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12일 초복이 코앞으로 다가왔지만,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로 인해 계란과 닭고기 수급이 어려워 올해 ‘초복 특수’에 비상이 걸렸다. 일부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연례행사처럼 여겼던 ‘초복날 삼계탕 먹기’를 불안하다는 이유로 굳이 계획하고 있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최근 BBQ를 필두로 일부 치킨 프랜차이즈에서 메뉴 가격을 올리면서 ‘치느님’으로 불리던 치킨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응 역시 냉랭해졌다.

정부의 압박으로 다시 가격을 내렸지만 닭의 인기도 떨어지는 모양새라 업계 걱정은 더 크다. 여기에 가뭄과 폭염으로 귤, 포도, 수박 등 과실물가지수가 4년 만에 최고를 찍으면서 밥상물가도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소비자들의 입에서 한숨이 나올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AI가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고병원성 H5N8형 AI’로 확진된 농장은 총 21곳으로, AI의 확산을 막기 위해 살아있는 가금류(닭·오리 등 집에서 사육하는 조류)의 유통을 지난 12일부터 25일까지 전면 중단키로 했다. 이미 살 처분 된 닭의 수가 20만을 넘어섰고, 예방적으로 살 처분된 닭까지 포함하면 이 숫자는 계속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약 3주 앞으로 다가온 초복을 맞는 관련 업계는 비상이다. 여름철 삼계탕 등을 판매하는 외식업계와 계란을 주재료로 카스테라를 만드는 제빵업계 등이 대표적이다.

외식 업계 관계자는 “초복에 국내에서 소비되는 닭은 연중 30~40%로 대목 시즌인데, 이번에는 AI로 수급이 어려워 업체들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면서 “수급 확보를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상황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대형업체의 경우 미리 닭 확보에 나서 초복 특수를 대응할 수 있는 여력이 있다는 입장이다. 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 대형마트 3사는 미리 농가와 계약해 닭고기 물량 수급에 아직까지는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CJ프레시웨이 역시 초복 특식으로 제공할 삼계 닭 총 8만수를 미리 확보했다. 초복 당일 전국의 단체급식 사업장에서 약 5만수의 닭을 삼계탕으로 선보일 수 있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카스테라 등을 만들 때 계란을 원재료로 사용하는 제빵업계는 계란 수급이 어려운데다 원가 상승 역시 불가피한 상태라 제품 생산 차질까지 예고된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SPC그룹과 CJ푸드빌은 아직 계란 수급에는 문제가 없다. 다만, 향후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관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SPC그룹은 지난해 12월 AI 여파로 계란 공급에 차질을 빚자 카스테라 등 19개 품목의 생산을 중단한 바 있다. 이에 이번에도 상황 변화에 따라 대처하겠다는 게 회사측의 계획이다.

밥상물가 고공행진에 소비자 한숨

AI 여파에 가뭄 등으로 밥상 물가도 크게 오르는 추세다. 20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계란 1판(30개입)의 평균 소비자 가격은 7967원이다. 1년 전 5374원과 비교하면 2593원 높은 가격이다. 계란 가격은 지난해 11월 AI 발생 이후 1만원대까지 올랐다가 현재 7000원 후반대를 유지하고 있다. 닭고기의 경우 생닭(1kg)의 평균 소비자가격은 5595원으로 전월(5798원)보다는 203원 떨어졌다.

여기에 수박, 참외 등 여름철 대표 과일들의 가격이 오르면서 지난달 과실물가지수가 4년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이달 초 우박 피해가 컸던 데다 가뭄과 폭염으로 인한 작황 부진으로 과일 값은 더 치솟을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과실물가지수는 118.15로 2013년 5월(118.189) 이후 가장 높았다. 과실물가지수는 사과, 배, 복숭아, 포도 등 소비자들이 자주 찾는 과일 15개 품목의 물가를 산출한 지표다. 2015년 가격(100)을 기준으로 등락을 나타낸다.

과실물가지수는 지난해 11월 96.79에 그쳤지만 이후 7개월간 꾸준히 상승했다. 특히  3~5월은 1년 전과 비교해 두 자릿수 이상 상승폭을 보였는데, 지난달 과실물가지수는 전년동월대비 19.1%나 올랐다.

이에 정부는 밥상물가 안정을 위해 수입 카드를 꺼냈다. 1판(30개입)에 최고 9330원까지 오른 계란 값을 잡기 위해 태국산 계란을 들여오기로 결정해, 오는 22일 부산항을 통해서 230만 개가 처음으로 국내에 들어온다.

해당 계란들은 대형 마트에서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식당이나 제과업체에 유통된다.

또 농림축산식품부는 계란 가격 안정화를 위해 진행했던 농협 할인 판매를 오는 8월까지 연장할 계획이다. 지난 1일부터 공급하고 있는 정부 수매물량 400만 개에 추가 물량 공급까지 불사하겠다는 방침이다. 내달 12일 다가오는 초복을 대비해 비축 물량 8000톤(t)을 시장에 내놓는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태국산 계란 수입이 예정되어 있어 외식이나 제빵 업체에는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면서 “다만, 소비자들에게 태국산 계란은 생소하기 때문에 우선 업체 위주로 판매될 것이라 소비자들이 구입하는 계란 가격 안정까지는 시일이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우리나라 AI 빈발 이유와 대책은

왜 매년 이맘때면 AI와 구제역 등으로 우리나라가 어려움을 겪는 것일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국내에서 빈발하는 AI와 구제역 등 가축질병의 주요 원인으로 좁은 면적에서 집약적으로 가축을 키우는 공장식 축산을 지목했다.

OECD의 ‘한국 가축질병 관리상 농업인 인센티브’ 보고서에 따르면 급격한 집약화가 고병원성 가축질병 재발의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또 농지가 부족한 상황에서 급격한 인구증가는 가축 사육의 밀집도를 높였고, 급격한 집약적 축산화가 최근 고병원성 가축질병 재발에 중요한 작용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게 보고서 내용이다.

이는 AI, 구제역 등을 근본적으로 예방하려면 현재와 같은 집약적 사육을 하는 공장식 축산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OECD는 보고서에서 정부 통계에조차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는 영세 축산농가들이 가축질병 예방의 사각지대라고 지적했다. 축산등록이 면제되는 영세농은 교육 연수 대상에서 제외되며 이런 영세농이 많은 것은 최근 AI 등 심각한 질병이 잦은 상황에서는 상당한 위험요인이라는 것이다.

OECD 보고서에 따르면 AI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발병 보고 의무를 부여하고, 비보고 시 보상에서 제외하는 등으로 기준을 단순화할 것과 손실보상체계를 명확히 설계해 정부와 민간의 책임 등에서 불확실성을 제거할 것을 권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