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현실 시장이 미래 ICT 업계의 먹거리로 자리매김하는 가운데, 삼성전자가 조용하지만 의미있는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페이스북의 오큘러스나 구글의 데이드림처럼 강력한 기술적 진보는 감지되지 않으나 기본에 충실한 전략을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다.

먼저 콘텐츠 확보다. 사실 가상현실의 약점 중 하나가 생태계 조성의 어려움이고, 이는 3DTV에서 반복된 허약한 내적 인프라로 이어질 것이라는 지적이 있어왔다. 콘텐츠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면 의미있는 플랫폼이 등장해도 힘을 발휘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실제로 3DTV의 경우 한 때 미디어 플랫폼의 진화로 여겨지며 시장의 큰 기대를 받은 바 있다. 그러나 콘텐츠 생태계가 확산되지 못하며 제조사를 중심으로 외형만 커졌고, 결국 패러다임의 패권을 UHD TV라는 초고화질 미디어 플랫폼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 기어VR. 출처=삼성전자

여기에서 삼성전자는 일찌감치 오큘러스 스토어 등과 협력해 기어VR 전략을 짰으며, 최근에는 미국에 있는 가상현실 스타트업 VRB를 550만달러에 인수하기도 했다. VRB는 VRB 홈과 VRB 포토 등 2종의 가상현실 앱을 출시했으며 라이브 가상현실 경쟁력을 갖춘 곳이다. 최근 삼성전자가 버즈피드 등과 함께 가상현실 콘텐츠 수급에 빠르게 나서는 상황에서, 자체 콘텐츠 제작의 신호탄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삼성전자가 가상현실에 있어 콘텐츠에 주력한 지점은 신의 한 수라는 평가다. 하드웨어 제조사의 틀을 벗어나 소프트웨어 파워를 늘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가상현실에 접근하는 다양한 기업들은 일단 플랫폼 중심의 전략을 추구하고 있으며 삼성전자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삼성전자가 콘텐츠에 집중하는 순간 해당 영역에 규모의 경제가 개입되고, 이는 시장의 폭발적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일각에서는 삼성전자가 HMD에 물리적 인식을 통한 잠금해제를 지원하는 특허를 출원했다는 말도 나온다. 이용자의 머리유형을 사전에 인식, 일종의 보안인증으로 활용하는 방법론이다.

현재 삼성전자의 가상현실 전략은 기어VR을 스마트폰에 연동, 저가시장을 공략하는 방식으로 정의된다. 프리미엄 스마트폰 시장의 인프라를 적극활용해 빠르게 외연을 확장했기 때문이다. 시장조사업체 슈퍼데이터는 삼성전자가 지난해 기어VR 451만대를 출시했으며, 이는 전체 VR기기의 71.6%에 달한다고 밝혔다. 소니의 PS VR이 12.5%로 2위를 차지했으며 HTC의 바이브가 6.7%, 구글의 데이드림이 4.1%로 뒤를 이었다.

그러나 이를 두고 기어VR의 미래를 마냥 낙관하기는 어렵다. 기기 자체의 강점과 더불어 삼성전자의 마케팅 전략도 분명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현재 삼성전자는 가상현실 시장에서 기어VR을 통한 일종의 생태계 구축에 나서는 상황이다. 그 과정에서 갤럭시노트4 당시 처음 등장한 기어VR은 지난해 갤럭시S7과 갤럭시S7 엣지가 출시되며 무료로 풀린 바 있다. 갤럭시S7 시리즈가 갤럭시노트7 단종 후 현재 삼성전자의 최신 스마트폰 라인업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온전히 마케팅의 힘으로 풀이된다.

가상현실 시장의 최근 트랜드도 읽어야 한다. 현재 가상현실 시장은 생각보다 크게 성장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 대목에서 저가의 기기를 중심으로 삼는 HMD 스타일의 기기들이 스마트폰과 연동되는 서비스를 내세워 빠르게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웨어러블 시장의 추이와 비슷하다. 시장 자체가 크게 성장하지 않는 상태에서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이 고가인 스마트워치보다 중저가의 스마트밴드에 천착하는 것처럼, 가상현실 시장의 기기들도 중저가의 스마트폰 연동 HMD에 몰려있다는 뜻이다.

여기에서 기어VR은 99달러에 불과한 가격 경쟁력을 갖춘 상태에서 막강한 스마트폰 전략을 연결했다. 또 큰 그림으로 보면 오프라인 시장 확장만 고집할 경우 제조사 중심의 마케팅 일변도로 변질된 3DTV 실패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

그럼에도 삼성전자는 가상현실 시장에서 의미있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는 평가다. 갤럭시 스마트폰을 기반으로 오프라인 인프라를 다수 확보한 상태에서, 소프트웨어 시장까지 영악하게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가상현실 콘텐츠 제작에 나서는 한편, 기어VR 하드웨어 물리보안에도 신경쓰는 꼼꼼한 사용자 경험을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