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이 여타 그룹대비 지주사 전환이 어려운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자동차와 캐피탈’의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 때문이다. 현대차그룹이 이를 유지한다면 그룹의 지주사 전환 가능성은 낮다.

또 현대차그룹의 지주사전환은 경영승계 측면을 고려한다는 점에서 그 이미지도 좋지 않다. 가장 좋은 방법은 정의선 현대차그룹 부회장이 가장 많은 지분을 보유한 현대글로비스와 현대엔지니어링이 자체적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그룹 내부거래를 배제한 채 말이다.

▲ 현대차그룹 지배구조[출처:유진투자증권]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19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통해 공정위의 향후 정책 방향에 대해 발표했다.

이날 주요 발표 내용으로는 일감몰아주기, 갑을 관계 개선 등 대기업집단에 대한 조사 및 제재 강화다. 또 이러한 조사를 통해 재벌 일가의 사익편취 행위를 방지하고 하도급·가맹·유통·대리점 등 경제적 약자를 보호하는 것이다.

게다가 공정거래법, 대규모유통업법 등과 관련 시행령 개정도 추진한다. 이는 공정위 시행령인 만큼 법 통과가 불필요하다는 점에서 빠르게 추진될 전망이다. 하지만 이러한 움직임이 대기업 집단에 강한 압박을 넣기 위함은 아니다.

김 위원장은 우선 4대그룹과의 만남을 통해 소통을 강화한다고 밝혔다. 일회성에 지나지 않는 몰아치기식 개혁보다는 지속가능한 개혁을 이뤄내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이를 통해 한국경제가 궁극적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대기업 집단은 한국경제를 이끌고 있는 주역인 만큼 이들에게 개혁의 칼을 강하게 들이대 문제가 생기면 한국경제도 급격히 쇠퇴할 가능성이 있다. 이에 대해 김 위원장도 “재벌은 한국 경제의 소중한 자산”이라고 언급한 만큼 충분히 인식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면서 대중소기업간 상생협력과 같은 모범사례를 만들어 긍정적인 경제 환경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는 공정위의 궁극적 역할이기도 하다. 국내 내수 시장의 한계 혹은 과거 성공의 결과로 나타난 경제력집중이 결과적으로 자유로운 계약을 저해하고 갑을 관계가 보편화되는데 이를 해결하는 것이 바로 공정위의 존재 이유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김 위원장이 재벌개혁 과정에서 궁극적인 목표로 삼고 있는 것은 바로 일자리 창출이다. 일자리 창출은 문재인 정부의 핵심 의제라는 점에서 공정위의 향후 정책방향은 단연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다.

현재 정부의 재벌개혁안에 따른 대기업 집단의 가장 큰 이슈는 지주사 전환 여부와 순환출자해소다. SK, GS, LG그룹 등은 이미 지주사로 전환해 한시름 덜은 반면, 여타 대기업 집단은 지주사 전환 여부와 동시에 순환출자구조를 해소해야 한다.

후자의 경우 대표적으로 삼성, 롯데, 현대중공업그룹 등이 꼽히는 데 이들은 각 기업의 상황에 맞게 지배구조 개편 방향을 정하고 관련 이슈를 해소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현대차그룹은 대부분의 재벌개혁안에서 유독 자유롭지 않다는 점이 눈에 띈다.

현대자동차·캐피탈 “우리 헤어지지 말자”

우선 현대차그룹은 현대차-가아차-현대모비스-현대차로 이어지는 순환출자고리를 해소해야 한다. 이는 김상조 위원장의 발언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순환출자고리 해소는 극단적으로 추진되는 것이 아니다. 특히 현대차그룹의 순환출자구조 해소는 막대한 비용이 드는 만큼 장기적 관점에서 추진될 부분이다.

▲ 현대차그룹 순환출자 구조 [출처:유진투자증권]

또 일자리 창출을 위해 소요되는 자금이 필요하다는 점은 현대차그룹의 순환출자고리 해소가 장기적 과제임을 암시한다.

기존의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변환 시나리오는 현대차그룹의 순환출자규모가 크기 때문에 현대차, 기아차, 현대모비스가 각각 투자회사와 사업회사로 인적분할 후 3개 투자회사 부문을 합병하는 방안이 거론됐다.

이렇게 될 경우 순환출자가 해소되는 동시에 지주사인 현대차그룹홀딩스(가칭)가 탄생한다. 이후 정의선 부회장이 보유한 현대글로비스 지분을 현대차그룹홀딩스에 현물출자해 정 부회장의 지주사 지배력을 높이거나 현대글로비스를 현대차그룹홀딩스와 합병하는 것이다.

