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랜 된 건물이다. 높은 빌딩이 즐비한 공덕동에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이 있다는 것이 생소했다. 유종일 교수를 만난 곳은 이렇게 허름한 건물이었다. 그는 이곳에서 ‘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의 이사장으로 활동한다. 하버드대 경제학 박사인 그는 이명박(MB)정권하에서 쓴 소리를 많이 했다. 이 때문에 KDI국제정책대학원에서 정직처분을 받았다.

그는 주빌리 은행의 은행장이다. 은행이지만 예금과 대출을 하지 않는다. 오로지 오래된 채권을 사서 소각할 뿐이다. 소각이후 채권의 채무자는 채무에서 자유로워진다.

“여건이 되면 미국 HBO의 존 올리버라는 코메디언을 데리고 오려고 한다. 그는 정치,사회를 비판하면서 웃음을 주는 수준 있는 코메디언이다”

코메디언을 언급하는 유 교수가 의아하다. “미국은 의료보험이 되지 않는다. 아프면 곧 파산이다. 이 코메디언은 병원이 가지고 있는 장기 연체 채권을 싼 값에 사와서 소각한다. 그가 지불한 금액이 우리 돈으로 200억원은  될 것이다.”

그는 존 올리버야말로 주빌리 은행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설명해 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현 문재인 정부의 가계부채 정책과 대안에 대한 유 은행장의 생각은 무엇인지 들어봤다.

유종일 교수는 정부의 가계부채 정책이 더 전향적이고 구체적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사진=이코노믹 리뷰 노연주 기자

현재까지 문재인 정부의 가계부채 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현재까지 정책은 큰 흐름에서, 큰 그림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다만 정책의 디테일이 부족한 듯하다. 한편으로는 큰 그림을 띄워놓고 뒷감당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있다.

물론 어디 하루아침에 해결되겠는가. 가계부채 1300조원 외에 제도권 밖의 채무도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쉬운 문제는 아니다. 해결 방법은 4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겠다.

첫째, 우선 가계소득의 증가다. 이 문제는 누구나 말로는 쉽게 할 수 있지만, 실현하는 것은 어렵다. 소득 분배 구조가 대기업에 몰려 있고 가계소득이 위축되어 있는 것을 해소해야 한다. 따라서 비정규직, 최저임금제 문제 등을 해결해 불안정한 가계소득 체계를 정비해야 한다.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부동산 경기를 살려서 경기 부양을 하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정책은 다시 경제를 악화시키는 것이고 가계부채 문제를 심화시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지금도 DTI(총부채상환비율)를 강화하겠다고 하니까 부동산 경기가 죽는다는 불평이 나오는데, 주택시장은 서민들의 주거안정과 유효 수요자를 위한 정책으로 조성되어야지, 투기적인 주택수요는 가계부채문제에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이 부분을 확실히 차단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과다한 대출을 받아 집을 사야 할 필요성도 있겠지만,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부채를 안고 집을 사는 일은 경계해야 한다.

둘째, 자영업자 문제다. 가계부채 중 상당수 부분은 자영업자의 점포운영자금이다. 사업자로서 신용이라는 것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들은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거나 신용으로 가계대출을 받는다. 자영업자에 대한 대책을 빼놓아서는 안 된다.

셋째, 이 두 가지는 장래적인 것이다. 지금 발생되고 있는 부채문제와 관련해서 문재인 정부의 정책은 전향적이기는 하나, 충분하지 않다. 금융기관의 무분별한 대출을 규제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와 관련해서는 더 강력한 대책이 필요하다.

넷째, 법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소멸시효가 지난 채권에 대해 다시 소송을 제기해서 부활시키는 행태는 없어야 한다. 법의 맹점을 이용해 법을 잘 알지 못하는 서민들을 상대로 채권추심을 하는 행태는 개선해야 한다. 개선되지 않는다면 법률을 개정해야 한다.

이 네 가지를 전략적으로 잘 운용해야 한다고 본다.

유 은행장은 채권자인 금융기관의 도덕적 해이도 반드시 문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진=이코노믹 리뷰 노연주 기자

장기, 소액 채무를 탕감하자는 주장에 대해 형평성과 도덕적 해이를 거론하며 반대하는 의견도 있는데. 

도덕적 해이라는 말은 채무 문제에서 유래된 것이 아니라 본래 경제학적 개념이다. 다수의 언론에서 이 개념을 모르고 쓰는 경우가 많았다. 사실 이걸 도덕적 문제로 본다면 부도덕한 것이나 비도덕적이라고 해야 하지 않겠나.

도덕적 해이라는 개념은 보험에서 나온 이론이다. 이를테면 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은 자전거 소유자가 있다고 가정했을 때, 평소에는 자전거의 도난에 대해서 각별히 신경을 쓰다가 보험에 가입한 후에는 안일하게 도난에 대한 위험에 노출시키는 것을 말한다. (중고 자전거가 도난당하면, 새 자전거를 얻을 수 있다)

이것은 내가 어떤 계약을 함으로서 나의 행동 유인이 나에게 유리하고 상대방에게 불리한 것을 말한다. 결국 도덕적 해이는 보험이론에 적용된 개념이다.

