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입자(貰入者)’란 단어 의미 그대로 세(남의 건물를 빌려 쓰고  값으로 내는 돈)를 내고 남의 집이나 방 따위를 빌려 쓰는 사람을 뜻한다. 단군의 고조선에서 오늘날까지 5000년 역사를 지닌 면적 9만9720㎢의 ‘대한민국’ 땅에 태어나 누구나 한번쯤은 거쳐 가거나 혹은 평생을 벗어날 수 없는 ‘세입자(貰入者)’라는 상황은 우리가 어깨에 짊어지고 있는 부담과 사회의 무게감을 대변하는 이름이 아닐까.

신한은행이 지난 3월 발표한 ‘2017 보통사람 금융생활 보고서 이슈분석’에 따르면 월 평균 468만원을 버는 가구가 단 한 푼의 지출 없이 꼬박 10.9년을 저축해야 서울의 매매가 6억원의 전용면적 105㎡(32평)대 아파트를 구입할 수 있다. 

상대적으로 소득이 높은 50대(월 평균소득 539만원 기준)의 경우 아파트를 사는데 9.4년, 소득 수준이 낮은 20대는 18년이 걸린다. 서울에서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뤄 ‘세입자’의 굴레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 난 이제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에요

서울시 전월세보증금 지원센터의 통계에 따르면 집주인의 보증금 미반환 등으로 인한 임대차 상담건수는 ▲2012년 1만1600건 ▲2013년 3만2700건 ▲2014년 2만9662건 ▲2015년 3만6049건으로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혼자 사는 1인가구의 피해가 크다. 1인 가구 중에서도 홀로 자취하는, 원룸세입자 대학생의 1006명중 절반에 가까운 448명(44.6%)이 세입자 피해를 입은 경험이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세입자 피해의 주요 내용은 ▲수리요청거절 26.8% ▲계약전 정보와 실제가 다름 23.3% ▲이사시 부당한 보증금 차감 12.3% ▲보증금 반환지연 10.4% ▲계약 기간 중 퇴거 요철 6.0% ▲보증금 미지급 3.4%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지방에서 상경해 ‘혼족(혼자 사는 1인가구를 의미)’의 메카 관악구에서 자취 경력 12년차를 맞이한 대학원생 L씨는 연구실에서 나오는 소정의 연구비를 제외하고는 특별한 수입이 없어 월세를 전전할 수밖에 없다. 이제는 월세 구하는 노하우가 몸에 배인 L씨는 “지난 몇 년간을 회상해보면 별의별 집주인들이 다 있었다”며 “짐을 다 빼고 정리를 마쳤음에도 보증금을 일부러 차일피일 미루는 것은 기본이고, 돌려받을 보증금에 멋대로 청소비까지 제하고 돌려줬다”며 혀를 내둘렀다.

대학교 재학 당시 서울 종로구 혜화동 인근에서 자취를 했던 K씨는 “예전 살았던 다세대 주택의 보일러가 베란다 외벽 쪽에 있었는데,  건물 시공 당시에 시공사와 주인이 서로 합의해서 이렇게 설치한 건데, 겨울만 대면 수도가 동파했지만 그건 세입자가 알아서 할 일이라며 모른 체 해 3년 사는 동안 철마다 10만원이 넘는 수리비용을 들여야했다”며 울분을 토했다.

주택 월세입자가 임대인으로부터 일방적인 피해를 받는 경우가 많지만, 정작 당국으로부터 실질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거나 피해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경로는 구축돼 있지 않다. L씨와 K씨 모두 관할구청 주택건축과와 전·월세팀에 도움을 청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마땅히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뿐.

임대인의 횡포로부터 일방적인 피해를 받는 것 이외에도 청년층 1인 가구 거주 비율이 높은 원룸과 오피스텔의 주거환경은 불안정하기 짝이 없다.

화재가 생길 것에 대비해 스프링클러와 경보 장치 등이 설치돼 있지 않고, 하나의 방을 불법으로 분할해 임대 하는 등의 문제는 오래 제기됐지만 이 역시 제대로 된 해결책이 없다. 

