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세의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18일(현지시간) 취임 한달여만에 치러진 총선에서 과반의석 확보에 성공했다. 지난 사르코지, 올랑드 정권을 거치면서 극한 정치혐오에 빠졌던 프랑스 국민들이 마크롱에게 전권을 쥐어준데 따른 것이다.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는 19일(우리시간) 인터넷판을 통해, 이번 총선에서 마크롱이 이끄는 ‘레퓌블리크 앙마르슈(Republique En Marche·전진하는 공화국)’가 350석을 획득했다고 보도했다.  프랑스 하원의석 총수는 577석, 과반은 289석이다.

총선 이전 의회에 단 한 석도 없었던 ‘앙 마르슈’가 이제 거대 여당으로 등장한 것이다.

대권과 국회를 거머 쥔 마크롱은 프랑스 양대정당이었던 공화당연합, 사회당과 차별화 시도에 나 설 것으로 보인다. 차별성은 개혁정책이다. 공무원 인원 감축과 친기업적 정책이 프랑스 정국의 뜨거운 감자로 급부상하고 있다. 이와 함께 프랑스의 유럽연합 탈퇴를 의미하는 ‘프렉시트(Frexit)’를 거부하면서 영국을 향해서는 브렉시트(Brexit)가속화를 부추겨 런던에 몰려있는 금융회사들의 프랑스 유치 전략을 구사할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가 선택한 마크롱의 개혁 과제는

총선을 앞두고 마크롱이 내세운 공약은 크게 세가지다. 첫 번째는 공무원 숫자 축소다. 사회당의 프랑스와 미테랑 정부시절이었던 80년대 프랑스는 공무원 인원 확대를 통해 실업률 해소에 중점을 뒀었다. 이런 정책은 공화국연합의 자크시락 정권이 들어섰던 90년대말까지 이어졌다. 주력 산업 붕괴로 일자리 창출이 안되던 상황에서 공무원 인원 확대는 실업률 축소를 위한 유일한 해법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이와함께 눈덩이처럼 커져버린 재정적자는 결국 마크롱의 등장과 함께 12만명 공무원 일자리 감축 공약을 등장시켰다. 총선 결과만 놓고보면 일단 프랑스인들은 마크롱의 공무원 감축과 같은 포퓰리즘정책에 손을 들어 준 셈이다.

두 번째 공약은 재정확충과 감세였다. 현재 GDP대비 55%에 달하는 정부예산 규모를 52%로 낮추고 법인세를 현행 33%에서 25%까지 낮춰 신규 채용을 늘리겠다는 것이다. 중도를 표방한 마크롱과 그의 정당이 청년실업률 축소를 위해 법인세 인하 카드를 꺼낸 것이다.

마지막 공약은 친기업적 노동법 손질에 초점을 맞췄다. 한 때 프랑스 노동자들의 자랑거리였던 산별 협상을 폐지하고 기업이 개별협상을 할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이다.

프랑스는 전국단위의 3대 산별 노조(CFDT, CGT, FO)가 전체 노동자들의 90%정도를 장악하고 있다. 취업직후 노동자들은 성향에 맞는 산별노조에 자유롭게 가입할 수 있어 같은 회사에 근무하는 노동자들끼리 서로 다른 노조에 가입돼 있다. 산업별 단위로 노사협상이 이뤄지기 때문에 연대의 힘이 강했던 것이 특징이지만 사측에선 골칫 거리였다.

이를 사회당 출신에서 중도파로 전향한 마크롱이 폐지하겠다고 나 선 것이다. 겉으로만보면 마크롱의 개혁정책은 성공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러나 변수가 하나 있다. 프랑스인들의 정치에 대한 무관심이 극에 달했다는 것이다.

저조한 투표율 '불안'...총 유권자 18.33%지지로 국회 장악

이날 르몽드 인터넷판은 이번 총선이 프랑스 5공화국 역사상 사상 최저 투표율을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투표율은 42.64%를 기록했다. 절반이상이 투표에 참여하지 않은 것이다.

