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시바 낸드플래시 사업부가  한미일 연합의 품에 안기는 수순을 밟고 있다. 그러나 한미일 연합이 도시바를 품는다고 해도 전체 낸드플래시 시장의 판세는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가장 많은 금액을 써내고도 고배를 마신 대만의 폭스콘이 미국내 투자를 통해 반도체 분야에서 협력을 모색하고 있어 반도체 시장에서는 여진이 계속되고 있는 형국이다.  

▲ 출처=픽사베이

SK하이닉스는 무엇을 얻나

일본 경제신문 니혼게이자이 등에 따르면,  한미일 연합의 지분 구성은 총 2조엔 출자를 전제로 보통주 기준 일본 민관펀드인 산업혁신기구가 50.1%, SK하이닉스와 베인 캐피털이 33.4%, 일본 정책투자은행이 16.5%다. 산업혁신기구가 별도의 자회사를 설립하는 모델이다.

이에 대해 일본정부의 승리라는 말이 나온다. 당초 일본정부는 도시바의 새로운 주인을 가능한 일본 내부에서 찾고  여의치 않으면 동맹국인 미국이 되기를 원했다.  대만 폭스콘 다음으로 높은 인수가를 제시한 브로드컴이 물망에 올랐으나 결국 일본 정부의 영향력에 있는 산업혁신기구와 정책투자은행이 66.6%의 보통주 지분을 가져갔다. 산업혁신기구는 일본 정부가 90%의 자금을 출자한 곳이며, 정책투자은행은 일본 국책은행이다.

SK하이닉스는 이상과 현실의 간극을 교묘하게 파고들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도시바가 매물로 내놓은 낸드플래시 사업부의 지분이 올라갈수록 인수금액도 천정부지로 치솟은 상태에서 단독으로 입찰에 나설 경우 돈도 돈이지만 일본 정부의 반발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았다.  미국 사모펀드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를 대신해 베인캐피털과 함께 한미일 연합에 들어가 자금 부담도 덜고, 나름의 지분을 확보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SK하이닉스는 한미일 연합의 도시바 인수를 어떻게 활용할까. 일본 정부가 사실상 66.6%의 지분을 가져가고  SK하이닉스는 베인 캐피털과 33.4%의 지분만 확보했다. 정확한 점유율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최소 15%에서 최대 25%에 이른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게다가 베인 캐피털은 글로벌 컨설팅 기업이기 때문에 반도체 운영에 대한 이해도는 SK하이닉스에 뒤질 수 밖에 없다. 양사의 협의에 업계가 주목하는 이유다.

그렇더라도 K하이닉스 입지가 굳건한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일부 언론을 통해 애플이 한미일 연합에 참여할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데 여기에 도시바와 합작공장을 건설해 협력하고 있는 미국의 웨스턴디지털이 개입할 경우 상황은 복잡해질 수 있다.

애플은 최근 통신칩 자체 제작을 고려하는 등 하드웨어 수직계열화 작업에 매진하고 있기 때문에 낸드플래시를 자사 생태계에 편입시키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으며, 웨스턴디지털은 인수전이 치열하게 벌어지던 당시 도시바와 신경전을 벌이며 지분 확보에 매진한 회사다. 이들이 한미일 연합에 들어오면 SK하이닉스의 입지는 좁아질 가능성도 있다. 나아가 낮은 지분율로 도시바 기술의 핵심에 다가서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SK하이닉스가 한미일 연합의 등에 올라탄 이상  실보다 득이 많다는 것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대출자 자격으로 참여하는 한계는 있지만 낸드플래시 원천 기술을 보유한 도시바와 접점이 생겼다는 것 자체가 고무적이기 때문이다.

도시바는 1987년 세계에서 처음으로 낸드플래시의 개념을 세운 회사다. 2010년대 초반까지 글로벌 낸드플래시 시장 1위 사업자였으며, 3D V-낸드플래시를 처음으로 개발한 곳도 도시바다. 올해 하반기 64단 적층기술 상용화에 나설 경우 기술 고도화적 측면에서도 전망이 밝다는 것이 업계의 평가다.

낸드플래시를 차세대 저장장치인 SSD나 eMMC(내장형 메모리)로 만들 때 탑재되는 컨트롤러 기술도 SK하이닉스가 군침을 흘릴만한 아이템이다. SK하이닉스는 반도체 컨트롤러 기술이 약해 SSD 시장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한미일 연합에서 이를 확보하면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 출처=픽사베이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변화? 단기적으로는 ‘미비할 것’

한미일 연합이 도시바를 품어도 전체 낸드플래시 시장의 판세는 크게 변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메모리 반도체 전체를 보면 D램의 경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이 소위 삼두마차 역할을 하면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낸드플래시 시장은 1분기 기준으로 삼성전자가 36.7%, 도시바 17.2%, 웨스턴디지털 15.5%, SK하이닉스 11.4%, 마이크론 11.1% 등으로 분점하고 있는 형국이다.

