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켓몬 덕후가 들려주는 포켓몬 이야기. 포덕노트 5화.

이 글을 보는 여러분이 포알못 혹은 포린이는 아니겠지만, 포켓몬을 잘 모르는 사람이어도 잉어킹의 모습은 많이 익숙할 것이다. 잉어킹. 생각해보면 참으로 건방진 이름이다. 팔딱팔딱 튀어오를 줄밖에 모르면서 무려 왕이라니! 왕관처럼 생긴 등, 배 지느러미가 무색할 정도로 잉어킹의 모습은 임금님과는 거리가 멀다. 멍청하게 뜬 눈. 무의미하게 뻐금뻐끔 거리는 입. 잠만보, 야돈과 더불어 1세대 맹한 포켓몬 3인방을 맡고 있는 잉어킹. 개인적 견해로는 원조 아이돌 포켓몬 피카츄나, ‘돌로 태어나고 싶다’ 짤방으로 유명해진 메타몽과도 견줘 볼 수 있는 인지도를 갖고 있지 않을까 싶다.

잉어킹은 약하다. 도감 설명이 ‘힘도 스피드도 거의 없다. 세상에서 가장 약하고 한심한 포켓몬’이라고 할 정도니 말이 필요 없다. 시리즈마다 도감설명이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대동소이하게 결국 잉어킹은 쓸모가 없다는 거다. 잉어킹을 디자인한 사람은 정말로 잉어를 싫어하는 게 틀림없다. 잘은 몰라도 한국에서 비둘기를 닭둘기 취급하는 수준은 되지 않을까? 아니면 반대로 좋아하는 아이를 역으로 괴롭히는 사내놈마냥 애정을 가득 담은 걸지도 모른다.

▲ 출처=포켓몬코리아

잉어킹은 게임 내 거의 모든 시리즈에서 ‘낡은 낚싯대’와 물만 있으면 볼 수 있다. 낚으면 공격도 못하고 도망도 안치고 그저 ‘튀어오르기’만 한다. 울음소리를 내지도 않고 꼬리를 흔들지도 않고 그저 튀어오를뿐이다. ‘튀어오르기’의 효과는 단 하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정말이지 잉어 그 자체이지 않는가! 레벨 20이 되어서야 튀어오르기가 아닌 다른 기술을 배우는데, 남들은 다 처음부터 지니고 있을 법한 몸통박치기를 배운다! 심지어 능력치도 낮아서 간지럽지도 않다!

최초의 시리즈인 1세대에서는 다소 재미있는 이벤트(?)가 있는데, 초반 회색시티(웅이네 마을)에 있는 상점에 들어가 보면 이상한 아저씨로부터 이상한 물고기 포켓몬을 샀다고 하는 소년이 있다. 정말이지 약한데 500원씩이나 하네! 좀 더 진행하다보면 달맞이산이 나오는데 산에 들어가기 전 포켓몬 센터에 들어가면 대머리(!)에 배불뚝이(!) 아저씨가 어슬렁어슬렁 거리고 있다. 다른 NPC들은 다 가만히 있는데 혼자 어슬렁어슬렁거리는 스텝이 벌써부터 예사롭지가 않다.

나도 모르게 말을 걸어보니, 맙소사! 이 ‘팔팔한(!)’ 잉어킹을 단돈 500원에 판다고 하지 않는가! 에이 안 사요 안 사, 라고 잉어킹에 대해 이미 알고 있는 지금이라면 말했겠지만…. 포켓몬은 어디까지나 게임이 원작이므로 애니메이션이 상영되기도 전 게임을 처음 하는 유저들은 잉어킹이 어떤 포켓몬인지 모르는 것이다! 포켓몬 도감은 일단 포켓몬을 포획해야 정보가 기록될 뿐더러, 낚시대는 좀 더 후반에서야 등장하게 된다.

회색시티에서 소년에게 얘기를 듣지 않았다면, 새로운 포켓몬이 궁금해 구매를 한뒤에 기술을 써보고 놀라고 도감을 보고 놀란 후에 어처구니 없어서 다시 말을 걸게 될 것이다. 그러면 저 이상한 아저씨가 말하는 것이다. “물론 환불은 안받는단다!” 환불을 하고싶은 정도의 포켓몬, 그것이 바로 잉여킹… 아니 잉어킹인 것이다! 그런데 그 약하고 쓸모없는 잉어킹에는 무슨 볼일이냐고? 그건 바로.

