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첫 부동산 대책 ‘주택시장의 안정적 관리를 위한 선별적 맞춤형 대응 방안(6.19 대책)’이 나왔다. 집단대출에 대한 금융규제 등이 포함됐음에도 예상보다 시장 충격은 덜했다. 8월 가계부채대책 발표를 염두에 둔 ‘식물성’ 정책이라는 의견이 대세인 가운데서도 전문가들이 특이할 만하다고 입을 모은 지점은 6.19 대책에 포함된 재건축 시장에 대한 규제였다.

정부는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집값을 견인하고 있는 재건축 시장의 투기를 ‘핀셋’ 규제로 집어냈다. 정부는 오는 7월 3일부터 경기 광명, 부산 기장군 및 부산진구 등 조정지역 40곳 내 재건축 조합원이 보유할 수 있는 주택 수를 1개로 제한했다.

▲ 서울 강남구 개포주공 단지의 모습. 사진=이코노믹리뷰 노연주기자

예외적으로 조정지역 내 재건축 조합원이 2주택까지 분양받을 수 있는 방법은 2주택 중 1주택의 주거전용면적이 60㎡ 이하일 때이다. 조합원에게 2주택까지 공급하는 것은 조합별 관리처분계획에 반영돼야 적용할 수 있다.

현재 조합원은 과밀억제권역 내에서는 최대 3주택까지, 과밀억제권역 밖에선 소유 주택 수만큼 분양받을 수 있다. 뜨겁게 확산되고 있는 투기 수요는 잡으면서도 실제 거주민과 소형 재건축 아파트 수요자는 보호하겠다는 정부의 의지로 읽힌다.

그렇지만 대책 발표 이후 이상우 유진투자증권 건설·부동산 연구위원은 “6.19 대책이 시장에 그다지 영향을 주지 못하겠지만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를 타깃으로 한 것으로 보이는 재건축 단지에 대한 직접적 규제가 특이할 만하다”고 말했다. 이 연구위원은 “재건축 아파트 호가가 3000만원 떨어졌다가 5000만원 오르는 식이 될 것”이라면서 단기적으로는 상승세가 한풀 꺾일 수 있지만 서울 재건축 아파트는 상승 대세라고 분석했다.

 

“서울에 지을 땅이 없으니까요”

전국적으로 아파트 공급과잉이 본격화되는 시기가 올해 하반기부터로 점쳐진다. 시장에서는 입주대란으로 집값이 조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22일 기준 부동산 리서치회사 닥터아파트의 자료에 따르면 오는 7~12월에 전국에 분양 예정인 아파트는 총 304개 단지 20만162가구에 달했다. 이는 지난해 하반기(18만2971가구)보다 9.4%(1만7191가구) 증가한 것이다. 하반기 분양 물량으론 2000년 이후 2015년의 24만6417가구 다음으로 많다.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 156곳 9만5369가구로 전년 동기 대비 0.3% 증가했다. 그러나 서울은 46곳 2만1086가구가 하반기에 분양되는데 지난해보다 103.6% 증가한 수치다. 재개발이 19곳 9419가구, 재건축이 18곳 9063가구 등으로 정비사업 물량이 1만8482가구로 전체의 87.6%에 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의 주택 공급부족 현상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 연도별 아파트 입주 물량을 비교해 보면 2016년 8월부터 2017년 12월까지 약 5만가구 아파트 입주 물량의 90%가 재개발·재건축 등 멸실 물량임을 감안하면 순증가하는 신규 물량은 약 5000가구에 불과하다.

절대적인 공급도 부족하지만 기존 주택의 질적 하락으로 수급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는 평가다. 서울연구원의 박은철 연구원은 서울의 주택은 1980년대 후반부터 서울의 양적인 주택 문제는 크게 개선됐지만 노후 불량 주택과 외국인 유입 등을 고려하면 신규 주택 수요는 높다고 분석했다.

▲ 여의도 재건축 아파트 단지의 모습. 사진=이코노믹리뷰 노연주기자

실제로 2015년 기준 서울의 주택재고는 1990년에 비해 2.3배 증가했고 실질적인 주택보급률은 이미 100%를 상회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1000명당 주택 수는 선진국의 대도시 수준에 비해 적은 상황으로, 최저주거기준 미달가구의 비율은 전국보다 높은 수준이다. 박 연구원은 “향후 서울시는 소위 ‘새로운 주택부족(New Housing Shortage)’ 문제를 겪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주택 수요는 높지만 집 지을 땅이 없는 서울에서는 기존의 아파트를 헐고 세대수를 늘려 다시 짓는 재건축·재개발 사업이 신규 공급 중 절대적으로 많은 비율을 차지할 것으로 여겨진다. 게다가 도심의 주요 지역에 위치해 기존의 교통과 교육 등의 인프라를 누릴 수 있는 재건축·재개발 단지는 안정적이면서도 높은 수익을 기대해볼 만한 투자처다.

