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재훈 식탁이 있는 삶 대표.

김재훈(37) 식탁이 있는 삶 대표는 ‘농민들과 함께하는 플랫폼’을 지향하는 유통 사업가다. 단순히 산지 직산물을 유통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다양한 신품종 상품의 가치를 디자인하고 기획하는 작업을 한다. 그가 국내 농산물 시장에서 유행시킨 ‘초당 옥수수’는 대표적인 성공 사례다. 농민들이 계속해서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제 값을 받을 수 없는 구조’ 때문이라고 보는 김 대표는 수 차례 사업 위기를 겪은 후 100억의 매출(또 다른 농업회사법인 매출 포함)을 올리며 유기농 분야 특화 기업인으로 거듭난 청년 리더이기도 하다.

어떻게 젊은 나이에 이렇게 큰 사업을 하게 됐는가.

“부모님께서 의성에서 마늘 농사를 지으셨었는데, 부모님 일을 도와드리면서 왜 농민들이 어려워야 하나, 생활이 윤택해지는 것도 어려울까 고민이 많았다. 농산물 시세가 폭락해서 힘든 농민도 많고, 수익성이 높지 않아서 힘들어 하는 사람도 많다.

그 뒤에 대학 행정학과(동국대)에 진학해서 국제통상학을 복수전공하며 우리 농산물 수출과 관련된 관심을 가졌다. 그 당시 흑마늘이 유행하던 때였다(2006-2007년경). 흑마늘 수출을 막연히 생각하다가 싱가폴 무역 박람회 전시장에도 찾아가 보고, 가서 간단한 업체 설명회를 할 기회도 잡았는데, 그런데 때가 잘 맞아서 30-40만 달러 어치를 수출하게 됐다. 그렇다 보니 학교 안에서도 이슈가 됐었다. 당시 동국대 총장님이던 오영교 전 산업자원부 장관께서 이 이야기를 듣고 나를 불러 주셨다. 그래서 산업통상자원부가 관할하는 사업단의 경영대 교수님들에게 기업 관점에서 일을 도와드리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그 뒤로 농가 컨설팅 사업 등에도 참여하게 됐고, 성과를 하나씩 내게 되었다. 그 뒤로 신용보증기금 대출을 받아서 정식으로 회사를 세우고 농산물 수출과 관련된 일, 농가 컨설팅을 계속 하다가 의성에 계신 친척이나 잘 아는 분들의 농산물을 해외로 내보내는 일을 했다. 그러면서 점점 사업이 커지고, 관심을 가져 주는 분들이 많게 되었다.”

‘어렸을 때부터 식품에 빠져 있었다’고 이야기를 했는데. 수출입과 관련된 일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고 들었다.

“부모님께서 열려 계신 분이다 보니, ‘우리 농업이 세련되어야 한다’는 말씀을 자주 들었다. 농민들이 질곡의 세월을 뛰어넘기가 너무 어려운데, 국내 농산물의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가 유통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시장의 크기가 한정되어 있다 보니 해외 시장을 개척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봤다. 그래서 케냐에서 수산물 수입 관련된 일도 했었다. 몸바사에서 수산물을 들여 와서 좋은 가격에 파는 시스템을 고민했고, 원주민들과 같이 사업하는 방법도 알아 내고, ‘골든 딥 시크랩’(심해에서 나는 요리용 게)을 수집하고, 포장패키지도 만들어서 제대로 된 완제품으로 유통하는 일을 했다. 그러다가 소말리아 해상에서 우리 어선이 나포된 사건이 있었는데, 선장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선원을 현지인을 쓰다 보니 나포 후에 제대로 된 관리가 안돼서 수산물이 다 썩어버렸다. 그 일을 겪은 후 정말 사업이 힘들었다.”

▲ '식탁이 있는 삶'이 최근 유행시킨 '초당옥수수'(제공 : 식탁이 있는 삶)

수산물 사업이 어려워진 후에 다시 농산물에 관심을 기울이게 됐다.

“부모님께서 농업을 하시다 보니,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농산물 유통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신품종 작물 유통을 해보면 어떨까 생각을 했다. 내가 세운 회사를 통해서 세련된 농업을 다시 해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내가 젊고, 농산물은 즐거워야 하고, 대형 마트 같은 곳에서 코드도 따고 하면서 직접 농산물 종자 수입도 하고, 심어보면서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대기업들은 원래 신품종 작물 관련된 유통을 잘 하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납품을 시작하니까 도움을 주는 분들이 많았다. 그리고 낙과(떨어진 과일)이나 파과(파손된 과일)들은 제 값을 못 받는 경우가 많은데, 전통 발효식초를 통해서 작업을 했었다. 그래서 경북과학대학 식품 공장을 비롯해 여러 곳을 찾아 다니면서, 식초 개발과 관련된 작업을 배웠다. 그 뒤에 식초 공장을 인수하고, 농산물 유통과 재배도 했고, 전남 영광과 MOU를 맺어서 식초 테마파크를 만드는 작업에도 참여했다.”

 

대기업의 횡포도 경험했다고 한다. 정말 견디기 어려운 난관이었을 것 같다.

“28세 당시에 ‘주식회사 엠팜’(M-Farm)이라는 회사를 운영했었다. 모 대기업에서 ‘자색당근’을 심어서 납품을 해 보라고 제안을 해서 재배를 했다. 그런데 갑자기 구매 담당자가 바뀐 뒤에 납품을 받지 않겠다고 해서 정말 큰 어려움을 겪었다. 가락동에서도 표준 가격이 존재하지 않는 품종이었고, 문제가 생기고 나서 타격을 입어 회사를 정리하게 됐다. 그 뒤에는 개인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다가 고시원에 살며 노가다도 해 보고, 알바도 하면서 방황을 했다. 그러고 나서는 각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산지도 방문하고, 식자재 공부를 깊게 하려고 했다.