지난달 임차인의 실수로 화재가 발생한 관악구의 한 원룸은 스프링클러와 화재경보기는 물론 1층에 1개 설치된 소화전도 ‘가짜’를 구비해둔 것으로 드러나, 열악한 세입자 환경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소방서에서 출동하고 화재가 진압되고 난 이후에야 집주인은 ‘라면 끓이는 연기’에도 반응하는 경보기만 덜렁 달았다.

관악구청 관계자는 “정식 신고가 들어오면 접수 후 조사반이 파견되고 위법 여부를 가린다”며 “인원은 부족하고 시간도 없어 자체적으로 전수조사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 서울자치구별 1인가구 비율. 출처=서울시

우리나라 1인가구는 1980년 38만 명에서 2015년 520만 명으로 꾸준히 증가했다. 2025년에는 1인 가구 비율이 전체 가구중 30%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지난달 8일 서울시가 발표한 ‘2017 서울서베이 도시정책지표조사’에 따르면 1인 가구 비율이 가장 높은 자치구는 관악구(44.9%)로 나타났다. 중구(37.8%)와 종로구(37.5%)가 0.2%p의 근소한 차이를 보이며 뒤를 이었다.

주택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가 지난해 9월에 출범, 세입자 피해 예방에 뛰어들었다. 위원회는 ▲차임 또는 보증금 증감에 관한 분쟁 조정 ▲임대차 기간에 관한 분쟁 조정 ▲보증금 또는 임차주택의 반환에 관한 분쟁 조정 ▲임차주택의 유지, 수선의무에 관한 분쟁 조정 ▲그밖에 주택 임대차에 관한 분쟁조정 등의 업무를 진행한다. 주택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는 서울과 수원, 대전, 광주, 대구, 부산 등 6곳의 법률구조공단지부에 설치돼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국가가 혼자 사는 청년의 가족이 되겠다고 약속, 눈길을 끌었다. 청년 1인의 주거부담을 줄이기 위해 ▲공공임대주택 입주 자격을 동거, 비혼, 여성 등 다양하게 확대 ▲청년 대상 사회임대주택 공급 확대 등의 공약을 내세웠다. 또 청년 체불임금을 국가가 먼저 지급하고, 안전한 주거환경 조성, 1인 가구에게 효율적인 저용량 종량쓰레기봉투와 소포장 제품의 판매 유도 등도 공약으로 뒤를 이었다.

그러나 주거부담 완화와 주거환경 개선의 정책 방향은 정해져 있지만 세입자들이 입을 수 있는 피해에 대한 예방책이나 해결책은 구체적으로 제시돼 있지 않다.

김지은 주택산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현재 임차인들을 위한 세부적인 대책이 미비한 것은 사실”이라며 “분쟁조정위원회 역시 올해 본격적으로 운영될 예정이지만 기준이나 규제 등의 가이드라인이 명확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김 책임연구원은 “임대차시장은 전·월세 포함해 구체적인 인프라를 고안하는 단계에 있지만 구체적이면서 풀어야할 문제가 너무 많다”며 “정부의 가이드라인 제시와 규제가 적극 필요한 때”라고 덧붙였다.

 

▲ 지하철 2호선 서울대입구역 인근 건물에 걸린 상가임차인의 호소문이 눈길을 끈다. 출처=이코노믹리뷰 김서온 기자

◆ 뛰는 ‘영세입자’, 위에 나는 ‘건물주’

똑같은 세입자다. 다만, 느낌만 조금 다를 뿐. 작은 생산규모와 적은 자본을 가지고 기업(상점)을 운영하는 영세한 상공업자들은 세입자로서의 입지도 초라할 수 밖에 없다. 

지난 18일 소위 요즘 ‘뜨는’ 상권 중 하나인 ‘샤로수길(서울대학교 정문의 ’샤‘ 모양의 조형물과 압구정 가로수길의 형성기를 닮았다 해 붙인 단어)’ 인근 한 건물에는 대통령께 말씀드리고 싶은 말을 적어 내려간 상가 세입자의 현수막이 오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건물주가 재건축을 결정하면서 당장 길거리로 내몰리게 된 세입자들이 대통령에게 자신들의 사정을 토로한 것. 이들은 이미 매장을 비워 철거가 완료된 일부 매장들과 대립각을 이뤘다.

