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금융위기가 확산일로이던 2009년 가을 미 워싱턴DC. 엘리자베스 워런 하버드 법대 교수(나중에 미 상원의원이 된다)는 티모시 가이트너 재무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누구를 위한 금융 정책인지’ 답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대공황 이래 최악이라는 금융위기에 재무부가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앞서 가이트너 재무장관은 미국 금융시스템에 7000억달러(700조원) 규모의 부실자산구제프로그램(TARP) 가동을 결정했다. 미 의회는 구제금융의 집행을 감독하는 의회감독위원회(COP)를 구성했는데, 워런은 COP위원 자격으로 가이트너를 방문한 것.

가이트너의 장광설은 끝이 없는 듯했다. 신속한 구제금융 조치로 미 금융위기가 이제 한풀 꺾였다는 둥, 미국 경제는 다시 장밋빛 진로를 걷게 될 것이라는 둥. 참다못한 워런은 이렇게 쏘아붙였다.

“홍수처럼 쏟아지는 주택압류에 대한 재무부의 대응은 왜 이렇게 미미한 겁니까.”

대형은행을 구제할 때는 빛의 속도로 자금을 퍼주더니, 쏟아지는 주택 압류사태를 완화하겠다는 재무부의 계획은 ‘마치 거대한 산불을 안약 하나로 끄겠다’고 하는 것 같아 보였다고 워런은 자서전(<싸울 기회(The Fighting Chance)>, 2014년)에 썼다.

가이트너는 또다시 변명했다. 대형은행들이 압류처리 능력에 한계가 있어 재무부는 그 속도를 늦춰서 은행들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고, 또 압류 완화 프로그램은 은행들이 불시착하지 않도록 그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고 해명했다. 금융정책의 달인 가이트너의 궁색에 미국 최고 파산법학자인 워런은 절망했다. 워런은 수백만명의 사람들이 직장을 잃고 집에서 쫓겨나는데, 재무부 장관은 정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 은행들의 ‘연약한 엉덩이를 보호해줄 부드러운 방석을 마련하는 것’이라 믿고 있는 것 같았다고 심경을 기록해놓았다.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인물이 바로 가이트너다. 미 금융위기를 넘기는 데 1등 공신이었다는 평도 있지만, 그는 미국 시민보다는 은행 시스템의 붕괴를 걱정했다. 장관이 되기 전 뉴욕연방은행 총재를 지내며 월가 은행들을 규제하기도 했고, 2007년에는 시티은행의 CEO로 와달라는 제안도 받았다. 2008년 시장이 붕괴되자 폴슨 당시 재무장관과 함께 AIG의 긴급구제에 나서기도 했는데, 금융산업을 감독하면서 너무 가까워졌던 것이다.

미국 시민단체들은 금융산업과 금융관료의 유착을 세밀하게 감시한다. 금융산업이 돈으로 대형 로비스트를 고용, 의회에 압력을 넣어 친금융산업적 법 제정을 시도하는 것을 막는다. 미국에서 오래 공부하고 최근 국내 금융감독당국에 자리를 잡은 지인은 “와서 보니, 한국의 금융관료와 금융산업 간 유착 정도가 미국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수준”이라며 개탄했다.

촛불로 시작, 올바른 세상을 향한 꿈이 진행 중인 2017년. 새 정부에 필요한 금융위원장의 인선 기준은 무엇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누구를 위한 일을 하는 사람인가가 되어야 한다. 우리나라 금융정책은 금융시장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진단을 넘어, 근본적인 해법은 무엇인가를 결정해야 할 기로에 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든 국민이 알고 있듯이 1400조원에 육박하는 가계부채가 금융시장의 뇌관처럼 보인다. 또 5대 주력산업의 경쟁력 약화로 인한 기업구조조정도 현안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문제가 왜 생긴 것인가. 전문가 중 일부는 가계가 소득을 모아 저축한 돈을 기업에 빌려주는 역할, 생산 현장에 필요한 자금을 중개해주는 은행의 기능이 무너진 것이 원인이라고 지목한다.

은행에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또박또박 받던 채권자인 가계가 어느 순간 은행에 돈을 빌리고 이자를 또박또박 내야 하는 채무자로 전락한 것은 우리 금융시스템의 가장 큰 문제다. 보다 크고 비싼 집을 사게 만드는 유혹에, 창업만 하면 성공할 수 있을 것처럼 부추긴 환상에, 돈을 쉽게 빌릴 수 있다는 TV의 대출광고에 가계는 쉽게 무너졌다. 이것들과 싸워야 한다.

자금중개가 업의 본질인 은행은 신용창출(대출)이 업의 본질이 됐다.

특히 부실한지, 건전한지 분별하지 못한 채 돈을 빌려줬다가 떼인 은행의 평가능력 부재가 새로운 업의 본질조차 왜곡했다. 여기엔 정책자금의 미끼를 활용한 정부도 분명히 책임이 있다.

분별할 능력이 부족해 기업자금은 중개해주지 못하고, 가계 대출만 늘려온 것이 왜곡된 현상의 실체다. 때문에 가계부채 문제의 중심엔 가계 대출계약을 남발한 채권자로서의 도덕적 해이가 있다.

은행은 가계대출에서도 심각한 도덕적 해이를 범하고 있다. 우량 주택담보대출, 비우량 담보대출도 가려내기보다는 정부 방침에 따라 일률적인 DTI, LTV 룰을 적용하는 방식으로 도덕적 해이를 방치한다. 서울이 떨어지면 전국이 떨어지고, 서울이 오르면 지방도 따라 오르는 우리나라 부동산 가격의 일방향성은 이처럼 가계대출의 위험을 키운다. 성공 확률이 낮다고 하면서도 자영업자 대출은 줄이지 않는다. 실적 올리기에 목매는 은행 경영 때문이다. 가계->은행->기업으로 이어지던 자금 순환이 은행->가계, 은행->기업으로 뒤죽박죽된 것을 되돌려놓아야 한다.

당장 무너지는 가계를 억지로 곧추 세우길 원한다면 금융위원장은 외과수술을 잘할 사람이면 된다. 금융의 역기능을 바로잡기를 원한다면, 심신을 보(補)하면서 차차 근본체질을 바꾸는 한의사 역할을 할 이를 찾아야 한다. 금융위원장와 호흡을 맞출 실무 국장들은 이런 한의사를 좋아하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 그들 스스로 외과수술 교육만 받아왔기에, 한의사 말을 들을 리 없다.

그들이 두 손 들고 고분하게 말을 따른 적이 딱 한 번 있었던 것 같다. IMF 위기 당시, 야인에서 일약 초대 금융감독위원장에 오른 이헌재다. 재무관료 출신이었기도 했지만, 이헌재는 자신의 사단을 데리고 금융당국과 시장 곳곳을 점령했다. 김영재, 오호근, 서근우, 이성남, 이성규, 박해춘, 이덕훈, 황영기, 하영구 등이다. 세월이 지나면서 본인들이 부인하기도 하고, 호가호위하다가 다친 이들도 있다.

사단을 거느리고, 외과수술 공부만 하던 모피아들을 정책에서 떼어 놓아야 한다. 근본치료를 하기에 시간과 방법이 충분하기에 서둘러 대책반장을 찾을 이유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