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을’ 논란이 한창이다 못해 ‘수저’ 논란까지 유행처럼 번졌다.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에 무수저 라는 말까지 더해졌다. 기자들은 갑의 입장에서 일 할 때가 많다. 반대로 기업 커뮤니케이터는 을 입장에서 어떻게 하면 좋은 이미지로 비춰질 수 있을까를 늘 부탁하는 입장이다. 사람마다 좀 다르지만 기자들 중에서도 유독 접근이 어려운 사람들이 있다. 독특하기로 소문난 사람이나 까칠한 성격의 소유자, 이런 기자들 대부분 자기가 쓰는 글에 대해 완벽에 완벽을 기하는 성격이라 한번 시작된 일에 대해 자료를 준비하는 것도 만만찮고, 한번 시작하면 끝 날 때까지 밤낮 구분도 없다.

자료로 접근하는 경우야 그렇다 쳐도 첫 대면조차 힘든 경우가 많았다. 세녹스 관련 일을 할 때에는 처음부터 불법집단이나 범죄자 취급을 당해서 언론이 기피하는 일도 있었다. 그 전에도 간헐적인 언론의 관심은 있었지만, 2002년 여름 즈음 당시 산업자원부가 검찰에 고발하여 시작된 형사소송이 시작되면서 언론의 관심은 대단했다. 우선 산업자원부를 출입하는 기자들부터 만나야 했다. 기자단 간사와 연락해서 기자실 방문 계획을 잡았다.

 

호통치고 문전박대 해도 그냥 물러서면 안돼

기자단 간사부터  설명회에 참석은 하지 않겠다는 양해를 구해왔다. 하지만 그런 자리만이라도 고마웠기에 학수고대 하면서 몇 날 며칠 자료를 준비했다. 쇼핑백 2개에 가득 자료를 들고 과천으로 향했다. 정부청사 출입 절차를 거친 후 산업자원부 동으로 가서 계단을 올라가 기자실 문 앞에 섰을 때였다. 누구인지는 몰라도 제법 연배가 있어 보이는 기자가 호되게 야단을 쳤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예, 세녹스와 관련해서 설명을 좀 드리려고 왔습니다.”

“이런 불법 집단에서 정부부처 기자실에 발을 들여놓다니,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간사님 통해 미리 연락 드렸고, 얘기 듣고 싶어 하는 분이 계시다기에 왔습니다.”

“그런 얘기 전혀 들은 바 없어. 어디 감히 불법 기업이 산자부에 와서 기웃거리나?”

더 이상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간사 기자가 몇몇 기자들에게 말만 전하고 자신은 빠져버렸으니, 확인할 수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는 마당에 되돌아 내려올 수 밖에 없었다. 건물 1층 출입구 길 건너편에서 망연자실 담배만 연신 피워댔다. 법정 재판도 곧 열리게 될 참이었는데, 벌써부터 ‘불법집단, 범죄자’ 취급을 당하는 신세가 서글펐다. 괜시리 눈에 눈물이 고여서 하늘을 보면서 담배를 피웠다. 하지만 그냥 돌아갈 수는 없었기에 기자실로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계단을 올라와서는 행여 아까 그 기자를 만날까 싶어 두리번거렸다. 그때였다. 화장실을 막 다녀오던 참이었는지 역시 연배가 있어 보이는 다른 기자가 말을 걸어왔다.

“혹시 세녹스 때문에 온 사람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뭡니까? 아까 온다 해서 한참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왜 이제서야 오는 겁니까?”

원래 만나기로 했던 시각은 11시였다. 자초지종을 얘기했다. ‘일찍 왔는데, 어느 분인지 모르지만 호통을 치며 못 들어가게 해서 쫓겨났다가 다시 올라왔다’는 얘기를 전했다.

“허, 사람들 참, 기자는 듣는 사람들인데, 들으려 하지를 않으면 어떻게 해. 여기 잠시만 있어요. 점심 같이 할 기자들이 있으면 좀 일찍 밥 먹으러 갑시다. 가서 들으면 되니까.”

“감사합니다. 그러지 않아도 예약한 식당에서 승합차 보낼 시각이 되어 갑니다.”

다행이 그 기자는 기자실에 있던 다섯 명을 데리고 나왔다. 정부청사 맞은편 식당에 자리를 잡고 자료를 보여주며 설명을 했다. 여섯 명의 기자들을 대상으로 설명하고 대답하는 통에 식사는 몇 젓가락 뜨지도 못했다. 그날처럼 천당과 지옥을 오간 날도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로 인해서 세녹스와 관련된 본격적인 여론전이 시작될 수 있었다.

 

때로는 무모한 도전이 결실을 맺는다

당시 세녹스와 관련해 언론이 잘못 이해하고 있는 부분이 많았다. 작은 회사가 아무리 이야기해도 정부부처와 대기업에서 이야기 하는 것만큼 반향을 불러오기가 힘들었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 없었다. 별다른 이벤트나 이슈도 없는 상황에서 여론에 호소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항상 고민했다. 그러다 문득 사설이나 칼럼을 통해 조그만 의견이라도 낼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 내부에는 의논할 만한 사람이 있지도 않았다. 그때는 커뮤니케이션 경험이 길지 않았기에 그런 무모함을 감행 했는지도 모른다.