▲ 반갑게 맞아주는 잉어킹. 출처=직접 캡처

그렇다! 무려 그 약하고, 한심하고, 쓸모없는 잉어킹이 주인공인 모바일 게임이 등장했다! 잉어킹의 진화형인 갸라도스도 아닌 그냥 ‘잉어킹’이 말이다! 게임 제목은 무려 ‘튀어올라라! 잉어킹’ 되시겠다. 누가 튀어오르기 밖에 못하는 포켓몬 아니랄까봐 제목부터 벌써 튀어오르라고 재촉 중이다. 여태껏 잉어킹이 주인공으로서 이렇게 조명 받았던 적이 있었던가! 편의점 샌드위치 신제품을 도전할 때의 매우 설레고 생소한 마음으로 게임을 다운 받아보았다.

게임 스타트를 누르면 기존 게임 유저들에게는 어딘지 친숙한 구성의 화면이 나온다. 본가에서 게임을 시작하면 나오는 박사의 설명 장면이다. 어디 지방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곳에서는 포켓몬 배틀대신 잉어킹 배틀이 성황중인가 보다. 튀어오르고 또 튀어오르는 모습이 너무나도 사랑스러워도 서로의 힘을 겨루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경쟁사회의 폐해가 느껴지기도 하다만, 서로 피튀기고 싸우는 게 아닌 튀는 힘을 겨룬다니 얼마나 평화적인가! 서서히 몰락해가는 마을을 구원해줄, 포켓몬을 키우는 재능이 뛰어난 당신! 당신이 잉어킹을 키우게 될 ‘튀어올라라! 잉어킹’을 한번 살펴보도록 하자.

▲ 훈련을 통해서 더욱 강해진다! 출처=직접 캡처

우선 이 게임의 가장 큰 특징은 뭐니 뭐니 해도 잉어킹이 귀엽다. 웃음이 터져나올 만큼 귀엽다. 특히 헤엄칠 때 보다 땅위에서 퍼덕이는 모습을 보다보면 묘한 중독성이 있다. 황금잉어킹으로 리그를 제패한 그 분(황금잉어킹만으로 루비버전(3세대) 클리어를 시도한 일본인이 있었다. 자세한 것은 ‘금호의 역린’을 검색)도 잉어킹을 보면서 이런 기분이었을까. 게다가 다양한 무늬의 잉어킹을 만나볼 수도 있다!

처음에 비단잉어킹을 봤을 때는 ‘아 이건 진짜 잉어 그 자체다ㅋㅋㅋ’ 이렇게 웃음이 머금어지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몇몇 무늬들은 좀 무리수다 싶은 디자인도 있지만, 원작에서는 ‘이로치 포켓몬(원작 게임에서는 1/4096 확률로 알이나 야생에서 색이 다른 포켓몬이 출현한다)’ 이외에는 무늬, 색, 모양 등이 어디까지나 다 균일하기 때문에 기존 공식설정 이외에 이렇게 새로운 설정을 부여한건 어찌 보면 파격적인 혜택이다.

게임의 또 다른 특징 중에서는 본가의 캐릭터나 대사들을 정말 깨알같이 잘 살리고 있다는 점이다. 8개의 리그라던가, 금구슬 아저씨, 샵에서 구매할 수 있는 대타출동 인형 등은 기존 포켓몬 게임 유저들이라면 많이 친숙하게 느낄 수 있는 요소다. 특훈사이다(미네랄사이다. hp 60회복.), 리그에이드(pp에이드. 기술의 pp를 10만큼 회복. 디자인은 상처약에서 따온 듯하다), 포켓드롭(이상한사탕. 포켓몬의 레벨을 1 올려준다), 나무열매들도 기존 타이틀에서 등장하는 아이템들에서 따와 친숙함에 보다 더욱 감칠맛을 더해준다.