정비사업 분양이 물량도 많고 그에 대한 관심도 큰 상황. 김수연 닥터아파트 리서치팀장도 “하반기 정비사업 분양 물량이 많은 서울과 부산 분양성적이 하반기 분양시장을 주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재정비 사업의 ‘핵폭탄’ 초과이익환수제

지난해 발표된 11·3 대책과 탄핵정국, 조기대선 등 관망세가 드리워졌던 강남 재건축 시장이 급등을 거듭하고 있다. 당초 예상과는 달리 새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온건한 것을 파악한 시장 투자자들과 여전히 시장에 풍부한 유동자금이 안전 자산으로 분류되는 재건축 아파트 단지로 쏠리고 있기 때문이다.

6.19 부동산대책이 발표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서울 서초구 반포주공1단지의 분위기는 여전히 좋다. 반포주공1단지(1, 2, 4지구) 조합은 지난 9일 서울시 건축심의를 통과하고 연내 관리처분계획 인가 신청을 마친다는 계획이다.

반포주공1단지는 사업진행 속도도 빠르지만 66개동 2210가구를 재건축하는 대단지인 데다 서울 시내에서 보기 드문 저층인 5층 단지로 사업성이 크다. 단지 인근 H공인중개업체 관계자는 “반포 재건축 단지들 중에서도 저층 단지인 반포주공1단지는 앞으로 가격 상승 여력도 있어 조합원의 이익이 큰 사업지에 해당한다”면서 “올해 초부터 집값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고 올해 안에 관리처분계획 인가 신청을 마치면 1~2개월이면 인가가 날 것이고 초과수익환수도 피할 수 있다”고 말했다.

1973년 12월 입주를 시작한 반포1단지의 시세는 16일 현재 부동산114 기준으로 평균 3.3㎡당 6692만원에 달한다. 강남 4구(강남·서초·송파·강동구)를 집중 겨냥한 지난해 11.3 대책 직후 평균 3.3㎡당 6534만원까지 꺾였던 것이 올 초부터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 서울 시내의 모습.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기자

향후 최고 35층 총 5748가구 대단지로 탈바꿈하는 반포1단지의 전용면적 105㎡는 현재 호가가 28억5000만원으로 두어달 새 호가가 2억원가량 상승했다. 전용면적 138㎡ 매물은 32억원에 나와 있어 올 초 이후 2억원가량 올랐다. 초과이익환수제란 재건축 조합원 1인당 평균 이익이 3000만원을 넘으면 초과금액에 10~50% 누진 부과율을 적용해 부담금을 걷는 제도다. 내년 부활하는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를 피하려면 올해 12월 31일까지 관리처분계획을 신청해야 한다.

때문에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를 피할 수 있는 단지 위주로 가격 급등이 일어나고 있다. 반포1단지와 강남권에서 관심을 받고 있는 또 다른 대표 재건축 단지인 잠실5단지의 희비가 엇갈리는 이유다. 지난 1월 열린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에서 반포주공1단지와 신반포3차·경남아파트 재건축은 일단 본회의는 보류됐지만 수권소위원회로 넘겨져 결국 통과된 반면 송파구 잠실주공5단지는 심사를 받지 못했다.

6.19 대책 발표 직후 잠실주공5단지에는 급매물이 등장했다. 이달 진행이 예상됐던 재건축 계획안 심의가 지연되면서 재건축 초과수익환수를 사실상 피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15억원대에서 오르내리던 전용 76㎡ 주택형이 14억9000만원에 급매물로 나왔다.

현재 정부는 올해 말까지 부과가 유예되는 초과이익환수제에 따른 부담금은 내년 1월부터 정상적으로 부과를 시작한다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추가적으로 부과 유예를 검토할 계획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그렇지만 재산권 침해 소송 등으로 이어지면 논란이 지속될 가능성은 있다. 업계 관계자는 “사실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가 부활할지도 의문이다. 재산권 침해와 아직 실현되지 않은 이익에 대한 세금 부과 등 위헌이 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다른 시장 전문가도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의 경우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가 적용돼 부담금을 내더라도 크게 이익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고가 분양으로 화제가 된 개포 재건축 아파트들을 보면 반포 등의 상승여력은 더 크다”고 말했다.

실제로 사업속도가 더뎌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를 피하기 힘든 아파트 단지도 값은 오르고 있다.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라는 희소성에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가 커 투기 수요가 몰리는 것이다.

