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로봇을 상업적으로 판매해서 성공한 사례는 일본 소프트뱅크가 공급하고 있는 페퍼(Pepper) 로봇 서비스이다. 용도를 구분하면 크게 가정용과 비즈니스용 그리고 학습용으로 구분된다. 가정용 페퍼는 일종의 반려 로봇과 같이 집안에서 식구 대접을 받는다. 식구들이 아침에 나갈 때나 귀가 시에 인사를 해주며 상황에 따라서 함께 기뻐하거나 격려의 말을 해준다. 내장된 카메라를 사용해서 가족사진을 찍거나 사진 앨범을 보여준다. 가족들과 로봇이 소통하면서 가족의 말 상대가 되어 외로움을 달래주거나 어린이들의 친구가 되어준다는 콘셉트이지만 크게 확산되지는 않고 있다.

비즈니스용 페퍼는 종업원 행세를 하는 로봇이다. 월임대료 5만5000엔이면 페퍼를 직원으로 파견해준다. 현재 약 2000개 회사가 페퍼를 파견 직원으로 채용해 활용 중이다. 페퍼는 주로 접객, 접수, 통역, 환자 심부름 등의 업무를 담당하고 있으며 장소에 따라 특화된 역할을 맡기도 한다. 예를 들면 음식점 앞에서 손님을 호객하고 손님이 다가오면 인사를 하고 악수도 하고, 날씨나 계절에 관한 대화를 나누거나 짧은 일상 대화를 구사하면서 손님의 호기심을 일으켜서 메뉴를 추천해 손님을 식당 안으로 들어가게 만든다. 소프트뱅크는 비즈니스 사례별로 고객을 대하는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해서 제공하며 사용자는 애플리케이션을 구매해서 사용한다.

학습용 페퍼는 학교 교실에서 프로그래밍 교육 목적으로 사용되며 로봇의 구조와 프로그래밍의 기초를 학생들이 익힐 수 있는 교육과정을 제공하고 있다. 일본 문부성에선 2020년도부터 초등학교에서 프로그래밍 교육을 필수로 채택하기로 한 이유도 있지만, 비약적으로 진화하고 있는 IT사회에서 컴퓨터를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을 자녀들에게 교육시키려는 학부모들의 관심이 매우 높다. 실제로 학생들이 프로그래밍 실습을 통해서 페퍼의 동작을 제어하는 경험을 해 보면 성취감과 만족감을 높일 수 있다. 이런 실습과정은 프로그램에 오류가 있을 경우에 시스템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도 직접 체험할 수 있기 때문에 교육효과가 높다.

소프트뱅크가 로봇에 관심을 두고 프랑스 알데바란(Aldebaran) 로보틱스에 투자한 시점은 2012년이다. 당시 알데바란은 주로 로봇 연구실들을 대상으로 휴머노이드 로봇 나오(Nao)를 범용로봇 플랫폼으로 상업 판매하던 중이었다.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은 로봇을 연구실에서 일상생활 속으로 옮겨 서비스 로봇 시장을 개척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알데바란에 지분 투자를 하고 저가형 서비스 로봇 개발을 제안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휴머노이드 로봇은 인간 모습의 사지(四肢) 관절형 로봇인 데 비해 알데바란은 하체를 고정바퀴형으로 바꾸고 상체와 얼굴 표정만 변경 가능한 저가 보급형 휴머노이드 로봇을 설계하게 되었다. 이렇게 탄생한 페퍼 로봇은 2015년 6월부터 소프트뱅크를 통해 매월 온라인으로 주문을 받아 1000대씩 한정 공급했는데 매월 발매 시작 1분 만에 완판되는 성공을 거듭했다. 페퍼가 시장에서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자 알데바란 CEO인 브루노 메소니에(Bruno Maisonnier)는 알데바란의 성공을 비는 마음으로 자신의 보유지분의 95%를 소프트뱅크에 팔아버렸다. 브루노는 로봇 개발에만 30년간 종사해온 베테랑인데 소프트뱅트 덕분에 돈도 벌고 로봇 비즈니스를 탈출할 수 있게 됐다.