▲ 감동적인 진화의 순간? 출처=직접 캡처

더불어 게임 제작사가 ‘살아남아라! 개복치’를 만든 ‘SELECT BUTTON’이라 그런지 기본 게임 구성이 개복치와 비슷하다. 특히 다양한 이벤트가 발생하고 종종 선택지를 통해서 결과가 달라지는 점이 그러한데, 기본적으로 죽고 또 죽어 내성을 길러죽어 데드 엔드(Dead End) 플래그를 피해야 하는 개복치와는 목표가 다르기에 ‘죽으면 어떡하지?’하고 너무 노심초사하지는 않아도 된다. 이벤트를 보다보면 어느새 잉어킹과 동고동락을 함께하며 마치 정말로 파트너와 고난과 역경을 해쳐나가는 듯 한 기분이 들것이다. 파트너가 너무 자주 바뀌는 감은 있지만…. 참고로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이벤트는 ‘태그배틀?’ 이벤트다. 만약 이 이벤트가 발생한다면 우리의 갓갓 잉어킹의 행동을 주목해주길 바란다.

잉어킹이 귀여운 건 사실이지만 기존 게임 유저들에게 있어서 잉어킹은 아군으로도 적으로도 그다지 달갑지 않은 존재였다. 아군으로써는 갸라도스로 진화시키기 위하여 ‘어쩔 수 없이’ 키워야 하는 존재이며, 적으로써는 경험치도 많이 안주는데 시간을 잡아먹는 ‘귀찮은 존재’인 것이다. 도감 완성도 중요하지만 결국 그 도감완성을 위해서는 강해져야 하기에 유저들은 ‘주 콘텐츠’인 배틀요소에 집중할 수 밖에 없다(2세대 사천왕 카렌의 대사. 많은 유저들의 마음에 비수를 꽂았다고 한다).

정말로 강한 트레이너라면 자신이 좋아하는 포켓몬으로 이길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해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 포켓몬 같은 경우는 타입, 기술배치, 특성등을 이용한 일종의 전략게임이기도 하므로 전략적으로 어찌해도 활용할 방법이 없으면 당연히 소홀해지기 마련이다. 잉어킹을 보라. 공식 설명자체가 약하고 쓸모없는 포켓몬이라지 않는가! 이건 거의 공식적으로 “잉어킹으로 실전 배틀은 무리입니다.”라고 선언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사실 포켓몬 유저가 아닌 이들과 얘기하다보면 이것과 비슷한 얘기가 자주 나온다. 처음 보는 포켓몬들을 보고는 마치 ‘요새 애들 장난감은 이런 것도 나오는 구나’와 ‘우와 처음 보는 동물이다’를 반반무많이처럼 섞어놓은 듯한 호기심어림 눈빛을 빛내며 이런저런 질문을 하다보면 이런 의문으로 귀결된다. “왜 귀여운 애들은 진화하면 다 못생겨져?” 혹은 “왜 귀여운 애들은 다 약해?” 그러면 뻔뻔하게 “원래 진화란 적자생존의 가혹함을 통해서 일어나기 때문이지”같은 헛소리로 얼버무리거나 뒤통수를 긁적거리며 말을 잇지 못하거나 하는 게 일상이다.

▲ 만남, 그리고 이별. 출처=직접 캡처

720종류의 포켓몬이 있다지만 결국 근간은 배틀물이기 때문에 유저간의 대결에서는 보통 쓰이는 애들만 쓰이기 마련이다. 실제로 배틀에서 자주 보이는 건 50~100마리 정도 밖에 안될 것이다. 포켓몬도 좋아하고 귀여운 것도 좋아하지만 나 같은 라이트와 헤비의 경계선에 있는 유저는 독자적인 연구로 정말 좋아하는 포켓몬을 실전에서도 쓸 수 있게 하면서 승리도 쟁취하는 것은 무리다. 그저 갓 헤비유저들이 써놓은 강의를 보고 ‘좋아하는 실전용’ 포켓몬으로 플레이 하는 게 한계다. 마치 전공자가 될수록 오히려 순수하게 전공을 즐기기만 하는 게 불가능해지는 것처럼, 비게임 유저들보다 포켓몬은 많이 알아도 순수하게 좋아하는 마음은 부족할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튀어올라라! 잉어킹’은 기존 포켓몬 유저와 유저가 아닌 이들 모두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게임이다. 경쟁과 육성, 기존의 팬들을 위한 재미난 요소들뿐만 아니라 나름의 수집요소들까지 없는 것 빼고는 다 있는 갓게임이라고 감히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일단 무엇보다도 귀엽다! 멍청하게 튀어오르는 잉어킹을 멍하니 바라보다 보면 많은 근심이나 걱정은 아무래도 좋아질 정도다. 약하고 한심하고 쓸모없지만 튀어오르고 또 튀어오르는 잉어킹! 치명적인 그 매력을 우리 함께 겪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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