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춘의 편집장이자 미국의 유명한 저널리스트인 제프 콜빈(Geoff Colvin)은 자신의 저서 ‘인간은 과소평가되었다’에서 기술을 대하는 인간의 새로운 자세를 요구했습니다. 그는 기술이 발전해도 인간의 영역은 계속 이어지며, 당연히 답을 찾기 위해서는 컴퓨터가 아니라 우리 자신을 면밀히 살펴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그의 주장에는 기술의 발전이 인류에 도움이 되며, 또 별다른 타격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낙관론이 깔려있습니다. 나아가 제프 콜빈은 “기계들은 인간이 절대 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뛰어나게 (업무를) 수행하고 있으며, 우리는 적어도 새롭고 더 나은 삶을 창조할 기회를 얻었다”고 말합니다. 기술과 인류의 행복한 동행이 가능하다는 뜻이에요.

 

문제는 기술의 발전에 따른 부작용이 인류의 본연적 가치를 훼손하는 것, 즉 직업을 빼앗거나 인공지능이 인류를 지배하는 디스토피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무슨 뜻일까. 협업과 생산성의 측면에서 기술과 인류의 콜라보가 당위성을 얻는다고 문화적, 집단공동체적 규약의 파괴까지 허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여기에는 관습적 의미의 정치사회문화적 감정들이 뒤섞여 있습니다.

최근 SBS는 시사고발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를 통해 ‘캐릭터 커뮤니티’를 정조준해 화제를 모았습니다. 지난 3월 인천에서 발생한 끔찍한 여아 살해사건의 실체를 파헤치며 용의자인 김양이 심취해있던 ‘캐릭터 커뮤니티’를 분석했어요.

그것이 알고싶다에 따르면 용의자 김양은 학교를 마치고 귀가하던 초등학교 2학년 여학생을 유인, 자신의 아파트에서 끔찍한 방법으로 살해합니다. 일면식도 없는 아이의 신체 일부를 훼손하기도 했어요. 당시 언론은 여야 살해사건을 보도하며 김양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알고싶다는 용의자인 김양이 심취해있던 캐릭터 커뮤니티에 주목합니다. 캐릭터 커뮤니티는 온라인에서 벌어지는 가면무도회와 비슷합니다. 이용자들이 각각의 캐릭터를 설정해 정해진 세계관에서 나름의 롤플레잉(역할놀이)를 하는 개념이에요. 카페 커뮤니티, 비틀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홈페이지용 커뮤니티부터 트위터와 카카오스토리, 네이버 밴드 등 다양한 종류가 있습니다. 각 이용자들이 하나의 세계관을 공유하며 캐릭터를 연기하며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 가면무도회. 출처=픽사베이

문제는 가상의 공간에서 이뤄지는 캐릭터 커뮤니티가 실제 반 사회적 행동으로 이입되는 경우입니다. 그것이 알고싶다도 이 지점에 주목했습니다. 제작진은 김양이 평소 과하게 캐릭터 커뮤니티에 심취해 있었으며 그 과정에서 상대 캐릭터에 집착,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보였다고 분석합니다. 목이 잘리거나 끔찍하게 훼손된 시신 콘텐츠를 공유하며 역할놀이에 심취한 상태에서 이를 실제 행동으로 옮기고 싶은 욕구를 느꼈고, 그것이 초등학생 살인으로 이어졌다는 겁니다.

캐릭터 커뮤니티를 애용하는 사람들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방송 전부터 그것이 알고싶다가 편파적인 방송을 통해 대다수 캐릭터 커뮤니티를 잠재적 범죄자로 규정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것이 알고싶다 공식 페이스북은 캐릭터 커뮤니티 애용자들의 항의로 시끌법적합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이렇게 주장합니다. “캐릭터 커뮤니티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있는 사람이 캐릭터 커뮤니티를 했을 뿐”이라고요. 실제 커뮤니티 애용자는 “방송 자체가 커뮤니티 이야기에만 집중됐다”며 “커뮤니티 애용자들이 사회부적응자이기 때문에 현실욕구를 사이버상에서 과도하게 풀어낸다면, 이런 논리라면 범죄 수사 만화인 코난 작가는 예비 살인마냐”고 반문합니다. 나아가 그는 “언론의 보도를 보면 게임에 중독되어 현실과 가상을 구분하지 못하고 사람을 죽인 사건과 비슷하게 보는 것 같다”며 “무엇이 진실인지는 모든 사람들이 알 것”이라고 말합니다.

마지막 주장에 핵심이 있습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캐릭터 커뮤니티가 살인자는 아닙니다. 캐릭터 커뮤니티 ‘ 때문에’ 아직 삶을 제대로 시작하지 못 한 어린영혼이 쓰러진 것은 아니에요. 캐릭터 커뮤니티가 아직 산업의 영역으로 올라선 것은 아니지만, SNS라는 거대 ICT 플랫폼을 중심으로 전개된다는 점에서 게임산업과의 비교분석도 나름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게임도 마찬가지지만, 김양의 캐릭터 커뮤니티 과몰입이 분명 비극의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핵심은 아니었겠지만 최소한 폭탄에 불을 붙이는 행위는 된다는 뜻입니다. 기술의 발전이 초연결 생태계를 끌어낸 상황에서 캐릭터 가면놀이가 아무런 규제없이 벌어질 수 있는 인프라가, 그 과정에서 제어할 수 없는 끔찍한 콘텐츠가 아무런 제약없이 횡행한 지점은 어떤 말로도 용서되기 어려운 범죄를 낳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게임은 일반적인 규제를 받기도 해요.

따지고 보면 랜섬웨어 사태로 부각되는 비트코인, 그리고 소수 1인 크리에이터를 중심으로 때 되면 불거지는 MCN 논란. 다 마찬가지입니다. 기술의 발전이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훼손하는 순간, 아이러니하게도 기술의 정체성이 부정당하는 겁니다.

그러나 제프 콜빈이 말한 행복한 동행은 아직 유효합니다. 지난해 3월 공개됐던 마이크로소프트의 인공지능 테이 이야기를 할까요. 테이는 사람들과 채팅하며 스스로의 성향을 만들어가는 인공지능입니다. 그런데 인종차별주의자, 남성우월주의자들이 테이에 접근해 편향된 사고방식을 주입한 사건이 발생했어요. 딥러닝으로 이를 체화한 테이는 완벽한 괴물(인종차별주의자-남성우월주의자)이 되었고 마이크로소프트는 테이 서비스를 중단했습니다.

▲ 마이크로소프트 인공지능 테이. 출처=마이크로소프트

무엇을 의미할까요? 아무리 좋은 기술이라도 결국 사람이 중심이 된다는 뜻입니다. 사람에게 달렸어요. 아직 인공지능과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만개하지 않은 상태에서 사람이 주도권을 쥐고 있다는 겁니다.

맞습니다. 시작점이 중요하고, 이를 활용하는 것은 사람입니다. 부디 기술의 발전이 부작용의 그림자에 뒤덮혀 가로막히는 불행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라면서도, 그 간극에서 치열한 논의가 이뤄지기를 바랍니다. 결국 기술은 어떻게 쓰는가에 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