 

구글이 로봇 기업들을 인수했던 이유

한편 구글은 2013년 12월에 갑자기 세계 최고 수준의 로봇 기술기업들 8개를 한꺼번에 인수해서 세상을 놀라게 했다. 구글의 과감한 로봇 투자를 보고 사람들은 이젠 로봇 시대가 다가왔다고 짐작했다. 하지만 <뉴욕 타임즈>는 구글이 갑작스럽게 로봇에 투자를 한 건 모호하다고 혹평을 했다. 언젠가는 제조공장이나 물류창고에서 로봇이 작업을 하는 상황을 예상할 수 있지만 구글이 투자한 로봇업체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확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인수된 업체들이 개발한 로봇들이 어떤 로봇은 할리우드에서 일하고, 어떤 로봇은 전쟁 또는 재난 대응용 로봇을 개발하고, 어떤 로봇은 집사용 서비스 로봇으로 개발되는 등 집중하는 분야가 없이 모든 로봇산업계를 망라했기 때문이다. <뉴욕 타임즈>는 구글이 투자한 로봇 기업들은 민수용 로봇보다는 주로 군수용 또는 전자산업체 등의 제조업에 투입할 로봇이라고 추측했다. 구글도 명확한 목표가 없었던 것 같다. 처음엔 아마존이 드론을 이용해서 상품을 고객에게 배달한다고 선전하듯이 로봇을 상품배달 서비스에 투입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다양하게 고려했다. 언젠가는 백화점이나 양판점에서 구매한 상품을 고객의 집까지 자동 배달해주는 로봇이 필요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구글이 로봇에 투자를 한 계기는 안드로이드를 개발했던 앤디 루빈(Andy Rubin)이 로봇의 상용화 시점이 다가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는 공상과학 같은 구글의 자율자동차 개발을 2009년에 과감히 시작했듯이 2014년은 로봇산업을 구글의 미래 수종산업으로 삼아 적극적으로 기술개발을 할 시점이라고 구글 설립자인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를 설득했다. 루빈의 판단으론 소프트웨어와 센서와 같은 분야는 아직 미흡하지만 로봇의 팔, 다리 동작이나 위치이동에 필요한 하드웨어 기술은 거의 해결되었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미국과 일본의 로봇업체들을 비밀리에 접촉해 인수 조건들을 타결했다. 루빈은 로봇 업체들의 하드웨어 실력과 구글이 보유한 소프트웨어 실력 그리고 시스템 설계실력을 합치면 로봇의 실용화를 앞당길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런데 루빈은 로봇 기업들을 인수한 지 채 1년도 되기 전인 2014년 10월에 구글을 떠나고 말았다. 소문으론 순다 피차이(Sundar Pichi)가 먼저 승진하자 구글을 떠나 새로운 벤처기업인 에센셜(Essential)을 설립했다고 한다.

 

