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조류독감(AI)과 구제역에 취약한 것은 축산 영농인의 역학 지식 부족과 가축 사육 밀도의 지나친 과밀, 살처분 보상구조의 비합리성, 그리고 은폐문화 때문이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그야말로 총체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진단이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가 최근 ‘AI 등 가축질병 대응을 위한 OECD 정책권고’라는 제목의 보고서 내놨다. 구제역, 조류독감 등으로 골머리를 썩는 한국 농축산계에 국제기구가 내놓은 제언이다. ‘한국 가축질병 관리 상 농업인 인센티브’라는 원제를 갖고 있는 이 보고서는 한국의 축산업 구조를 분석하고, 질병 관리 과정에서 농가에 제공되는 각종 경제적 보상/불이익과 관련된 내용을 되짚었다.

한국 축산업은 국내 농업 생산액의 23%(1995년)에서 45%(2015년)까지 성장했지만, 여전히 ‘집약적 축산화’ 문제가 심각하다. 작은 공간 안에 가축을 몰아서 사육하는 풍토가 전염병 발병 시 확산이 용이한 구조를 만들어 내는 셈이다. OECD는 ‘농지 부족으로 한국의 가축사육 밀도가 지나치게 증가했다’고 언급하며 농가 당 두 수(한 농가 당 사육하는 가축 수)가 닭의 경우 1995년 928마리에서 2015년 5319 마리 수준까지 증가했지만 열악한 양계 풍토는 여전함을 제시했다.

OECD는 또 ‘축산 영농인들이 역학 지식이 부족하고, 전염병 발병 시 은폐하는 문화도 AI, 구제역 등에 취약한 구조를 만들어 낸다’고 지적했다.

가장 큰 원인은 살처분으로 인한 보상 구조 문제다. 예를 들어 특정 농장에 전염병이 발병하여 소개(疏開) 차원에서 가축들을 죽일 경우, 농정 당국에서는 살처분 당일 기준 시장 가격으로 보상해 왔다. 그러나 농장에 잠재되어 있던 위험 수준(과거 발병이력 등), 해당 지역의 발병률, 조기 발병 보고 여부 등에 따라 보상률이 달라졌다.

▲ AI, 메르스 등 전염병 확산 동향 분석에 유용하다고 알려진 '커뮤니티 매핑'(출처 : 커뮤니티매핑 센터)

 

또 질병 유형에 따라 구제역, 조류독감, 브루셀라병은 정상 살처분 보상가의 20%까지 삭감되며, 기존 발생 기록이 해당 지역이나 농가에 있을 경우 보상률의 20%-80%까지 삭감되는 등 복잡한 보상 구조의 문제가 있었다 다만 국가 보상이 불확실성을 갖고 있는 반면, 가축 질병 보험은 매우 폭넓게 보조가 이루어져 16종의 가축에 대해 보험료의 70%-80%까지 보조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OECD는 제시하였다.

최근 들어 동물 전염병의 사전 대비와 관련해 각종 규제와 금전적 처벌이 강화되고 있지만, 몇 가지 보완이 필요한 사항들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우선 살처분 보상 삭감 원칙을 단순화하고 농민들이 더 명확하게 사전 예방과 관련된 인식을 할 필요가 제기되고 있다. 또 가축보험의 경우 보험료 대비 보험청구금 비율(2016년 기준 98% 가량)이 과도하게 증가하는 상황을 직시하고, 농민들의 위험 불감증과 관련된 대책도 시급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축산 위기’로까지 번질 수 있는 동물 전염병 방역을 위해서는 ‘대책’보다 ‘문제’가 더욱 빠르게 진화하고 있는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빅데이터 시스템 구축 및 방역 위기 대응을 위한 공보 기반 구축도 절실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OECD는 농림축산식품부가 기본 방역과 동물 위생 서비스를 책임지고 중앙가축방역심의회, 농림축산검역본부 등의 기관을 두기도 했지만, 여전히 위기 대응에는 취약하다고 언급하였고, ‘축산 농가 의무등록제 및 국가동물방역통합시스템 정비 등이 시급하다’고 보고서에서 주장했다. 정보시스템 분야 전문가인 곽규태 순천향대 글로벌경영대학 교수는 ‘축산 차량 GPS의 확보 및 의무등록제, 축사용 비콘(beacon) 기술 등의 개발을 통해 동물의 상태를 보다 효과적으로 측정하고 위험이 확산될 가능성을 미리 데이터로 시각화하는 작업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지역민들이 SNS를 활용할 수 있으면 누구나 참여 가능한 '커뮤니티 맵핑'(지역민들이나 네티즌들이 특정 지역을 지나다가 발견한 각종 사건, 사고 등을 시각화하여 표기할 수 있도록 정보를 공유하는 시스템)을 통한 AI 위험 방역 지도 작성도 국가적으로 장려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농업계 관계자는 "트위터, 페이스북 등에 익숙한 젊은 농부들이 각종 전염병과 관련해서 시민 참여형 플랫폼에 자발적으로 정보를 올림으로써 위험 관련 정보를 공유할 수 있고, 경주 지진, 메르스 발생 때 관련 피해 커뮤니티 매핑을 주도했던 임완수 박사(미해리 의과대 교수)의 시스템 등을 참고할 수도 있다"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