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에어백 제조사 다카타가 대규모 리콜 후폭풍을 이기지 못하고 파산 위기에 내몰렸다. 글로벌 3대 에어백 생산 업체이자 전세계 자동차의 20%에 에어백을 공급하던 다카타가 순식간에 몰락하는 장면을 목격한 자동차 업계는 적잖은 충격에 휩싸인 분위기다.

국내 기업들 역시 이 같은 리콜 사태의 전말을 면밀히 파악해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최근 리콜 관련 각종 구설수에 오른 현대·기아차 입장에서는 상황이 더욱 긴박하다.

다카타의 ‘리콜 파산’이 남 얘기가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日 다카타, 결함은 부채를 남기고

15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과 블룸버그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다카타는 계속되는 리콜 비용의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파산을 신청하기로 결정했다. 다카타의 파산 준비는 막바지 단계에 접어들었으며, 이르면 다음주께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전세계 에어백 시장은 일본 다카타, 스웨덴 오토리브, 독일 ZF 등 3개사가 각각 20% 이상씩 점유율을 차지, 과점 양상을 띄고 있다. 1933년 설립된 다카타는 리콜 이슈가 발생하기 전까지 40억달러(약 4조5000억원) 내외의 분기 매출액을 올렸다. 세계 20개국 이상에 생산 공장을 두고, 4만8000여명의 근로자를 고용했다.

달리는 다카타사의 발목을 잡은 것은 대규모 리콜이었다. 2015년 에어백에서 치명적인 결함이 발견된 것이다. 금속 파편이 튀는 사고가 잇따랐으며, 원인은 폭발 위험 물질에 대해 후속조치를 매끄럽게 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부주의가 대형 참사를 부른 셈이다.

이로 인해 전세계적으로 리콜이 진행됐고, 정확한 규모는 현재까지도 파악되지 않고 있다. 확인된 리콜 대상 자동차는 이미 1억대를 넘겼다. 제품 결함으로 확인된 사망자만 현재까지 16명이고 부상자는 180여명에 달한다.

에어백 분야는 2015년 기준 다카타 매출액의 38%를 차지했다. 이 밖에 이 회사는 안전벨트(32%), 스티어링 휠(16%) 등도 주력 사업이다.

리콜 사태는 다카타 주가에 직격탄을 날렸다. 사태가 불거지기 전 1300엔(약 1만3000원) 대에 거래되던 다카타 주가는 한때 300엔대(약 3000원)까지 떨어졌다. 15일에는 484엔(약 5000원)에 장을 마감했으며, 16일 도쿄증권거래소는 파산보호 신청 소식에 대한 확인이 필요하다며 이 회사의 주식 거래를 정지했다.

▲ 자료사진. 기사 내용과 무관 / 출처 = FCA

다카타가 대규모 리콜 사태로 인해 떠안게 된 부채는 약 1조엔(약 10조2000억원) 수준이다. 리콜에 따른 보상비용만 1조3000억엔(약 13조2000억원)이 넘어갈 것으로 추정된다.

다카타는 파산 신청 이후 에어백·안전벨트 등 제품을 계속 생산할 방침이다. 중국 닝보전자의 자회사인 키세이프티시스템(KSS)이 다카타의 경영권을 인수하는 방안을 논의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인수 금액은 1800억엔(약 1조8000억원) 정도로 거론된다.

‘리콜 파산’ 다카타만의 사례 아니다

리콜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파산하는 사례는 세계 최대 에어백 제조 업체인 다카타만의 사례는 아니다. 자금 유동성이 확보되지 않은 초기 사업 확장 과정에서 많은 회사들이 무너져내린 전례가 있다. 수만가지 부품이 들어가고, 대부분 안전과 직결된 경우가 많으며, 구조가 복잡한 자동차 산업의 특성이 반영된 결과다.

대표적인 예로 미국 전기차 시장의 선구자였던 ‘피스커 오토모티브’가 있다. 테슬라 이전에 시장을 주름잡던 회사로 ‘카르마’ 등 스포츠카 형태의 전기차로 시장에서 호응을 얻었던 회사다. 2011년께 총자본 규모가 5억달러(약 5700억원)를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는데, 자동차 안전과 관련 리콜이 수차례 겹치며 후속 모델 생산에 자금을 투입하지 못해 파산했다.

테슬라가 모델 S를 내놓은 시점은 2012년이다. 카르마에 대한 리콜 악재가 없었다면 현재의 테슬라 자리에 피스커 오토모티브가 있었을 수도 있는 셈이다. 이 회사는 현재 중국 자본에 인수된 상태다.

글로벌 최대 브랜드들도 대규모 리콜로 휘청인 경험이 있다. 도요타는 2010년 ‘가속페달 매트 끼임’ 등 안전 결함에 안일한 대처를 하다 1000만대 넘는 자동차를 리콜했다. 당시 대량 리콜로 도요타 주가는 순식간에 20% 넘게 빠지며 경영 위기에 직면했으며 ‘잔고장 없는차’의 대명사로 불리던 브랜드 이미지에 심각한 훼손을 입었다.

제너럴모터스(GM) 역시 점화장치 결함 문제를 2001년부터 알고 있었지만 이를 은폐하려다 2014년 적발돼 수백만대의 자동차를 리콜했다. 미국 시장에서는 GM의 ‘늑장 리콜’로 인해 회사가 2009년 겪었던 파산 위기가 재연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었다.

폭스바겐은 ‘디젤게이트’의 후폭풍을 아직까지 감당하고 있다. 1000만대 넘는 자동차에 배출가스 저감장치 소프트웨어를 조작, 이에 대한 리콜을 아직 진행 중이다. 한국에서는 최근 들어 티구안 등 일부 차종에 대한 리콜이 시작됐다.