이 건물 세입자는 “오랜 기간 세 들어있던 세입자들이야 어떤 조건으로 나갔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나갈 계획은 없다”며 “답답한 심정을 토로할 곳이 없어 현수막에 대통령께 드리고 싶은 말을 담았다”고 전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상가임대차상담센터에 접수된 분쟁 상담 건수는 지난해 3월 1260건으로, 2015년 3월(732건) 대비 72% 가량 증가했다.  서울시 상가임대차 상담센터에서는 ▲계약과 계약해지 문제 ▲임대기간과 임대료 인상문제 ▲권리금 회수 방해문제 등 임대차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 등에 대한 상담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 서울시 상가임대차 상담센터 '눈물그만' 화면 캡처. 출처=서울시 홈페이지

영세상인들의 상가 임대보호를 목적으로 2001년 12월 29일 제정된 ‘상가임대차보호법’이 있다. 영세상인들의 안정적인 생업과 과도한 임대료 인상을 방지해 세입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것으로 사업자등록의 대상이 되는 영업용 건물에만 해당된다.

이 법은 2015년 5월 개정시행에 나섰다. ▲차임의 연체기간이 1개월 연장 ▲권리금의 법제화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연체기간의 경우 연체된 차임이 2기에 달할 경우 임대인에게 계약해지권이 주어졌지만 이제 3기로 연장됐다. 또 임대인의 권리금 지급 방해 행위 조항을 둬 임차인의 권리금 자체를 보호했으며 이를 위반하며 임대인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현재 임차인이 임대인에게 계약갱신을 요구할 수 있는 동시에 권리금을 보호받을 수 있는 기간인 5년이 10년으로 연장하는 내용을 담은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발의된 상태다.

지금으로부터 8년전 발생한 ‘용산참사’는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사망하고 24명이 부상을 입은 사건이다. 그보다 3년 앞서 2006년 용산4구역에 30조원이 투입된 뉴타운 재개발사업이 추진됐으나, 이 과정에서 주거세입자와 임차상인에 대한 보상 문제와 생존권 보장에 대한 문제가 제기됐다. ‘주거세입자’에게는 4개월분 주거이전비가, ‘임차상인’에게는 3개월분 휴업보상비만 지급됐고 권리금에 대한 보상은 일절 없었다.

2008년 겨울부터 강제철거가 시작되면서 경찰의 철거민 강제진압 과정에서 알 수 없이 발생한 화재로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정부차원의 용산 참사 진상 조사위원회 설치가 필요하다’고는 했으나 정부 차원의 진상 조사위원회 구성된 적은 없었다.

대참사를 야기한 용산참사 이외에도 일반적인 임대인(건물주)과 임차인(세입자) 사이 분쟁은 흔한 일이다. 지난 2011년 12월 말 상가를 임대해 2016년 12월 말 계약이 끝나는 W씨는 들어갈 당시 비워져있던 상가를 보증금 5000만원과 월 250만원의 조건으로 계약해 카페를 운영했다. 건물노후로 W씨는 약 1억 원이 넘는 개인자금을 들여 설비를 다시 했다. 임대차계약 만료를 앞두고 건물주에게 재계약을 요청했으나 건물주 본인이 해당 상가를 카페로 쓸 예정이라며 불가통보를 했다.

구본기 생활경제연구소 소장은 “상가임대차 관련 분쟁은 무조건 법정으로 가게 된다”며 “결국 영세입자들의 부담은 더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또 “지난해 서울시 분쟁조정위원회에 접수된 분쟁건수는 1만1125건이지만 이중 44건이 조정위원회에 최종으로 올라갔고, 정작 조정이 성사된 건 16건에 불과하다”며 “최근 상가임대차보호법에서 계약갱신 요구 기간을 5년에서 10년으로 연장하는 법안이 발의됐지만, 법의 허점이 많아 5년 내에도 얼마든지 쫓아낼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