 같은 의문을 갖는 건 당연하다.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에 연동되고 있는데 최근 CD금리가 꾸준히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대출금리는 내려가지 않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 문제가 은행장들에게 가장 곤혹스러운 현안일 것이다. 일례로 이백순 신한은행장은 지난 1일 기자간담회에서 이에 대한 고충을 토로했다. 이 행장은 “시중금리와 대출금리가 따로 놀고 있어 문제”라며 “CD로 조달한 금액의 4배를 CD금리에 연동해 대출하다 보니 조달과 운용금리가 따로 노는 폐단이 생겼다”고 말했다.

이 행장의 발언을 산술적으로만 이해하면 대출 금리가 왜 올라가야 하는지 금방 납득이 간다.

그러나 그 과장을 따져보면 할 말이 많아진다. 조달과 운용에서 미스매치가 발생한 건 상당 부분 은행의 귀책사유다. 최근 은행은 무리한 외형성장과 과도한 사업 확장으로 또다시 어려움에 빠졌다.

그리고 어려움에서 탈출하려다 보니 후순위채 발행 등 높은 금리로 돈을 빌려와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 심지어 일부 은행의 경우 자본 확충과 부실채권 정리를 위해 또다시 정부의 지원을 받아야 하는, 아니 정확히 말하면 국민의 세금을 축내야 하는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은행은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대출금리를 올리고 싶을 것이다. 문제는 방법론과 시기, 여론의 향배다. 방법론은 어느 정도 검토를 끝낸 것 같다.

시중은행 여신담당자들은 회의를 통해 현 대출금리 기준이 되는 CD금리에서 예금, CD, 은행채 등 조달원별 금리를 조달 비중에 따라 가중 평균한 값으로 대출금리를 산정하자고 의견을 모은 것 같다.

그러나 구체적인 금리체계와 함께 시행 시기는 개별은행이 알아서 정할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담합의 소지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시기가 문제이지 금리체계는 개편될 것으로 보이는데, 이 경우 형평성의 문제가 발생한다.

약관상 기존에 대출받은 금융소비자들은 새로운 대출금리 적용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은행은 눈치를 보고 있다. 기존고객과 새로운 고객, 그리고 정부의 눈치를 봐야 한다. 지금 분위기로 봐서는 금융소비자가 새로운 금리체계를 받아들이는 게 불가피할 것 같다.

금융소비자들은 매번 불이익을 감수했다. 미우나 고우나 은행은 경제의 혈맥이고 경제성장을 하는 데 금융 산업발전이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금융소비자들의 마음은 안다면 은행은 뼈저리게 반성해야 한다.

자금조달 비용이 높아진 근본적인 원인을 밝히고 이에 대한 반성문을 써야 한다. 금융소비자들이 금융 메커니즘에 밝지 못하다는 점을 악용, 자책(自責)은 하지 않고 모든 책임을 외부 환경에 돌려선 안 될 일이다.

지금의 위기를 극복한다는 건 경영 상태만을 호전시키는 게 아니다. 금융소비자들로 하여금 은행을 다시 믿게 만들 때, 그때가 진정으로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순간이다.

강혁 편집국장 kh@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