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 50장 사용하며 경쟁사 장단점 실전 체험”

“부자들이라고 해서 늘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고객의 성공을 도우라는 톰피터스의 말을 늘 기억하고 있습니다.”
신규영 신한카드 지점장

나폴레옹은 워털루에서 와인을 잊었다. 전투에 나서기 전 늘 음용하던 ‘르샹베르탱’은 승리의 부적이었다. 그는 말년에 와인을 감상할 여유를 잃었다. 한잔의 와인은 상대방과 거리를 지워버리는 묘약이다. 보르도의 향기에 취하고, 촌철살인의 유머에 웃다 보면 서먹함은 사라진다.

와인에는 스토리가 있다. 그리고 두근거림이 있다. ‘따악 딱~ ’ 신규영(50) 신한카드 분당 지점장은 가운데 손가락을 튕기며 소리를 낸다. 상대방의 시선을 묶어두려는 계산된 몸짓이다. 신 지점장은 수년 전 종로 YMCA에서 레크리에이션 수업을 받았다. 그는 유머감각으로 상대방을 무장해제하는 재담꾼이다.

현재 신 지점장이 참석하는 와인 동호회만 10여개. 분당 지역의 CEO 모임인 두목회, 이화회, 그리고 목마회 등에서 활동하며 부자고객들의 마음을 공략하고 있다. 신한카드는 회원 수만 1000만명이 넘는 국내 최대의 카드사. 국내 카드시장의 ‘현대자동차’ 격이다.

하지만 수익성이 더 좋은 프리미엄 시장으로 활동영역을 넓혀 ‘성장 잠재력’과 더불어 ‘수익성’을 높이는 과제를 안고 있다. 카드업계의 ‘폭스바겐’이나 ‘포르쉐’를 지향한다. 신 지점장은 프리미엄 시장 공략의 첨병이다. 와인은 그와 부자고객들의 거리감을 지워버리는 미약(媚藥)이기도 하다.

그가 와인에 눈을 뜬 것은 조흥은행 시절이다. 직장상사가 와인 카드를 개발해 출시했는데, 소비자들의 반응이 영 시원치 않아 부심하던 신 지점장은 당시 청담동에 있는 와인바를 방문했다.

“가맹점 가입을 권유했더니 회원수를 묻더군요. 회원 수가 1300명이라는 답변에 싸늘한 반응을 보였어요. 소믈리에 학원을 그때부터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오기가 발동한 그는 매일 7시에 선릉역 주변에 있는 학원에 가서 3시간 동안 꼬박 강의를 들었다. 와인의 역사, 종류, 에티켓 등 기초적인 지식들은 모두 당시에 배웠다.

와인에 스토리를 입혀 부자고객들을 파고드는 노하우는 신 지점장의 전매특허이다. 신한카드에서 승승장구하며 지점장 직위까지 오른 것도 당시 몸에 익힌 노하우가 한몫을 했다. 스타벅스가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것도 고가의 커피를 합리화할 스토리의 부재 탓이라는 게 잭 트라우트(Jack Trout)의 지적이다.

와인 한잔으로 마음의 벽 허물어
“취향이 매우 독특한 일본인 바이어 때문에 고민을 하는 와인모임 멤버가 있었습니다.

늘 뻣뻣한 데다, 고가의 와인만 찾아 이 CEO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 겁니다.” 그는 불만을 토로하던 CEO의 말을 잊지 않고 있다 조언을 해주었다. “빈티지(연도)가 있는 ‘돈 페리뇽’을 접대 하면 만사형통”이라는 내용이었다.

와인을 선호하는 일본인들은 연도가 표기된 ‘돈 페리뇽’에 흔들린다. 그리고 ‘로제’는 술자리의 화룡점정(畵龍點睛)이다. 그는 당시를 떠올렸다.

부자들이라고 해서 늘 행복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경영학자 톰 피터스는 고객의 성공을 도우라는 조언을 했다. 와인 주문법도 늘 VVIP들의 관심을 끄는 주제이다. 곁눈질로 메뉴를 보고 주문을 했다 계산서를 보고 당황하지 말고 처음부터 웨이터에게 추천을 받으라는 것이 그의 조언이다.

신 지점장이 구축한 노하우는 금융지주사 부자고객 공략의 밑거름이 되고 있다. 신한은행이 PB센터에 30평 짜리 와인바를 연 것도 이러한 성과를 지켜본 뒤이다. 와인바 가맹점에서 퇴짜를 맞은 뒤 딴 소믈리에 자격증은 그에게 행운을 가져다주었다. 조흥은행 시절 와인 가맹점 확보 문제는 어떻게 풀어냈을까.