자동차 이외 다른 산업군을 살펴볼 경우 ‘리콜 파산’의 사례는 더욱 다양해진다. 미국 최대의 샐러드 군납업체인 AP 밀리터리그룹은 시금치 제품의 균 오염 가능성으로 리콜에 들어가 파산보호 신청을 내야했다. 당시 이 문제로 3명이 죽고 200여명의 환자가 나타났는데, 당초 6100만달러(약 700억원) 수준이던 군납 규모가 3800만달러(약 430억원) 수준으로 반토막 났었다.

미국의 식품업체 PCA(Peanut Corporation of America) 역시 리콜에 대한 악몽이 있다. 땅콩버터 제품에서 살로넬라균이 검출됐는데, 이로 인해 9명이 목숨을 잃고 700명 이상의 환자가 발생한 것이다. PCA는 자발적 리콜을 실시했지만 비용 부담 때문에 재무 상황이 악화돼 한 달만에 파산신청을 해야했다.

결정적 오류 하나가 회사의 존폐를 결정한 셈이다.

자동차 리콜 증가···‘안전 불감증’ 위기

전기·전자회로 등 전장 기술이 발달하며 자동차 부품은 더욱 다양·복잡해지고 있다. 이와 맞물려 크고 작은 리콜 사례들도 매년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국내에서도 매년 100만대 가량의 차량이 리콜 명령을 받고 있다.

국토교통부와 환경부가 올해 들어 리콜 명령을 내린 국산·수입차는 총 398개, 83만5910대에 이른다. 국내 자동차 리콜 규모는 2013년 103만7151대, 2014년 114만4323대, 2015년 105만4318대, 2016년 67만3868대 등으로 사실상 ‘100만대 시대’에 접어들었다.

2013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리콜된 자동차만 474만5570대에 이르는 셈이다. 같은 차종에 대한 중복 리콜 사례를 감안하지 않을 경우 국내 등록된 자동차(2200만여대) 5대 중 1대 가량은 리콜을 경험하게 되는 셈이다.

문제는 자동차 리콜이 계속해서 늘어나면서 운전자와 제작사가 긴장의 끈을 놓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기준 실제 리콜 명령에 응해 자동차를 고친 비율이 70%에 불과했다는 상황도 이 같은 주장과 궤를 같이한다. 대부분 중대한 결함에 의해 실시되는 리콜에 대해 ‘안전불감증’이 생기는 것은 아닌지 걱정해야하는 형국이다.

▲ 자료사진. 현대·기아차 양재동 본사 전경 / 출처 = 현대·기아자동차

국내 대표 자동차 회사인 현대·기아차 역시 이 같은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현대·기아차는 최근 ‘내부고발자’로 인해 촉발된 대량 리콜 사태에 직면해있다. 미국에서 ‘세타2 엔진’ 결함으로 47만대의 자동차를 리콜한 데 이어 지난 4월 국내에서도 같은 엔진이 장착된 차량 17만1348대에 대해 자발적 리콜을 시작했다.

대상 엔진은 ▲세타2 2.4 GDi ▲세타2 2.0 터보 GDi 두 종으로 대부분 현대·기아차의 주력 모델에 장착된다. 현대차 대상 차종은 YF쏘나타와 그랜저 HG 등이고 기아차 대상 차종은 K5, K7, 스포티지 SL 등이다.

여기에 지난 12일 국토부로부터 추가로 5건에 대한 강제리콜 명령을 받았다. 대상 차종은 모하비, 제네시스 BH, 에쿠스, 싼타페 등 12개 차종으로 규모가 총 23만8321대에 달한다.

세타 엔진에 대한 리콜이 일부 차량에 대해 진행되고 있고, 나머지 리콜의 경우 브레이크 진공 호스, 연료 호스, 주차브레이크 스위치 등에 문제가 있어 부품 교환에 큰 무리가 가지 않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이번 리콜 사태는 ‘내부고발자’에 의해 촉발됐다. 내부고발을 통해 현대·기아차가 엔진 등 대부분 부품에 대한 결함을 사전에 알고도 이를 은폐·축소하려 했다는 것이 드러났다. 

문재인 정부에서 국토교통부 장관으로 내정된 김현미  후보자는 현재 현대차 내부고발·리콜 사태와 관련 ‘재조사’ 의지를 천명한 상태다.

▲ 현대·기아차 세타2 엔진 결함 부위. 현대·기아차는 이 결함으로 국내에서 17만1348대의 자동차에 대해 자발적 리콜을 진행 중이다. / 출처 = 국토교통부

도요타의 리콜 은폐 사건 당시 업계에서는 현상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로 ‘갈라파고스(Galapagos) 현상을 꼽았었다. 망망대해에 떠 있는 갈라파고스 섬 처럼 독자적인 기술에 대한 지나친 자부심으로 혁신을 추구하지 않아 경쟁력을 상실한다는 뜻이다.

비용 절감을 위한 현지 생산라인 증축, 부품 현지조달을 통한 품질관리의 한계 등을 드러낸 것도 원인이었다. 현대경제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2008년 도요타의 한 해 생산대수는 855만대 규모인데, 이 중 339만대(약 39.6%)가 해외에서 만들어졌다.

다카타 사태는 세계 굴지의 기업도 품질 결함으로 인한 리콜로 회사의 흥망이 좌우된다는 것을 보여줬다. 리콜 100만대 시대를 맞은 국내 자동차 업계도 이번  다카타 사태를 반면교사(反面敎師)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