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이코노믹리뷰DB

농협이 고령화와 탈 농촌 트렌드로 조합원수가 급격히 감소하면서 존립기반마저 흔들리는 가운데 은퇴하는 농업인에게 조합원 자격을 유지시켜줄 수 있는 '명예 조합원 제도'가 입법발의됐다. 입법 취지의 단기적인 불가피성은 공감하는 분위기이지만 이번 기회에 농협의 발전방향을 이미 경험한 해외조합에서 적극적으로 찾아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국민의 당 황주홍 의원과 자유한국당 김성찬 의원이 주도로 각각 발의한 ‘명예 조합원 제도’ 법안은 조합원 수 감소로 순자산 비율 산정, 자산 매입, 자본금 전입 등에 곤경을 겪는 지역 농협들을 지원하는 데 주효할 것으로 보인다. 이 법안은 현재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에서 심의중이다.

그 동안 고령화와 농업인구 감소는 농협의 인적 기반을 위협하는 큰 원인으로 지목돼 왔다. 통계청이 2014년 조사한 바에 따르면 농어업 인구는 1995년 485만 명 수준에서 2016년 224만 명(40대 미만 4만 5243명, 40대-60세 미만 63만 7323명, 60세 이상 156만 3557명)으로 줄어들었다. 같은 기간 동안 고령 농민은 1995년 79만명에서 2016년 156만 명 가량으로 비중이 늘어났다. 평균 수명 80세를 기준으로 보면 2020년에는 전체 조합원 중 37.9%가 사망 등으로 농협을 자연탈퇴할 수 있고, 2030년에는 조합원의 절반이 자연탈퇴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황주홍 의원이 발의한 법의 골자는 현행법으로 규정되어 있는 ‘지역 농협 구역에 거주하는 농민’이 아닐 지라도 일정 연령과 경작지 보유 등 조건만 맞으면 원로 조합원 우대를 받을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다. 여건 상 자식과 함께 도시에서 살게 되거나 다른 일을 겸하게 되는 고령 조합원들, 지속적으로 농업에 관심을 갖고 참여해 온 은퇴자 등이 포함될 수 있다. 물론 과거 ‘무자격 조합원’들이 조합장 선거에 참여했다는 논란 등을 잠재우기 위해 조합 사원의 의결권이나 대의원 피선거권 등은 제한될 전망이다.

농업계 관계자들은 반색하는 분위기다. 농협 측은 ‘아직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을 수는 없지만, 농촌 고령화 문제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논의가 전개될 것으로 기대한다’는 입장이다. 원로 조합원들의 유입은 단순히 조합의 물적 기반뿐만 아니라 이들의 노하우나 네트워크 등 인적 기반까지 보존할 수 있는 방향이기에 농촌의 중요한 발전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관점이다.

농업 분야 기업 관계자도 “도시에서 은퇴한 노동자가 지방으로 가서 자신의 비즈니스 마인드와 농업 분야의 가능성을 결합해 다양한 사업을 일으킬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으로 본다”며 원로 조합원 제도에 대한 기대감을 표시했다. 그 동안 농촌을 떠나 도시로 이동하는 경우는 많았지만, 농촌 지역을 고향으로 했던 은퇴자가 낙향하는 경우는 상대적으로 비중이 적기 때문이다.

또 원로 조합원 제도는 농촌 공동체의 건강한 운영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고령 조합원들의 조합 탈퇴로 인한 소외감, 신기술이 적용된 농업 트렌드 등으로부터의 배제 이슈 등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려도 여전하다. ‘협동조합을 이용하지 않는 조합원 수가 증가하면서 농협 운영이 방만해 질 위험이 있다’는 것 때문이다. 실제로 2000년대 초반 아일랜드에서는 낙농업협동조합이 주식회사 형태로 전환되면서 은퇴농민과 도시농민들 모두를 조합원으로 인정해 줬다. 자연히 비조합원의 거래를 허용하는 셈이 됐다. 문제는 조합의 네트워크와 지원 체계는 활용하면서 조합을 위해 의무를 부담하지 않는 ‘편승자’(free-rider)의 존재였다. 결국 비효율의 극치에 고심했던 아일랜드 낙농업협동조합은 작은 지역조합들을 통폐합하고 정리하는 데 집중했다. 그 결과 지역 공동체로서의 협동조합이 갖는 색깔이 점점 희석되어 갔다. 조합으로서도, 주식회사로서도 자리매김하는 데 실패한 셈이다.

'준 금융기관으로서 농협이 조합원의 수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네덜란드 라보뱅크 사례처럼 적극적인 해외 농식품 사업 투자, 개발 금융 지원 등도 고려해 먹거리를 찾아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선진사례로 제시한 바 있는 라보뱅크는 2013년 말 기준으로 30개 국 661개 지역에 사무소 769개를 운영, 네덜란드 농기업들의 해외 진출을 위한 인프라로 자리매김했다. 곡물 생산 기업이나 종자 생산 기업, 가공업체를 대상으로도 금융화 모델이 모색됐다. 라보뱅크는 역시 고령화와 조합원 인구 감소로 고민하는 네덜란드 농업계에 ‘새로운 화두’를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 뉴질랜드의 낙농업 협동조합 폰테라(출처 : 폰테라 홈페이지)

뉴질랜드의 폰테라(Fonterra)도 마찬가지다. 폰테라는 현지 국민들 중심의 농업협동조합이지만(뉴질랜드 낙농가 90% 이상 가입), 세계 140개 국에 유제품을 공급하며 연간 220억 리터를 생산한다. 또 폰테라는 8개 국가에 해외 사무소를 두는 한편 직원의 45% 가량(전체 직원 22000명, 외국인 1000명)을 외국인으로 두며 ‘글로벌 경영’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사실상 ‘해외 농업 개발’을 위한 첨병이 마련되어 있는 셈이다. 뉴질랜드의 키위 연합 판매 브랜드인 ‘제스프리’도 글로벌 경영을 통해 국내 시장에서의 한계를 극복하는 데 주효했다. '조합원의 수'가 '조합의 운명'을 결정짓는 상황은 아닌 셈이다.

김윤형 한국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원로 조합원 제도는 농촌 공간 내 사회 통합 차원에서 매우 중요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커뮤니티 멤버쉽(community membership)의 문제이기 때문이다”라고 언급했다. 다만 김 교수는 "지금껏 문제시되어 왔던 정치 농협의 이슈가 발생되지 않게끔 주의해야 한다. 자조와 협동을 돕는 통합 인프라로 기능하되 철저히 시장 원칙에 입각해서 움직여야 한다. 지역 조합이 인생 2막을 설계하는 사람들을 또 다른 군중 운동에 동원하려는 사적 수단으로 전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