‘어렸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말 하지만, ‘어려서 고생을 안 해보고 그런 말을 하지 말라’고 말해 주고도 싶었다. 빚 독촉에도 시달리고, 아는 사람들도 피해야만 하는 상황도 있었다. 그러다가 몇몇 농가에서 나한테 독점 공급을 해 주신다고 좋은 제안을 주신 분들이 있었다. 농산물 쪽으로 계속해서 생각을 갖고 있다는 점을 좋게 보시고 산지 거점 센터를 운영하시는 분들이 종자부터 움직일 수 있는 재배 구조를 이야기해 주셨다. 그러면서 시스템과 가치 사슬 개념을 고민하게 됐다.”

신품종 작물과 유통 플랫폼의 결합이라는 관점이 인기를 끌었던 것 같다.

"계약 재배나 특수 작물 재배를 다시 시작하면서 미니 방울 양배추, 짠맛 나는 채소 등 신기한 채소들을 많이 공부하고 유통했다. 자색 당근 등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졌다. 전국에서 좋은 농산물을 들여 오고, 철학과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는 ‘큐레이션 플랫폼’에 대해 고민하게 됐다. 사이트를 통해 직접 재배하는 농산물, 각 산지에서 특화된 좋은 산물들을 소개하는 채널을 만들었다. 그 결과 ‘식탁이 있는 삶’이라는 채널을 4년 전에 열게 됐다.

식품은 사람이 먹는 것이기 때문에 종자, 물성 등을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식품을 통해 바라보는 가치가 중요하고, 어떤 작물을 하든 작육 상태, 수확후 관리, 작물의 생육 매커니즘을 이해하는 일이 절실하다. 그 과정을 제대로 소비자들에게 전달해야만 시장이 커질 수 있다고 봤다. 요즘 시스템이 강화되었지만, 식품 시장 구조가 발전하지 못하는 이유는 ‘식품 전문 유통채널’들 중에 재대로 성공한 사례가 없기 때문이라고 본다. 대기업이나 오픈마켓이 갖고 있는 시스템은 식품과 가전을 다 팔다보니 공헌 이익이 정말 떨어지고, 식품 관련된 마케팅을 담당하는 사람들은 비전문가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품질과 상품의 원 상태에 대해 모두 신경 쓰는 시스템을 구축하려고 했다. 그게 ‘식탁이 있는 삶’의 성공 비결이다. 우리는 식품 회사이기 때문에, 마늘이든 옥수수든 농산물의 물성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공급하자는 신조를 갖고 있다."

▲ '식탁이 있는 삶'이 추진하는 산지 농가 협력 유통 프로그램(제공 : 식탁이 있는 삶)

종자주권 확보나 농가 컨설팅 등의 작업도 계속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많은 사람들이 종자 주권을 이야기하지만, 우리가 마트에서 사 먹는 대부분의 종자가 해외에서 들여 온 것이다. 일본 종자가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우리 종자부터 식탁까지 전달을 해 보자고 생각했다. 고구마의 경우 국립식량과학원과 ‘국산 종자 프로젝트’에 참여해서 국산 품종 고구마 런칭도 시키고, 수입산 종자 중에서도 국내에서 적합한 것들은 자연교잡 시켜서 국산화하는 작업을 했다. 농업회사 법인 관점에서 보면 소비자들에게 산지의 특색이 있는 맛을 전달하고, 식품 이상의 가치를 전달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닌가 싶다. 신소득 작물로서 농가들의 발전에 도움도 되고 말이다.

우리가 유통을 하고 있지만, 직접 농사짓는 것들이 꽤 된다. 미니 수박, 홍감자, 컬러메론 가은 것들도 있다. 작년에는 토종 다래(토종 키위)를 통해 사람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았다. 마늘, 세발 나물, 의성 토종 가시홍화씨와 관련된 종목들도 다뤘다.

또 철학이 있는 농민들을 적극적으로 협업 대상으로 해서 같이 상품 기획도 하고, 유통하는 작업을 한다. 매물도 방풍나물이 매우 좋다. 과거에는 산지 수집상들이 농민들에게 저가로 매입해서 시장에서 비싸게 팔았지만, 우리는 그 상품 자체를 브랜딩해서 팔려고 했다. 대기업들은 그냥 수집상들에게 받았지, 원산지 산물을 신뢰성 있게 받아 오려는 노력을 별로 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농민들에게 온라인 판매가 가능한 구조도 만들어 주고, 박스나 스티커 등도 전달을 해 주면서 ‘제대로 된’ 가격을 받고 팔 수 있는 길을 열려고 했다. 농민들에게 절대로 ‘싸게’ 팔지 말고 ‘제 값에’ 팔라고 컨설팅한다. 많은 작물들이 제대로 된 재배 매뉴얼이 없는 경우가 많다. 그때는 유통 회사 입장에서 가르쳐 준다고 생각하고 접근한다.”

앞으로 농산물 유통과 재배 사업을 계속 하면서 목표가 있다면 어떤 것일까.

“농민들과 같이 커 가는 플랫폼을 만드는 게 꿈이다. 농민들로부터 싼 값에 작물을 받아 비싼 값에 판다는 관점이라면, 직원 몇 명 두고 유통 몰을 운영하면 된다. 그렇지만 나는 땅에 발을 딛고 농민들과 함께 구른다는 마음으로 사업을 하고 있다. 앞으로 산지로 떠나는 컬리너리 투어 프로그램을 비롯해 다양한 콘텐츠들도 고민하고 있는 상황이다. 좀 더 많은 분들이 농업의 즐거운 가치에 공감하고 농산물을 쾌적하게 소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주력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