또 '앙 마르슈'의 총선 득표율을 총 유권자수와 대비하면 약 18.33% 지지율을 기록한 셈이된다. 하원의석 과반을 넘긴 거대 여당이 됐지만 지지율은 20%에도 미치지 않는다는 얘기다.

AP, BBC 등 외신들은 프랑스 유권자들 대부분이 신생정당 앙 마르슈 당의 승리가 확실시돼 투표에 참가하지 않은 것으로 분석했다. 또 다른 분석도 나온다. 르몽드는 사회당이 군소정당으로 전락하면서 전통적 좌파 지지자들이 심한 정치혐오증을 나타내고 있으며 투표 기권으로 이어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따라서 프랑스 정치판에서 소수 세력으로 전락한 좌파가 어떻게 연합정당을 구성하고 마크롱과 맞설 것인가에 프랑스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번 총선에서 200여석이 없어진 사회당의 경우 기댈 곳은 총 유권자의 절반이 넘는 기권자들이다. 이들 중 좌파 지지세력을 규합한다면 차기를 노려 볼 수 있다는 계산도 나오지만 실현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 프랑스 주요언론의 분석이다.

이미 분배 위주의 사회당 정책은 국민들에게 버림받았음을 한 달 새 마크롱의 잇따른 대선, 총선 승리가 입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크롱이 英총리에게 브렉시트협상 촉구한 까닭은

지난 13일 파리 엘리제궁에서 열린 영국과 프랑스 정상회담에서 오고간 대화 내용을 살펴보면 마크롱 대통령의 속내를 알아차릴 수 있다.

외신에 따르면 마크롱 대통령은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에게 “(EU 탈퇴) 결정이 영국 국민들의 주권에 따른 것이기에 존중한다”며 영국이 브렉시트 협상을 최대한 빨리 시작할 것을 촉구했다. 그러자 메이 총리도 물러서지 않고 브렉시트 협상이 다음 주에 예정대로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마크롱 대통령의 의중에는 영국이 EU와 브렉시트 협상에 한걸음 한걸음 들어올 때마다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익을 생각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영국이 브렉시트 국민투표 당시 반대측이 가장 우려했던 것은 EU 금융시장을 장악하기위해 런던에 집중돼 있던 해외 대형은행들과 다국적기업 법인들의 이주였다. 영국이 더 이상 EU가입국이 아닌 상황에서 런던에 머무를 이유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지난 프랑스 대선에서 프렉시트를 반대했던 마크롱은 영국의 브렉시트 협상 시기를 이용, 다국적기업과 금융회사를 대상으로 프랑스 유치전에 본격 나 설 채비를 서두르고 있는 상황이다.

프랑스인들은 좌우파로 상징됐던 프랑스 양당 체제를 선거로 뒤엎었다.

젊은 정치신인 마크롱이 대선과 총선에서 잇따라 승리하면서 프랑스를 개혁시킬 수 있는 판은 마련했다. 반면 불안요인도 적지 않다. 대통령부터 시작해 내각과 여당에 경험있는 정치인이 별로 없다. 이제 관전포인트는 하나. 프랑스인들이 선택한 정치 실험이 정치 초짜들의 미숙함으로 미완에 그칠지, 1%대 제자리 걸음 중인 경제성장률을 상승시키고 국가 미래를 바꿔 놓을 수 있을지 눈여겨 봐야 한다. 현재 진행형인 프랑스의 정치 실험은 우리가 맞이하게될 가까운 미래에 언제든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이번 총선에서 350석을 얻은 앙 마르슈에 이어 중도우파 공화당계는 131석을 획득, 제 1야당의 지위를 유지했다. 좌파의 상징이던 사회당계는 32석을 얻는데 그쳐 지난 총선 250석에서 무려 218석을 잃었다. 극우 정당인 국민전선(FN)은 이번 총선에서 8석을 얻었는데 대선후보였던 마린 르펜은 총선 3수끝에 처음으로 국회에 입성하는데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