이는 간단해 보이지만 사실 쉽지 않다. 현행 공정거래법상 일반지주회사는 자회사 및 손자회사로 금융사 지분을 소유할 수 없다. 대표적인 예로 삼성그룹에서 삼성물산이 지주사로 전환할 경우 삼성생명을 매각해야 하는 일이 발생하는 부분을 들 수 있다.

따라서 현대차그룹이 지주사로 전환할 경우 현대차그룹홀딩스의 손자회사격이 되는 현대캐피탈, 현대카드, HMC투자증권 등의 소유지분이 문제가 된다. 특히 현대캐피탈은 자동차할부 파이낸싱을 담당한다는 점에서 현대차그룹의 지주사 전환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이는 롯데그룹의 인적분할을 통한 지주사 전환에 따른 롯데카드, 롯데케피탈, 롯데손해보험 등의 문제와는 또 다르다.

김준섭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현대차그룹의 지주사 전환은 사실상 어려워 보인다”며 “자동차와 캐피탈이라는 관계를 떼어내기 어려운 구조 때문이며 현 체제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물론 장기적 관점에서 현대차그룹의 지주사 전환은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이슈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현대차그룹이 지주사 전환을 시도할 것이란 점은 예측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는 현대차그룹 측도 부인하고 있는 사실이다.

현대차그룹, 지주사가 아니라면?

지난 5월 23일 유지웅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변화의 중심에 서다: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변화’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향후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변화 시나리오 5가지를 소개했다.

▲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 시나리오별 장단점

그 5가지는 ▲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 3사 합병 ▲현대차 분할 ▲기아차 분할 ▲모비스 분할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 합병 등이며 각 시나리오별 장점과 단점도 덧붙였다. 이중 마지막 시나리오인 모비스와 글로비스의 합병이 유일하게 지주사 전환방식이 아니라는 점이 눈에 띈다.

유지웅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관련 보고서는 지주사의 금융계열사 보유를 전제로 시나리오를 작성한 것”이라며 “현재 상황에서는 마지막 시나리오가 가장 유력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전했다.

이 시나리오의 장점으로 정의선 부회장의 자산가치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현대글로비스를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유 연구원은 보고서 작성 당시의 양사 시가총액을 기준으로 합병비율(0.18:0.82)을 적용했다.

▲ 현대글로비스·현대모비스 합병 1단계 [출처:이베스트투자증권]

우선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를 합병한다. 이어 현대차가 기아차로부터 현대제철 지분 17.27%를 매입하고 정 부회장은 현대차, 기아차, 현대제철이 보유하고 있는 합병회사의 지분을 매입하는 것이다.

문제는 정 부회장이 현대차, 기아차, 현대제철이 보유하고 있는 합병회사의 지분을 매입하는데 약 5조9000억원이 소요된다는 것이다. 이는 정 부회장이 11.7% 지분을 보유한 현대엔지니어링(비상장)의 지분가치를 이용해도 다소 부담이다.

▲ 현대글로비스·현대모비스 합병 2단계 [출처:이베스트투자증권]

다만, 이 시나리오의 경우 현대글로비스와 현대엔지니어링 지분가치에 따라 선호도가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현대차그룹이 지주사 전환이 어렵다면 기대할 수 있는 것은 현대글로비스와 현대엔지니어링이 성장해 정 부회장의 지분가치가 극대화되는 것이다.

▲ 현대글로비스·현대모비스 합병 2단계 [출처:이베스트투자증권]

그러나 공정위가 ‘일감몰아주기’에 대한 조사를 강화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현대엔지니어링이 한전부지 개발로 큰 수혜를 볼 것이란 기대감은 사라졌다. 또 지난해 기준 현대글로비스가 현대기아차와 거래한 비중은 60%를 넘는 만큼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한편, 현대차가 10조원이 넘는 거액을 투자해 사들인 서울 삼성동 한전부지 개발에 현대차그룹 계열사인 현대건설과 현대엔지니어링이 시공을 맡을 것으로 보였다. 이는 마치 ‘관행’인 것처럼 국내 그룹사들은 건설에 그룹 계열의 건설사를 동원했기 때문이다. 이곳에는 높이 596미터, 105층 규모의 신사옥이 지어질 계획이다.

만약 현대차그룹이 지주사 전환을 하지 않고 5번째 시나리오대로 이행한다면 결국 현대글로비스와 현대엔지니어링은 해외사업 확대 등을 통해 그 성장을 담보해야 한다.

현대차그룹은 여타 그룹보다 경영승계 과정에 어려움이 많다. 하지만 경영승계와 내부거래에 의존하지 않고 진정한 성장을 통해 정 부회장의 경영승계와 지배구조개편을 꾀한다면 정 부회장은 ‘실력’ 측면에서 입지는 더욱 단단해질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은 여러 경우의 수 중 하나가 벌어진다면 순조로운 경영승계가 낙관적이지만은 않은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