도시바가 인수된다고 해도 한미일 연합에 참여한 모든 기업의 지분에 도시바의 지분을 더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한미일 연합 모든 기업이 도시바에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낸드플래시 시장에서 중요한 것은 물량 기준의 점유율보다  기술 고도화다. 기술 고도화에서 삼성전자를 따라올 경쟁자가 없다.  삼성전자는  64단 3D 낸드플래시 양산에 돌입해 연말까지 생산물량의 50%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4세대 256Gb V낸드플래시 기반 SSD에 이어 모바일용 eUFS, 소비자용 SSD, 메모리카드 등에 4세대 V낸드플래시를 확대하는 것도 경쟁사를 압도하는 기술력이다. 4세대 V낸드플래시는 초고집적 셀 구조 및 공정과 초고속 동작 회로 설계, 초고신뢰성 CTF 박막 형성 등 3가지 기술이 핵심이다. 이를 바탕으로 3세대 제품 대비 속도와 전력 효율,  생산성 측면에서 30% 이상 향상된 경쟁력을 자랑한다는 설명이다.

원래 V낸드플래시는 데이터를 저장하는 셀을 만들 때 수십개의 단을 쌓아 올려 위에서부터 하단까지 수십억개의 미세한 홀(Hole, 구멍)을 균일하게 뚫어 수직으로 셀을 적층하는 '3차원(원통형) CTF 셀 구조'로 되어 있다.

▲ 4세대 256Gb V낸드플래시. 출처=삼성전자

 

그러나 층을 올릴수록 형성한 구조가 틀어지거나 최상단과 최하단 셀의 특성 차이가 생기기 때문에 적층에 한계가 있었다. 삼성전자는 초고집적 셀 구조 및 공정으로 이를 해결했다. 9개의 구멍을 통해 층마다 균일한 홀 패턴을 형성하고 전체 단의 하중을 분산시키는데 성공했다. 자연스럽게 삼성전자는 4세대 V낸드플래시를 계기로 90단 이상의 수직 적층 한계를 극복해 반도체 칩 하나에 1조개 이상의 정보를 저장하는 '1테라(Tera) 비트 V낸드' 시대를 열 것으로 보인다.

 도시바 낸드플래시 역량을 한미일 연합에 속한 각 기업들이 나눠가지는 상황에서  삼성전자의 독보적인 기술력을 고려하면 낸드플래시 시장에 당장의 판도 변화는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나아가 삼성전자는  반도체 대국굴기를 주창하며 몸집을 키우고 있는 중화권 기업, 특히 대만의 폭스콘이 단독으로 도시바를 가져가는 최악의 사태는 피했기 때문에 현재의 우위를 자신하는 분위기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낸드플래시 시장에 약간의 지분변화는 있을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기술력”이라면서  “현재의 1위 자리를 지키는 것에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 궈타이밍 폭스콘 회장(왼쪽). 출처=위키디피아

축제가 끝난 후...

도시바 인수전이 한미일 연합 승리로 굳어가는 분위기지만 여진은 계속되고 있다.  가장 많은 금액을 제시했으나 고배를 마신 폭스콘은 "포기하지 않는다"며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궈타이밍 폭스콘 회장은 도시바 인수전 결과가 알려진 후 별도의 기자회견에서 이를 보도한 신문을 찢어버리는 돌발행동을 하며 일본 정부를 비난하기도 했다.

폭스콘이 최근 발표한 미국 100억달러 투자계획도 도시바 인수전 고배와 관련이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미국의 IT 매체 안드로이드헤드라인은 24일(현지시각) 대만의 폭스콘이 미국 6개주를 대상으로 투자를 검토하고 있으며, 디스플레이 패널 공장 건설에 70억달러, 그 외 제조거점 구축에 30억달러 등을 투자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리스광(李世光) 대만 경제부장(장관)이 폭스콘을 대상으로 자국 투자를 요청하는 러브콜을 보냈으나 신경도 쓰지 않는 분위기다.

그 이면에는 일본 정부의 개입으로 무산될 가능성이 높아진 도시바 인수전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미국과의 스킨십을 늘리려는 의도가 감지된다. 트럼프 행정부가 보호 무역주의와 함께 자국의 제조업 발전을 유도하는 상황에서 이와 보폭을 맞추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관심을 끄는 것은 폭스콘이 미국 투자에 이어 별도의 미국 반도체 회사와 연결될 수 있느냐다. 중국의 칭화유니를 중심으로 마이크론과 샌디스크 인수가 줄줄이 무산됐으나 대만의 폭스콘이 트럼프 행정부와 보폭을 맞추며 제조업 발전을 위한 정책에 협력하는 한편, ‘중국이 할 수 없었던 미국 기업과의 협력’을 타진할 가능성이다. 이렇게 되면 새로운 형태의 반도체 동맹이 탄생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