무모한 계획은 ‘전 매체 논설위원 방문’이었다. 무작정 만나 세녹스의 입장을 전달하려 했다. 논설위원은 글을 쓰는 사람 중에서도 최고의 연륜을 가진 필진이다. 자료준비부터 만전을 기했다. 몇 사람을 만나게 될지도 몰라서 여유 있게 준비하고 보니 쇼핑백 4개 분량이었다. 후배와 함께 감행했다. 일이라고 해봐야 무거운 자료 나눠 들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각 매체 논설위원실을 방문해 쫓겨나는 것이었다. 지금이라면 달리 대처하겠지만 당시에는 아는 기자들도 몇 안되고 논설위원실이 어디 있는지도 몰랐다.

세종로 양 옆으로 늘어서 있는 대형 일간지들 위주로 오전 루트를 짰다. 대중교통으로 이동 해야 했기에 동선을 잘 짜서 한걸음이라도 줄여야 했다. 방문 약속이 되어 있지도 않았기에 매번 안내 데스크를 통해 묻고 다녔다. 어떤 매체는 안내데스크에서 차단됐다. 문전박대 당해도 안타까워할 시간조차 없었다. 양손에 든 자료들 때문에 얼굴과 목에 흘러내리는 땀을 훔칠 여유도 없었다.

대여섯 군데 언론사에서 논설위원 미팅이 가능했다. 자료를 펼쳐놓고 짧지만 최대한 임팩트 있게 설명을 했다. 반응들은 한결같이 시큰둥했다. 밑져봐야 본전이었다. 어차피 큰 기대는 하지 않았으니까. 말을 듣는 그 한 사람이라도 전파하고 이해시키면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들은 오피니언 리더이기 때문이다. 몇 사람이 진지하게 들어주고 안타까움을 표하기도 했는데 사무실을 나설 때 가슴 한쪽이 벅차 오르기도 했다.

어느 구름에 비가 들었는지 모르는 법이다. 반응이 시큰둥하다고 해서 대충 설명할 수 없었고, 시간이 없다고 해서 자료만 줄 수도 없었다. 종합일간지와 경제일간지 스무 군데 정도를 돌고 나니 시간은 어느새 신문 마감 시간을 지나고 있었고 발이 부르터서 더 걸을 수도 없었다. 따로 떨어져 있는 두어 군데 빼고 알고 있는 언론사는 죄다 돈 셈이었다. 그제서야 하루 종일 있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관심 보인 곳도 있으니, 신문에 한 줄도 반영되지 않더라도 실망하지 말자. 스무 명 정도의 오피니언 리더에게 내용이라도 전달한 것만으로도 적지 않은 소득이다.”

스스로에게 위로의 말을 되뇌었다. 처음에는 ‘열심히 하면 그래도 관심을 보이는 사람도 있겠지’하는 막연한  기대에서 시작했지만 만날수록 기대는 꺾였다. 마지막 신문사를 방문하고 나왔을 때는 ‘아니구나' 하는 생각뿐이었다.

다음날, 여느 날과 다름없이 출근해 일을 하는데, 갑자기 부사장이 다가와서 한 마디 툭 던졌다.

“야, 너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닌 거야?”

또 무슨 일이 벌어졌나 싶어 철렁했다. 그런데 부사장의 음성엔 웃음기가 섞여 있었다.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

“무슨 재주를 부리고 다녔길래 일간지에서 우리 회사 얘기를 사설로 다 써 주냐? 이런 일도 있네.”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속에서 희열이 밀려왔다. ‘발 바닥이 부르트도록 뛰어 다니면서 목이 메이게 설명 했는데, 그래도 한 군데에서는 내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줬구나’하는 심정이었다.

 

거절을 쌓아라, 더 좋은 명분이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뉴스거리가 있는 경우에는 걱정 없겠지만, 별다른 이슈가 없을 때도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 그렇다고 되지도 않을 것을 억지로 밀어 넣는다고 해서 기사가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럴 때는 찾아야 한다. 그마저도 없을 땐 발품을 파는 것이 낫다. 수많은 거절의 강과 계곡을 넘어서 말이다.

한번에 성사되는 경우도 있지만, 여러 기자를 만나면서 거절이 반복되면 아이디어도 깍이고 다듬어진다. 거절과 지적을 통해 보완해 나가면 때로는 매력덩이로 발전한다. 처음에 방향성도 없이 막연한 바람으로 운을 뗐다면, 거절을 거치면서 다듬어진 이야기가 탄탄하게 구성된다. 그렇게 제대로 된 기획이 탄생하게 될 수도 있다.

가끔 거절이 승낙보다 더 나을 때가 있다. 절대 만나주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도 많다. 그들이 원하는 뭔가를 손 안에 쥐고 있지 못해서다. 무시되거나 거절 당하는 경우, 보완해서 또 부딪히다 보면 더 나은 결과가 나온다. 20년간 위기 상황에서 살 얼음판을 걸으면서 기자들이 항상 만남을 달가워한 것은 아니었다. 근무 했던 곳이 규모가 작기도 했고, 초기엔 경험도 부족해서 서툴렀다. 특히 공격적이거나 깐깐한 스타일의 기자들을 대할 때면 난감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그럴 때 포기 하지 않으면 된다. 사실은 거절 당한 사람보다 거절한 사람이 더 미안한 법이다. 그렇게 몇 차례 반복된 거절은 그 자체로 커뮤니케이션의 훌륭한 명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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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상대가 오해할 수도 있다. 그래도 너무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2. 어느 구름에 비가 들었는지 알 수 없다. 늘 최선이 정답이다.  

3. 거절에 앞에 주저앉지 말라. 그게 나중에 더 큰 명분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