인근이면서 대단위 재건축이 진행 중인 강동구도 마찬가지다. 강동구의 경우 지난 5월 상승 분위기가 거센 강동구의 경우 5월 첫째 주에 전주 대비 0.07% 상승, 둘째 주에 0.09%, 다음 주는 0.46%, 그 다음 주는 0.51%로 상승폭이 계속해 확대됐다. 둔촌주공3단지 전용면적 99㎡ 매물은 22일 현재 10억8000만원으로 올해 초 9억8000만원에서 꼬박 1억원이 올랐다.

전문가들은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 가격이 뛰는 이유로 ‘새 집 효과’를 꼽는다. 내년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가 시행되면 강남 지역에 새 아파트 공급은 어려워질 것으로 관측된다. 이런 이유 때문에 대기 수요자들이 재건축 진행 속도가 빠른 아파트로 쏠린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환수제 회피가 불투명한 아파트 단지들은 상승률이 상대적으로 저조한 편이다. 대치은마 전용84㎡는 작년 10월 13억9000만원이었지만 현재 13억6500만원에 거래돼 고점을 회복하지 못했다. 잠실주공5단지와 대치미도2차 등도 올 1월 이후 소폭 가격이 회복되고 있지만 작년 10월 수준으로 돌아오진 못했다.

 

재정비 시장의 주인공 교체 ‘부동산 신탁사’

재건축을 앞둔 노후 단지가 즐비한 여의도에는 부동산 신탁사들의 주민들을 상대로 하는 사업 안내 플래카드가 즐비하게 걸렸다. 재정비 사업의 주체인 조합의 비리와 사업 진행 속도 등에 불만을 갖게 된 조합원들이 새로운 ‘플레이어’로 신탁사를 점찍었다. 서울시의 정비사업구역 680여곳 중 약 42%가 장기간 사업이 지연되고 있다.

신탁 시행 방식은 신탁사가 조합원의 동의를 얻어 사업 주체로서 재건축 사업을 진행하고, 수수료를 받는 형태다. 사업 속도가 지지부진한 여의도 재건축 단지부터 강남권으로 확산되는 움직임이다.

1976년 입주해 재건축 연한을 훌쩍 넘은 총 373가구의 공작아파트도 현재 부동산 신탁회사를 통한 재건축을 추진하고 있다. 공작아파트는 최고 49층 규모로 아파트, 오피스텔, 상업·업무시설 등이 입주하는 복합건물 4개동을 지을 계획이다.

총 1790가구 대단지인 여의도 시범아파트도 한국자산신탁을 신탁사로 선정하고 재건축 사업을 추진 중이다. 시범아파트 조합원들은 연내 사업시행인가 신청을 목표로 빠르게 사업을 진행한다는 한국자산신탁의 손을 들어준 것. 시범아파트는 신탁사의 빠른 지휘로 구청의 사업시행자 지정 인가도 받았고 다음 달 주민 총회를 통해 사업의 윤곽을 그릴 예정이다.

시범, 수정, 공작아파트 등에 이어 강동구 삼익그린맨션2차, 서초구 신반포2차·방배7구역 등이 신탁 방식 재건축 사업을 추진 또는 검토 중이다. 최근엔 부산 등 대규모 건축 사업이 진행 중인 지방 단지들도 신탁방식을 고려한다고 한다.

부동산 신탁사들도 관련법 개정으로 부동산신탁사도 재개발 재건축 사업이 허용된 것을 기점으로 재정비 사업에 본격 진출했다. 코람코자산신탁이 신탁사 최초로 안양시 호계동 일대 안양 성광·호계·신라아파트 등 재건축정비사업을 수주했고, 한국토지신탁도 대전 용운주공 재건축 사업을 수주해 사업대행자가 됐다.

부동산 신탁사들은 새로운 사업을 위해 팀을 정비하기도 했다. KB부동산신탁은 작년 9월 별도의 태스크포스(TF)팀으로 구성했던 도시정비사업부를 올해 1월 정식 출범했다. 재건축 사업을 경험해본 건설사 인재들을 영입했고 시행자로서 시공사 설계사 철거업체 등 협력업체와 30여건의 업무협약(MOU)을 맺었다.

신탁사에 주는 수수료로 조합원의 추가분담금이 늘어날 수 있지만 사업 속도에 목마른 조합원들은 이도 마다하지 않는다. 신탁 수수료는 대개 분양 매출의 2% 내외로 책정된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정부의 재건축 아파트 규제에도 재건축 단지의 인기는 크게 영향을 받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토지 소유주인 조합원들은 기본적으로 자본력이 있고, 앞으로 시장 자체가 꺾이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여의도와 강남, 과천 등 입지가 우수한 지역에서의 새 집 수요와 시장 유동자금의 흐름으로 볼 때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가 부활한다 할지라도 당분간 재건축 아파트의 인기는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