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는 19일 경기도 이천 SKMS 연구소에서 최태원 회장을 비롯해 최재원 수석부회장, 조대식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을 비롯해 7개 위원회 위원장과 주요 관계사 최고경영자(CEO )등 4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2017 확대경영회의’를 열었다. '서든데스'라는 표현까지 나올 정도로 살벌한 지난해 회의와 달리 이번에는 차분하게 글로벌 기업과의 격차를 점검하고, 상생을 위한 뉴SK 방법론을 논의했다는 후문이다.

올해 회의의 핵심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SK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정하는 것이었다. 현실로 만들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규모의 경제를 가능하게 만드는 자본과 강력한 조직도 답이 될 수 있으나 가장 중요한 것은 ICT 적응력이라고 할 수 있다. SK의 ICT 컨트롤 타워로 부상하고 있는 SK텔레콤의 역할에 시선이 집중되는 이유다.

분위기는 좋다. SK는 지난달 말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에게 2017 수펙스추구상 대상을 수여하며 돈독한 믿음을 보여줬다. 재계는 이번 수상을 놓고  SK하이닉스 인수 공로를 치하하는 한편 박 사장이 최태원 회장의 최측근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시그널'로 해석하고 있다.

문제는 이를 실행할  SK텔레콤의 역량이다. SK텔레콤은 국내 이동통신시장을 장악하고 다양한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지만 모바일과 초연결 생태계 측면에서는 유독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인공지능과 다양한 기술의 연구개발에 나서면서 SK텔레콤은 양자암호통신의 거리 한계를 극복하는 장거리 통신에 성공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모바일 생태계에 대한 심각한 이해부족은 여전히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이대로 가면 최태원 회장이 올해 확대경영회의에서 주장한 '뉴SK'의 자리에 SK텔레콤은 존재할 수 없다는 우려도 나온다.

▲ 확대경영회의. 출처=SK

멜론은 왜 팔았을까?
앱 분석업체 와이즈앱은  5월 기준 스마트폰 음악 서비스 현황을 분석한 결과 멜론이 549만명 이용으로 1위에 올랐다고 20일 밝혔다. 지니뮤직이 170만명, 카카오뮤직이 156만명, 네이버뮤직이 154만명순이다. 지난해 11월 무료 음악 서비스 '비트'가 서비스를 종료 한 후 멜론의 절대강세가 더욱 공고해진 분위기다.

멜론은 가수 아이유의 소속사로 유명한 로엔엔터테인먼트(로엔)가 서비스하며 지난해 카카오가 인수했다. 로엔은 1978년 시사영어사(현 YBM)의 자회사로 출발한 서울음반이 모태다. 2001년 상장한 후 2005년 SK텔레콤에 합류했다.

▲ 모바일 음악앱 사용자 수. 출처=와이즈앱

출시 당시부터 온라인 음악 서비스의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2013년 SK텔레콤은 돌연 로엔을 홍콩계 사모펀드인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에 매각했다. SK텔레콤에겐 로엔은 손자회사였다. 공정거래법에 따라 로엔을 포기하지 않을 경우 1300억원의 비용부담이 발생한다는 점을 우려해 '알짜배기 모바일 서비스'를 팔아버린 셈이었다.

3년 후 카카오는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로부터 로엔을 1조8700억원에 인수했다. 매각 차익만 1조원에 이르는 부담스러운 빅딜이었으나 카카오는 망설이지 않았다. 로엔을 단순한 음악 서비스 플랫폼으로 인식하지 않고, 일종의 초연결 생태계로 낙점했기 때문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SK텔레콤과 SK플래닛의 상황이다. 2013년 SK플래닛은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에 로엔을 매각할 당시 15%의 주식만 남겨두고 나머지 주식을 넘겨 2659억원의 수익을 올렸고, 2016년 카카오 인수 당시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가 61.4%의 주식을 넘길 때 남은 15%의 주식을 함께 넘겨 약 3000억원의 수익을 올렸다.

이는 11번가 운영업체인 커머스플래닛의 흡수합병과 플랫폼, T스토어 부문의 분사로 대표되는 사업 개편을 바탕으로 '커머스 온리' 회사가 되겠다는 꿈을 꾸는 상태에서 '돌아갈 수 있는 다리'를 끊어버린 것과 같다. SK텔레콤을 중심으로 재편되기 시작한 ICT 플랫폼 전략의 시작이었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SK플래닛을 커머스 온리 전력으로 돌리고 SK브로드밴드를 품은 SK텔레콤을 중심으로 그룹 차원의 ICT 플랫폼을 구축하면서 가장 핵심인 '모바일 콘텐츠'를 버렸기 때문이다.

아마존의 경우 스포티파이 등과 협력해 모바일 음악 서비스를 인공지능 스피커 에코에 탑재했다. 많은  ICT 기업들도 미래 플랫폼을 흐르는 핵심 콘텐츠로 스트리밍 중심의 음악 시장에 집중하고 있다.