그의 회고담이다. “자, 여기 ‘샤토 깔롱 세귀르’ 30년산 하나 주세요.” 고가의 와인을 주문한 그는 프랑스제 ‘샤또 라기욜(병따개)’을 꺼냈다.

그리고 솜씨 좋게 병을 딴 뒤 주인을 불러 와인 한잔을 따라주며 와인 강의를 했다. 신 지점장은 이때를 전후해 30여개 와인바를 가맹점으로 확보하는 뚝심을 발휘한다.
상대방의 특성을 정확히 간파한 뒤 대응을 해야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동양식으로 ‘지피지기면 백전불퇴’, 그리고 서양식으로는 ‘스왓(SWOT)’의 요체이기도 하다.

“프리미엄 카드 출시를 앞두고 유명 명품관들을 방문해 제품포장 박스를 요청했어요. 여직원들에게도 보석상자를 가져다 달라고 했지요”
이상후 신한카드 상품 R&D센터 대리

카드 택시 블루오션 될 수 있어
이상후 신한카드 R&D센터 대리는 ‘300만의 사나이’다. 그가 개발한 카드를 보유한 소비자들의 숫자를 빗댄 별명이다. 그는 카드 전쟁의 최전선에서 활동하는 ‘백인대장’격이다.

그의 하루일과는 빡빡하다. 보고서 작성에 가맹점 개척, 그리고 상품 개발업무에 매여 있다 보면 말 그대로 녹초가 되기 십상이다. 카드사에서 준비하는 문화공연 기획도 그의 몫이다. 지금까지 200여건의 공연을 기획했다.

그는 고객이 만들어내는 방대한 데이터에서 길을 찾는다. LG카드에서 첫 직장 생활을 시작했으며, 신한카드로 적이 바뀐 뒤에도 줄곧 상품개발팀에서 근무하며 카드를 개발한 그는 국내 카드업계가 마케팅에 활용해 온 ‘시장분할(segmentation)’의 산증인이기도 하다.

그가 개발한 ‘4050카드’는 초·중등학교에 다니는 자녀를 둔 40~50대를 겨냥했다. 학원들을 대거 가맹점으로 확보한 것이 주효했다. 4050이라는 브랜드 네이밍이 처음에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한다. 스스로 나이보다 젊다고 생각하는 카드 사용자들이 보유를 꺼릴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디자인팀과 협의를 거쳐 0자 두 개를 하나로 이어 붙였어요. 4050이 세대를 뜻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게 하려는 포석이었습니다.” 시장조사, 디자인, 카드개발, 법률 검토 등으로 바쁜 그가 요즘 주목하는 것은 프리미엄 카드 ‘더 베스트 시그니처’이다.

“카드는 보통 출시된 지 2년 정도가 지나면 판매액이 줄어들면서 수명을 다하게 마련입니다. 연회비 20만원 짜리 이 카드가 다시 인기를 얻으면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이 카드가 출시된 것은 지난 2006년. 카드사의 전략적 결단이었다. 1000만명이 넘는 회원은 강력한 성장의 기반이었다. 하지만 이 회사의 과감한 도전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작용하기도 했다. 국내 통신시장의 절대강자인 SK텔레콤이 처한 상황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소비자 한 명이 카드를 평균 3~4장 보유하고 있을 정도로 시장이 포화된 상태여서 프리미엄 마켓에 거점을 확보하는 일이 시급한 상황이었다. ‘더 베스트’출시는 시장 상황을 타개할 첫 단추였다.

“프리미엄 카드를 출시한 경험이 부족해 다들 시행착오를 많이 거쳐야 했습니다.” 그는 당시 국내 유명 명품관들을 방문해 제품 포장 박스를 요청했으며, 회사 여직원들에게 보석 상자를 가져다달라는 요구도 했다고 회고한다.

이상후 대리는 50여장의 카드를 늘 몸에 지니고 다닌다. 경쟁사들이 보내는 청구서, 소식지 등을 꼼꼼히 살펴보며 경쟁 카드사의 실력을 가늠한다고. 청구서를 통해 이른바 ‘SWOT’분석을 한다.

요즘 그는 신용카드기를 장착한 카드 택시를 주시하고 있다. 카드 택시를 뜻하는 표식을 단 택시들이 가파르게 늘고 있는 것이 고무적이다.

“(저는) 카드는 양탄자에 비유할 수 있다고 봅니다. 한 장의 카드 속에 좋은 기억과 나쁜 기억이 모두 녹아 있습니다. 카드는 추억으로 가는 급행열차 입니다.” 8년차 카드 개발자의 ‘카드론’이다.

박영환 기자 blade@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