로봇의 실용화는 쉽지 않다

루빈이 떠난 구글의 로봇사업은 일종의 좌절감을 겪게 됐다. 구글이 인수한 로봇기업들 중 대중에게 잘 알려진 기업은 보스턴 다이나믹스(Boston Dynamics)이다. 다양한 로봇들이 걷고, 달리고, 뛰는 모습들을 유튜브를 통해 공개해 대중의 관심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스턴 다이나믹스가 개발한 로봇들은 군사용이나 특수목적용에 적합하거나 경제성 면에서 민수용으로 발전시키기 곤란한 로봇들이 대부분이다. 구글이 인수한 나머지 로봇 기업들은 대중에게 알려지지도 않아서 무슨 기술들을 개발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고, 구글은 로봇기술의 상업적 발전에 관해서도 트윗, 구글+, 블로그 등을 통해 전혀 공개하지 않고 있다. 각종 구글 행사에서도 로봇은 전혀 취급하지 않았다. 이는 짐작하건데 로봇기술 발전이 실망스러운 수준에 머물렀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루빈이 사라지면서 강력한 구심점이 없어진 탓도 있겠지만 로봇공학이 하루아침에 반짝 성과를 낼 수 있는 분야가 아니라는 반증이 되기도 한다. 로봇 기업들의 무소식은 훨씬 늦게 구글에 합병된 인공지능 전문 벤처기업인 딥마인드(DeepMind)가 알파고를 통해 막강한 기술성과를 과시해온 것과 매우 대조적이다. 로봇 종사자들은 로봇을 장난감 수준에서 벗어난 진정한 서비스 로봇으로 개발하려고 온갖 노력을 다하고 있지만 깜짝 놀랄 만한 성과를 거두는 일이 쉽지 않다. 설령 필요한 기술들은 쉽게 구할 수 있다 해도 어떤 정해진 틀 속에 모두 집어넣어서 안정성과 경제성을 확보하고 소비자가 기대하는 성능을 얻기가 매우 어렵다. 구글이라고 다를 수가 없다. 로봇 종사자들은 구글이 차세대 로봇혁신에 대해 원대한 그림을 그려내길 기다려 왔지만 아직껏 소식이 없더니 결국 로봇기술이 가장 빼어난 보스턴 다이나믹스와 샤프트(Shaft)를 매각해 버리는 단계에 이르렀다. 구글이 하드웨어 기술인 로봇을 더 이상 핵심영역으로 보유할 의사가 없다고 결정했다. 구글은 모든 역량을 소프트웨어인 인공지능에 집중하기로 했다.

 

휴머노이드 서비스 로봇이 성공할까?

구글에 인수되기 전에 샤프트는 DARPA 로봇경진대회 예선에서 1등을 했던 기업이다. 구글에 합병되면서 최종결선에 참가하지 않았지만 만약 참가했더라면 KAIST의 휴보(Hubo)가 최종 결선에서 우승한다고 장담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샤프트는 도쿄대 출신들이 설립한 벤처기업으로 이족보행 로봇을 전문으로 개발하는 기업이다. 소프트뱅크는 2016년에 알파벳으로부터 샤프트를 인수해 다시 일본 기업으로 만들었다. 소프트뱅크는 2015년에도 물류창고용 로봇을 전문으로 제조하는 페치(Fetch) 로보틱스의 지분을 2000만달러에 매입했다. 그리고 2017년엔 가장 강력한 보스턴 다이나믹스를 구글로부터 인수했다. 이젠 소프트뱅크가 세계 최대 로봇기업이고 로봇산업의 미래를 밝히는 선봉에 서게 됐다.

소프트뱅크가 이미 선보인 휴머노이드 로봇 페퍼는 기능면에서 보면 터치패드를 가진 키오스크나 알렉사와 같은 탁상용 조수가 할 수 있는 일과 별로 다르지 않다. 하지만 페퍼는 손님 앞에서 음악을 연주하고, 춤을 추고, 주변을 둘러보고, 얼굴 표정을 바꾸며, 지나가는 사람에게 말을 걸고 셀카를 찍어 준다. 로봇의 손과 팔 동작 그리고 몸통을 구부리는 동작이 가능하다. 상대의 표정을 읽으며 감성을 전달하는 기능도 있다. 이런 기능만 갖추고도 사람들의 관심을 끈다. 이미 싱가포르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진출해 호평을 받고 있으며 대만에도 곧 진출할 예정이다.

소프트뱅크의 손정의는 로봇 플랫폼을 미리 점령함으로써 앞으로 인공지능이 발달하게 되는 시점에 사람들이 소통의 매개체로 상업용 서비스 로봇을 활용하게 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로봇에 잔뜩 끼인 고급 기교기술들을 빼고 실용적인 소프트웨어기술을 접목하면 훌륭한 미래형 로봇이 될 수 있다고 그는 믿고 있다. 로봇의 미래는 소프트뱅크의 비즈니스 전략에 의해 크게 좌우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