SK텔레콤의 경쟁자인 KT와 LG유플러스는 아예 공동전선을 꾸렸다. KT는 최근 지니뮤직을 서비스하는 KT뮤직의 사명을 아예 지니뮤직으로 바꾸고 LG유플러스의 지분을 투자받기도 했다. 자체 음악 플랫폼이 없던 LG유플러스는 CJ E&M의 엠넷닷컴과 제휴해 음원 콘텐츠를 사용했으나, 이제 보폭이 넓어진 셈이다. 지니뮤직의 주요주주구성은 KT(지분율 42.49%), LG유플러스(지분율 15%), SM, YG, JYP 등 대형기획사(지분율 7.12%)로 정리됐다.

▲ 지니뮤직 로고. 출처=KT

이들이 주목하는 음악 서비스가 초연결 생태계의 핵심 콘텐츠가 될 것이라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카카오가 추후 스마트 모빌리티 전략을 통해 O2O 방법론을 전개하면서 로엔의 콘텐츠를 적극 활용하는 계획을 세운 것이 단적인 사례다.

인공지능 스피커의 특성상 '귀로 듣는 서비스'가 핵심이라는 것도 이제는 상식이 됐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인 인공지능이 음성 스피커의 방식으로 수렴되는 상황에서 로엔을 팔아버린 SK텔레콤의 실책은 더욱 뼈 아프다.

단순하게 수익 측면 봐도 문제의 심각성을 알 수 있다. 멜론은 카카오에 인수된 후 단시간에 가입자 50만명을 추가로 흡수하며 몸집을 불리고 국내 모바일 음악시장을 사실상 평정했다. 이에 힘입어 카카오는 올해 1분기 처음으로 로엔 실적을 반영한 결과 연결기준 잠정 영업이익 383억원을 기록해 전년 동기 대비 81.8% 성장을 끌어냈다. 이 모든 것이 공정거래법 조항을 피하기 위해 '단 돈' 1300억원을 아끼려 했던 SK텔레콤의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SK텔레콤이 로엔을 계속 가지고 있다고 가정해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싸이월드를 야심차게 인수했으나 대기업 특유의 경직된 조직문화 등으로 새로운 서비스를 망쳐버린 흑역사가 로엔에도 반복되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결론적으로 SK텔레콤은 통신업의 특성인 플랫폼에만 안주해 콘텐츠 사업을 매개로 펼쳐지는 모바일 및 초연결 생태계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면서 지니뮤직을 중심으로 뭉치는 KT와 LG유플러스와의 경쟁에도 한 발 뒤쳐졌다는 평가다. 최태원 회장이 그룹 차원의 4차 산업혁명 대응방안을 주장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으나 SK텔레콤이라는 조직이 뒤를 받쳐주지 못한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에서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 및 다양한 사업에 진출한다고 해도 '미래는 정해져있다'는 우울한 결론만 나오게 된다.

▲ 로엔의 소속 가수 아이유. 출처=로엔

SKT에는 없고 카카오에는 있는 것
SK텔레콤과 카카오를 직접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두 회사 간 미묘한 교집합과 차별점은  ICT 업계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우선  두 회사는 '서비스 종료 중독자'라는 별명이 나올 정도로 출시된 서비스를 자주 중단하는 편이다. 카카오는 다음과 합병 후 다음지도, 팟인코더, 다음뮤직, 다음클라우드, 다음여행 등을 순차적으로 종료했고 SK텔레콤도 STK 테이크, 여름, 파이브덕스, 히든 등을 모두 종료했다.

 차이도 있다. 카카오는  다음으로 대표되는 인터넷 인프라를 지우고 모바일로 체질을 바꾸는 한편, 다음tv팟을 카카오TV로 재편하는 등 나름의 업그레이드를 추진하고 있다. 로엔의 음원 콘텐츠를 확보한 이유도 비슷한 연장선에서 설명이 가능하다.

반면 SK텔레콤의 모바일 서비스는 대부분 의미도 없고 인기도 모으지 못했다. 가계부부터 개인형 클라우드 서비스 등 다양한 앱을 출시했으나 대부분은 '있는 줄도 몰랐다'는 평가를 받았다.

카카오는 로엔을 인수하며 '스마트 모빌리티'라는 큰 그림에 초연결 생태계를 덧대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구사하고 있다. 심지어 KT와 LG유플러스도 인공지능 시대의 핵심 킬러 콘텐츠의 존재감을 인식하고 있는 상황이다.  SK텔레콤은 기본적으로 모바일과 생태계를 콘텐츠적 측면에서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플랫폼의 SK텔레콤에는 없고 ICT 기업의 카카오에는 있는 것. 바로 모바일과 초연결 DNA다. 아이러니하지만 이는 최태원 회장이 올해 확대경영회의를 통해 간절히 모색한 부분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