사람들이 도덕적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는 문제다. 이런 문제가 거론되어야 해명이든 설명이든 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이렇게 거론되는 것이 설명할 기회가 돼서 고맙기도 하다.

‘빚을 갚을 수 있는데도 너 갚지 말라’고 한다면 분명 도덕적인 문제가 있다. 문제는 돈을 안 갚는 사람이 아니라 ‘못 갚는 사람’이다. 이것을 어떻게 아느냐고 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타당한 말이다. 신이 아닌 이상 완벽하게 알 수는 없다. 하지만 통계와 확률로 근접하게 가늠할 수는 있다.

기준은 이렇다. 채무자가 상환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는, 누구보다도 오랜 추심을 한 채권자가 잘 안다. 채권자가 오랜 노력에도 불구하고 못 받았다면 채무자가 아주 어려운 사람 아니겠는가. 이렇게 고통받는 사람들은 구제해줘야 한다는 것이 오히려 형평에 맞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도덕적 해이가 아닌 것이다.

우리나라가 OECD 국가 중에서 자살률이 매우 높다. 삶의 희망이 없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다. 한 푼이라도 벌면 뜯어가는 이런 삶에 대해 인권 차원에서라도 구제해야 한다.

반면에 금융기관은 어떤 도덕적 문제도 없느냐를 따져 봐야 한다.

우리나라 은행은 관치주의에 물들어 있다. 박정희 시대 때 정부 주도의 경제개발을 하면서, 정부가 은행을 쥐락펴락했다. 그래서 정부가 정책적으로 특정 분야에 대출을 해줘라 하면 이것을 거절하지 못했다. 이렇게 말을 잘 들었는데도 불구하고 은행이 부도가 나면, 정부가 살려준다.

은행이 이 때문에 타성에 젖었다. 정부가 하라면 하고 나중에 어려우면 정부가 지원해 주겠지 이런 버릇이 있다. 실제로 그랬다. 외환위기 때도 그랬고 미국 월가도 그랬다.

정부도 은행이 신용창출을 통해 경제 전체에 통화 공급을 하는 지급결제 시스템이기 때문에 은행이 망하면 경제가 망하니까 가만 둘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은행의 안일함을 좀 더 키우고 은행은 좀 더 위험하지만 수익률이 높은 곳에 대출을 해 준다.

금융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다. 그래서 함부로 대출을 해주면 안된다. 이것을 회수하지 못하면 또 구제금융을 받는다. 금융기관이 구제금융에 기대면 더 위험한 대출을 하게 된다. 이 때문에 금융기관의 도덕적 해이는 항상 상존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서민들의 대출에 대해 금융회사의 도덕적 해이가 더 크다. 돈을 빌려줄 때는 갚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전제하의 빌려준다. 그런데 일방이 돈을 못 갚는 상황이 온다면 이런 것은 쌍방의 책임이다. 한쪽만 압박해서는 안 된다.

돈을 빌리고 갚지 못했을 때, 금융기관이 다시 채무변제를 할 수 있도록 조정을 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채무조정이 안 되면, 아예 탕감을 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빌려주는 사람도 더 신중하지 않겠는가.

그렇지 않고 금융기관이 채무자를 극단적으로 압박한다면 이것이야말로 도덕적 해이가 된다.

사진=이코노믹 리뷰 노연주 기자

국민행복기금은 청산해야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국민행복기금은 이름만 보면 공익단체인 것으로 보인다. 말 그대로 국민을 행복하게 하는 기금 아닌가. 사실 국민행복기금의 면면을 보면 그렇지 않다.

국민행복기금은 그냥 금융기관이 주주로 있는 채권회수기관이다. 국민행복기금은 이미 상각된 채권을 아주 저렴한 값에 매입해서 채권추심을 해왔다. 실적이 좋아서 이미 원금을 회수했다는 말도 나온다. 이 이익은 금융기관의 배당금으로 분배됐다.

국민행복기금의 장기 채무자들은 취약계층이 많다. 국민행복기금은 채권회수를 위해 채권추심회사에게 하청을 준다. 결국 국민행복기금이 취약계층에 대해 추심을 하는 구조다.

어떻게 보면 가장 열악한 지위에 있는 사람들의 고혈을 짜서 금융회사들이 이익을 챙긴 거 아니냐. 이 때문에 정부가 국민행복기금을 청산해야 된다. 국민행복기금은 공익적인 비영리 단체로 만들어야 한다. 쥐어짜서 이익을 내는 구조가 아니고 공익적 목적으로 가진 채무조정절차로 전환해야 한다.

서민금융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면?

근본적으로 서민금융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문제가 생기면 항상 금융지원이다. 중소기업, 농업, 주택 문제 등 항상 금융으로만 지원하려 한다. 어느 정도는 필요하겠지만, 이런 식이면 빚만 남기는 것이다.

돈으로 지원만 해주고 못 갚으면 뒷감당은 어떻게 하겠나. 그래서 서민지원은 금융과 복지를 균형 있게 이루어야 한다. 또 서민금융은 구조조정과 연계해서 사람을 살리는 금융이 되어야 한다.

또 서민금융진흥원이 채무조정을 같이 하고 있는데, 이는 공적인 기관이 별도로 운영하는 것이 맞다. 한쪽에서 대출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채무조정을 하는 것은 좋은 구조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