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만 원 세대>의 공동저자인 좌파 경제학자 우석훈, 그는 사회를 향한 날선 비판으로 주류 경제학계는 물론 대중들에게도 ‘문제적 경제학자’로 알려져 있다.

기자 출신 사회운동가 박권일과 함께 2007년 여름에 발간한 이 책은 곧 ‘센세이션’이 됐다. 제목만으로도 알 수 있듯, 책은 비정규직으로 최저임금에도 못미치는 임금을 받으며 살아가는 이 땅의 고단한 청춘들을 위한 비평서였다. 제목은 그대로 사회학 용어로 자리잡았고 세간에선 유행어로 통용됐다.

▲ 경제학자 우석훈 박사. 사진=이코노믹리뷰 노연주기자

<88만 원 세대>가 나온지 꼭 10년만인 2017년 여름, 강산이 변한다는 시간 동안 정권도 바뀌었다. 서울 종로구 아라리오뮤지엄인스페이스에서 우석훈 박사를 만났다. 그는 현재 영화사 ‘타이거 픽쳐스’ 자문을 맡고 있는 것 말고는 육아에만 전념한다고 했다. 실제로 그는 얼마 전 육아책도 냈다.

“지난 10년 동안 청년 문제가 사회의 의제로 설정이 됐다는 것은 높이 평가할 만 합니다. 그 책을 쓸 당시엔 진보주의 진영에서도 청년 문제를 공론화하는 것을 싫어했거든요. 그렇지만 해결책은 아직 찾지 못했어요. 지금 정도 수준으로는 결혼이나 출산은 꿈도 꿀 수 없죠.”

88만원 세대는 연애와 결혼과 출산을 포기한 '3포세대'가 되었다가 내집 마련과 인간관계를 포기한 '5포세대', 꿈과 미래를 포기한 '7포세대'로 하나 둘 포기하고 체념하는 것을 배웠다.

"제가 결혼할 때만 해도 지금의 젊은이들에 비해 가진 것이 많았죠. 말하자면 ‘스톡 자산’은 있는데 ‘캐시플로우’가 없던 셈이었는데(웃음), 지금처럼 빠르게 주택시장에서 전세가 줄고 월세가구가 많아지면 젊은 층의 정서적 충격이 클 겁니다. 부모가 도와주지 않으면 출발 자체가 어렵잖아요"

지난 보수정권들에 대한 비판을 빼놓지 않았다. “MB정권 때 4대강 프로젝트하면서 청년들의 미래를  강바닥에 쳐박은 거죠. 4대강 사업은 지난 2008년 당시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한 대응책이었던 국가재정사업이었지만 청년 일자리에는 도움이 안됐습니다. 그 자금을 인건비나 연구·훈련에 썼더라면 달라졌을 겁니다.”

"제 말은 ‘청년은 주고 노인은 주지 말자’ 이런 게 아니라 '필요한 사람 다 주는 데 청년에 가중치 줘라' 하는 것이에요. 그리고 다만 부동산에 들어가 있는 투자금은 줄여야 한다는 게 제 생각이고요."

우 박사가 본 지난 9년의 정부는 청년의 것은 빼앗았지만 부자에게는 관대했다. 인정요율 조정 등으로 소득세도 줄었고, 부동산을 여러 채 가지고 임대하는 사람들을 사업자로 등록하게 해 줘 취득세, 종합부동산세, 재산세, 양도소득세 등의 세제 혜택을 줬다.

“선진국이 되면 마땅히 올라야 하는 것들, 그러니까 보유세 같은 것은 아직도 대단히 낮은 수준입니다. 전체 부동산자산 18억원까지는 종합부동산세 부과대상에서 빠지는데 거기에만 해당되지 않으면 부동산세가 자동차 세금보다 싼 셈이죠."

▲ 경제학자 우석훈 박사. 사진=이코노믹리뷰 노연주기자

그는 10년에 걸쳐서 미국 수준의 1% 보유세를 내도록 관련 세제를 설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경제학자로서는 월세 같은 것을 분리 과세하지 말고 종합과세로 해서, 초호화 주택 외에는 일괄적으로 1%대로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과세 대상에 대해서도 관련 당국이 빠져나가는 구멍 없이 정상화시키면서 공평하게 과세한다면 국민의 이해도 따를 것이라는 설명이다. 

