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의 인공지능 스피커 '기가지니'가 출시 5개월 만에 10만 가입자를 돌파했습니다. 이에 KT는 29일 기가지니가 걸어온 길을 조명하면서 앞으로의 행보를 공개했습니다. 그 의미심장한 포인트를 몇 가지 짚어보겠습니다. 좋은 것도 있지만, 솔직히 걱정되는 점도 있습니다.

 

일단 기가지니의 성적부터 보겠습니다. KT는 기가지니가 1주일에 1만 가입자를 기록하는 등 판매호조를 보이고 있으며 올해 안에 50만 가입자 돌파를 기대하고 있다고 합니다.

엄청난 속도지만 여기에는 비밀이 있습니다. 기존 KT IPTV 가입자라면 일반 UHD 셋톱박스에서 월 1000원을 추가부담할 경우 기가지니를 사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국내 IPTV 시장 점유율 1위는 KT입니다.

이런 전략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선풍적 성적의 배경이 꼭 기가지니의 우수함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기가지니의 음성인식에 대한 평가도 호불호가 갈립니다. 큰 문제가 없다는 의견이 중론이지만 일부에서는 끊임없이 문제제기가 나옵니다. 특히 SK텔레콤의 누구와 비교해 기가지니의 음성인식률이 낮다는 말이 습니다.

KT 광화문 사옥 1층에 가면 기가지니를 체험할 수 있는 별도의 부스가 있습니다. 그곳에 찾아가 직접 기가지니를 체험한 적이 있는데, 당장 느끼기에 큰 문제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부스 자체가 두터운 외벽으로 만들어져 외부의 소음이 제로에 가깝고, 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실제생활에서의 활용을 그대로 재연하기는 어렵다는 느낌입니다. 심지어, 제가 “지니야, 음악을 틀어줘”라고 명령하니 평균 5번 중 1번은 인식을 하지 못했습니다. 별도의 정형 데이터가 필요해 보이는 순간이었습니다.

▲ 기가지니 부스. 사진=이코노믹리뷰 최진홍 기자

다만 기가지니의 영악한 스마트홈 전술은 칭찬받아 마땅할 것으로 보입니다. KT는 기가지니를 출시하며 IPTV와의 연동을 크게 강조했는데, 이는 '신의 한수'입니다. KT에 따르면 이용자가 기가지니에 가장 많이 요청한 메시지는 ‘TV 켜’, ‘TV 틀어줘’ 등 TV관련 지시였다고 합니다. 여기에 지니뮤직을 중심으로 음원 콘텐츠를 강화하고 하이퍼 VR 서비스 ‘TV쏙’과 같은 전용 키즈 콘텐츠도 빠짐없이 채우고 있습니다.

▲ 기가지니. 사진=이코노믹리뷰 최진홍 기자
▲ 기가지니 실행. 사진=이코노믹리뷰 최진홍 기자

특이한 것은 TV와 음악 관련 메시지에 이어 ‘오늘 날씨 어때?’, ‘미세먼지 어때?’ 등 날씨를 묻는 질문이 많았다는 점이에요. 나아가 ‘지니야, 사랑해’, ‘지니야, 우울해’ 등 자신의 감정상태를 표현하는 메시지도 사용 비중이 높았다고 합니다. 일상에 지쳐가는 현대인의 친구가 될 수 있을까요? 추후 기가지니는 물론 많은 인공지능 기업들이 곰곰이 따져봐야할 것으로 보입니다.

네이버와 협력해 ICT 및 금융권력의 결합을 추구하고 있는 미래에셋대우가 KT와 협력하는 부분도 흥미롭습니다. KT는 30일부터 음성인식을 이용한 주가 및 지수 조회, 차트 조회, 국내외 시황정보 등 인공지능 금융 서비스를 기가지니를 통해 제공한다고 발표했습니다. 기가지니에게 “지니야, 오늘 주식시장 어땠어?”라고 말하면 “코스피 지수는 달러화 약세 전망과 한국증시 저평가론 확산으로 전일 대비 0.99% 상승한 2,178.38포인트로 마감해 올해 최고치를 경신했습니다”라는 답을 들을 수 있다는 겁니다. KT도 훌륭하지만, 사실 다양한 ICT 기업과 교집합을 만드는데 주저하지 않는 미래에셋대우의 행보가 더욱 눈길을 끕니다.

KT 기가지니와 미래에셋대우의 만남은 네이버와 미래에셋대우와의 협력과 비슷해 보입니다. 바로 금융권 빅데이터 인프라와 생활 밀착형 서비스의 만남입니다.

이후 KT는 기가지니를 통해 인터넷전문은행인 케이뱅크 소개 및 모바일앱 다운로드 팝업 호출 등을 30일 제공하고 9월 중으로 퀵송금, 계좌조회 등을 집에서 음성으로 처리할 수 있는 ‘카우치 뱅킹’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부분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케이뱅크 출범 당시 기자회견 말미에 이런 말이 나왔던 적이 있습니다. 바로 “소파에 앉아 편하게 금융 서비스를 즐기는 시대를 만들겠다”입니다. 케이뱅크의 비밀무기라는 인상을 받았는데, 조만간 이를 실현시킬 생각으로 보입니다. 인공지능에서 시작된 KT의 실험이 스피커라는 그릇을 타고 금융 서비스와 연결하는 그림이 그려집니다.

 KT 기가지니사업단장 이필재 전무는 “기가지니 10만 가입자 달성을 기반으로 다양한 영역에서 혁신적인 고객 가치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면서  “이번에 파트너사들과 기가지니 관련 기술과 연구 공간을 공유한 것이 국내 인공지능 생태계가 활성화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큰 그림은 좋습니다. IPTV 경쟁력을 바탕으로 인공지능 스피커의 경쟁력을 멀티 미디어 인프라와 연계하는 방안은 국내에서 KT이기에 가능한 승부수로 보입니다.  미래에셋대우는 물론 다양한 스타트업과 연계해 일종의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전략에도 박수를 보냅니다.

다만 기본적인 음성인식에 대한 서비스 고도화는 꼭 신경을 썼으면 합니다. 여기에 기가지니만의 강점을 내세워 단독 플랫폼을 구축해 치열해지는 스마트홈 경쟁에서 우위를 보여줘야 한다는 숙제도 있습니다. 5개월 만에 10만 가입자를 유치한 기가지니에 대해 ‘지금까지 잘 해왔다’는 평가를 줄 수 있겠지만  ‘앞으로의 경쟁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