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프린터는 레이저 프린터를 비롯하여 도트, 열전사, 잉크젯 프린터 등 여러 방식이 존재한다. 그 중 레이저 프린터는 토너의 보관 안정성 및 높은 해상도 등의 장점으로 최근 사용이 확대되고 있다.

그런데 레이저 프린터 제품시장을 들여다보면 특이한 점이 있는데 바로 캐논, 제록스 등 몇 개 기업이 전체 시장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레이저 프린터 제품시장에 신규 진입이 어렵기 때문인데 진입에 장애가 되는 요인으로 기술적 복잡성 등 여러 가지 있을 수 있지만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는 특허 장벽이다.

 

실제로 프린터 제조사 캐논은 과거 재생카트리지 관련 특허분쟁에서 승소하였고 지난 2014년에는 감광드럼을 생산하는 국내기업에 대하여 제기한 침해금지 및 손해배상 청구에서도 최종 승소한 바가 있다. 이러한 특허 장벽은 오랜 기간 공들여 쌓은 것이므로 빈틈을 찾기 어렵다.

손자병법의 허실편(虛實篇)의 내용은 싸움을 할 때 상대방의 실(實)한 곳은 피하되 허(虛)한 곳을 치는 것(兵之形 避實而擊虛)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전쟁터에 먼저 가서 적을 기다리는 자는 편하고 나중에야 도착해서 급하게 싸워야하는 자는 피곤하다고 했다.

(凡先處戰地 而待敵者佚 後處戰地 而趨戰者勞) 전쟁을 위한 군의 배치를 형(形)이라고 하는데 형(形)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물처럼(夫兵形象水) 지형에 따라 흐름을 바꾸어야 하며(水因地而制流) 이러한 형(形)의 극치는 무형이라고 하였다.(形兵之極 至於無形) 즉 군인들이 위장을 하고 매복하듯이 나의 상태는 상대방에게 보여주지 않고 상대방의 상태는 드러나게 한다면 싸울 때마다 상대방을 제압하여 상승(常勝)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이전 칼럼 군형편(軍形篇)에서 언급한 내용들과 관련지어 생각할 필요가 있다. 특허전략에서 형(形)이란 특허 포트폴리오로서 특허자산들의 적절한 조합과 배치를 의미한다고 하였는데 허실편(虛實篇)에서는 그러한 형(形)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물처럼 바뀔 수 있으며 그것의 극치는 무형이라고 한다.

특허 관점에서 해석하면 특허 포트폴리오는 한번 만들면 그만인 것이 아니고 시장 경쟁상황에 따라 물처럼 지속적으로 적응시킬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은 넣는 그릇의 형상에 따라 자신의 형태를 적응시킨다. 기업이 처한 경쟁 상황은 항상 고정된 것이 아니다. 특허 포트폴리오는 특정 시점의 상황에 적합하도록 편성하는 것인데 경쟁 상황이 변했다면 그에 맞춰서 변형시켜야 한다.

그래야만 특허 포트폴리오가 실(實)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고 허(虛)한 부분을 최소화할 수 있다.

특허 포트폴리오를 상황 변화에 맞추어 항상 신선한 상태로 유지하는 것은 지속적인 출원이 필요하여 비용이 드는 일이다. 출원비용과 더불어 등록특허가 많아지면서 등록유지 비용도 만만치 않을 수 있다. 특허권은 등록시점부터 출원후 20년이 되는 날까지 존속하는데 특허 등록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연차등록료를 매년 납부하여야 한다.

연차등록료는 정액제가 아니라 연차가 오래될수록 할증이 되어 부담이 가중된다. 예를 들어 특허권의 경우 1~3년분 연차등록료의 기본료가 45,000원이지만 중소기업은 70% 감면혜택이 있어서 13,500원만 내면된다. 하지만 10~12년분 기본료는 72만원으로 껑충 뛰고 청구항마다 가산료도 부가되므로 등록유지 비용이 부담스러울 수 있다. 특허권이 자산으로서 가치를 가지려면 특허권이 어떤 형태로든 기업 가치에 유리한 영향을 주고 있거나 줄 것으로 기대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 해당 특허권은 자산가치가 없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기술의 변화가 빠른 경우 특허출원 당시에 비해 기술적 가치가 급격히 작아지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따라서 통상 등록후 10년 정도가 되면 해당 특허권의 사업관련성을 검토하여 자산으로서의 가치가 없어졌다면 등록유지를 포기하거나 매각하는 등 처리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비용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다.

한편 중소기업 CEO님들이 연차등록료가 전번에 비해 크게 올라 부담스러운데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제도가 없는지 문의해 온다. 연차등록료가 10년분 이상이면 중소기업 감면혜택이 없기 때문에 금액을 줄일 수 없다.

다만 해당 특허가 10년 전에는 최신이었지만 지금은 낙후된 기술이 되었다거나 사업과 관련성이 없어졌다면 예산을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해당 특허권의 유지를 과감하게 포기하고 작은 기술이라도 사업과 관련한 최신의 트렌드를 반영한 특허를 새롭게 출원하는 것을 권해 드린다. 이렇게 하면 적정한 예산 범위 내에서 노후 특허를 덜어내는 대신 새로운 특허를 채워 넣을 수 있어서 변화된 경쟁 상황에 적합한 특허 포트폴리오를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

어떤 제품시장을 선점하고 있는 기업의 특허 포트폴리오가 지속적으로 새롭게 바뀌고 있다면 신규 진입하려는 기업은 특허침해 위험을 피할 수 있는 빈틈을 찾기가 어려울 수 있다. 서두에 언급한 레이저 프린터 제품시장은 빈틈을 찾기가 어려운 시장 중 하나이다. 관련 특허를 검색해 보면 프린터를 구성하는 세세한 부분에 대한 기술도 지속적으로 특허출원하여 보호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레이저 프린터가 발명되고 40여년이 지났지만 개발 초기의 시장 참여자들이 특허 포트폴리오를 지속적으로 새롭게 만든 결과 이들은 지금도 여전히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이처럼 특허 장벽에 허(虛)한 빈틈이 보이지 않는다면 신규 진입을 시도하는 기업은 침해 위험에 맞대응할 수 있을 정도의 신기술 특허권과 같은 뭔가 실(實)한 승부수를 가지고 있지 못하는 한 고전을 면치 못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