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과 출산 기피, 만혼의 증가로 저출산 문제가 지속되면서, 출산은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와는 반대로 법적인 제약과 경제적인 이유로 아이를 갖고 싶지만 가질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결혼은 싫지만 아이는 원하는 여성들, 생리적으로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남성 커플들, 아이를 갖지 못하는 부부들. 그들에게 직면한 사회적 현상을 다뤄본다. 또 전문 의사들의 조언도 구해본다.

‘출산’과 남녀 간 결혼은 밀접한 관계에 있다. 어찌 되었든 정자와 난자가 만나야 수정이 되는 생리적 이유도 있고, 연애든 결혼이든 사랑을 해야 아이를 가질 수 있다는 사회적 시각이 있기 때문이다. ‘결혼=출산’의 등식이 존재하는 것처럼 인식되던 때도 있었다.

출산에 있어 남녀 간 사랑이 중요한 걸까. ‘출산’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아기’에 대한 ‘사랑’일까. 출산의 권리는 누구에게 있는가. 이런 생각은 몇몇 개인의 머리에 불현듯 떠오른 게 아니다. 아이‘만’ 원하는 여성들이 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국에서는 이들을 초이스 맘(SMC, Single Mother by Choice)이라 부른다. 우리나라에서는 비혼모(非婚母)라고 하는데, 미혼모(未婚母)와는 다른 개념이다. 두 단어 모두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로 아이를 낳은 여성을 뜻하긴 하지만, ‘아이’를 얻는 과정에서 차이점이 있다.

▲ 출처=이미지투데이

비혼모는 ‘자발적’으로 정자은행을 통해 아이를 낳는 여성을 말한다. 특이한 점은 ‘생리학적 아빠’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로 남성과의 결혼 생활을 꿈꾸지 않는 여성들이나 노산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골드미스, 여성 커플 등이 초이스맘이 된다.

국내에서는 방송인 허수경이 두 번의 이혼 이후 정자를 기증받아 아이를 임신했다. 허수경은 이후 방송에 출연해 딸 별이와 함께 하는 행복한 모습을 보였다. 그녀는 “내가 생각하는 여성의 정체성은 엄마였다. 엄마가 돼보지 않고 생을 마감한다면 인생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별이가 내게 와줘 고맙고 행복하다”며 방긋 웃어보였다.

 

큰 키, 오똑한 코… 정자 기증 기준 까다로워

허수경이 정자를 기증받았을 당시엔 별다른 관련 법 규정이 없었다. 지금은 우리나라에서 미혼 여성이 정자를 기증받는 것이 금지돼 있다. 여성이 임신을 위해 정자를 기증받으려면 배우자, 즉 법적인 남편의 동의가 필수다. 이 경우에도 법적으로 결혼한 남편에게 무정자증이 있거나 심각한 유전 질환이 있어야 허용된다.

정자를 기증받는 과정도 까다롭다. 정자를 기증하는 남성의 동의가 필요하고, 기증 남성이 결혼했다면 또 그 배우자의 동의도 필요하다. 의료인이 이를 어기면 3년 이하의 징역형을 받게 돼 있다. 반면 미국과 영국 등 일부 국가에서는 미혼 여성에 대한 정자 기증이 허용되어 있다. 더 색다른 점은 출산의 주체인 여성이 원하는 정자를 고른다는 점이다.

▲ 유럽정자은행(Nordisk Cryobank)의 정자 배달 자전거. 냉각저장장치가 달려 있어 정액 견본 등을 실어 운반한다. 출처= Nordisk Cryobank

세계 최대의 정자은행인 덴마크의 크리오스 인터내셔널(Cryos International)사는 전 세계 40개국으로 정자를 제공하고 있는데, 일각에서는 이를 ‘현대판 바이킹족의 이동’이라 비꼬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에 대해 크리오스사는 “정자를 기증받기를 원하는 여성들이 ‘덴마크’ 남성의 유전자 특성을 물려받은, 즉 푸른 눈과 금발, 큰 키의 아이를 선호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고 했다. 실제로 크리오스사의 홈페이지를 방문하면 키·인종·머리카락색·눈동자 색·체중·정자의 활동성·기증자의 익명 여부 등 여러 가지 조건으로 검색이 가능하다.

영국은 국립정자은행은 정자 기증자의 조건으로 키 182㎝ 이상, 의사 등의 고학력 직업 출신을 요구한다. 미국의 일부 정자은행에서도 교육 수준·직업·가정환경·대머리 여부 등을 확인할 수 있다.

▲ 영화 <딜리버리 맨> 中 출처=네이버 영화

엄마 ‘욕심’ 아닌 아이를 위한 출산 이뤄져야

# 가족이 경영하는 정육점의 배달원으로 일하는 평범한 남성 ‘데이비드’. 어느 날 그에게 533명의 아이가 생겼다. 20여년 전 아르바이트 삼아 기증했던 정자로 인해 태어난 아이들의 숫자다. 기증자에 대한 비밀은 지켜져야 한다는 원칙으로 인해 아이들은 데이비드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533명 중 142명의 아이들은 ‘생물학적 아버지를 알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자의(自意)에 의해 원하는 아이를 가질 수 있다고 해도 부작용은 존재한다. 2013년 개봉한 영화 <딜리버리 맨>을 통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한 남성의 정자가 남용되면 수많은 이복형제가 태어날 수 있다. 실제로 세계 곳곳에서는 특정 정자 기증자 한 명을 아버지로 둔 아이들이 10명, 20명, 심지어는 100명이 넘는 사례가 발생한 바 있다.

문제는 이들은 서로를 알아볼 수 없기 때문에 근친상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또 정자를 기증한 남성이 질병 보유자라면 그 피해는 수많은 아이에게 고스란히 갈 수밖에 없다. 실제 덴마크에서는 유전병인 신경섬유종증을 앓던 남성의 정자 기증으로 100여명의 아이들이 태어났으며, 일부는 이 병을 똑같이 앓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영국에서는 한 명의 정자로 수정시킬 수 있는 아이의 수를 약 10명으로 제한하고 있지만, 이 얘기는 즉 10명의 이복형제가 태어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소중한 존재가 되어야 할 생명을 상품처럼 골라 만든다는 점도 문제가 된다. 키, 외모, 학력 등 자신이 원하는 유전자 조건에 맞춰 아이를 낳는 것이 출산의 존엄성을 해칠 수 있다는 것이다.

양육권 문제는 어떠한가. 정자 기증자가 나중에 아버지로서 권리를 요구할 수도 있고, 태어난 아이가 자라 ‘생물학적 아버지’에게 각종 책임을 물을 수도 있다. 유교 문화적 측면에서 정자 기증을 통해 태어난 아이는 행복권이 침해되고, 가족 관계가 혼란스러워질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이러한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갖고 싶은 미혼 여성에게 한 산부인과 전문가는 “어쨌든 임신이라는 건 자신과 상대방의 유전자가 만나서 형성되는 것이다. 출산이라는 것은 아이의 정체성과도 문제가 되는 일”이라며 “다른 사람이 관여되어 있다면, 어떤 결과가 되든 기증자와 싱글맘 모두 종합적인 책임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