"현재 보유세 인상 수준에 대해 0.5% 수준으로 구간별로 다르게 매기겠다는 말이 나오는데 1%대가 적절하다고 생각해요. 국민 절반이 집이 없으니 집을 가진 사람이 그 정도는 세금을 내어야 임대주택 등을 짓죠. 사실 미국보다 유럽은 더 냅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당초 예상과 달리 주택시장이 과열되고 있는데 대해 "서울과 수도권을 빼고 지방을 보면 상황이 다릅니다. 자주 부산과 광주 시장을 비교하는데 이들 시장이 같이 오르는 일은 없었어요. 서로가 대체 투자처인 '풍선효과'를 보여주는 거죠. 지방 시장이 불안정할 때는 서울이나 수도권 시장 등 하락 가능성이 낮은 곳으로 투자가 몰리는 것이고요."

실제로 서울 강남권 등의 열기와는 달리 지방에서는 미분양 물량이 5년 만에 최대규모로 쌓이는 등 양극화가 심각하다.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는 당장에라도 실효성 있는 부동산 정책을 내놓으라는 요구가 커졌다. 

그런 점에서 과거 참여 정부시절 사회정책비서관과 환경부 차관 등을 지내면서 종합부동산세를 실질적으로 고안한 김수현 전 서울연구원장이 문재인 정부에서 사회수석비서관으로 임명된 것도 눈길을 끈다. 

"부동산 정책을 논의하는 사람들은 크게 부동산업계, 생태경제학 등 국토관련 연구자, 빈민문제 운동가 등으로 나눠서 볼 수도 있어요. 김 수석은 빈민 활동가 출신으로 과거 참여정부 시절에도 공공택지 공급 위주의 부동산 정책을 폈죠. 결과적으로는 투기 세력이 '먹튀'할 수 있는 여건이 돼버렸고, 민주당 내나 과거 참여정부 인사들에겐 부동산 관련 증세로 정권을 잃었다는 트라우마가 있습니다."

우 박사는 정부에 한국 경제의 자생능력을 믿고 개입을 줄일 것을 제언했다. "노무현 정권 5년차에 돌부리에만 걸려도 모두 대통령 탓이다 할 만큼 정부의 힘이 약했지만 2007년 경제성장률은 5.5%였고 달러당 원화환율은 900원대였습니다. 원화가 강세였지만 수출도 잘돼 경상수지도 흑자였고요." 그는 원칙을 공정하게 만들면 국가의 큰 개입 없이도 성장할 만큼 한국 경제가 견조해진 것이라고 부연했다. 

▲ 경제학자 우석훈 박사. 사진=이코노믹리뷰 노연주기자

그는 사회적 경제에 대한 책 ‘사회적 경제는 좌우를 넘는다’를 냈다. 그는 문 정부도 사회적 경제에 대한 관심은 높다고 평가한다. 사회적 경제는 자활기업, 사회적기업, 마을기업, 협동조합 등의 형태로 공유를 기치로 하는 비즈니스다. 

우 박사는 우리의 경우 공무원과 한국전력 등 공기업 고용을 포함한 공공 일자리는 전체의 7.8%, 사회적 경제에서 만들어지는 일자리가 1%대로 나머지 90% 이상을 민간부문에서 고용 창출을 해야 한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대선 당시 공무원을 포함한 공공부문 일자리 81만개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2015년 OECD 보고서에 따르면 OECD 국가들의 전체고용 가운데 정부와 공공 비율의 평균치가 21.3%였다. 스웨덴과 노르웨이와 같은 북유럽 국가의 경우 국민의 25~30%가 사회적 경제를 비롯한 공공부문에서 일자리를 찾았다. 3명 중 1명은 공공에서 안정적인 일자리를 주는 것. 

우 박사는 "이처럼 공공 일자리가 없는 나라에서 20~30%가 비정규직이 되는 건 어쩌면 당연하죠. 공공부문의 일자리는 임금을 낮추면서 수용량을 늘리는 방향으로 가야 하고 사회적 경제의 비중이 늘어나 10%대가 되고 공공부문 일자리가 전체의 20~25%가 된다면 민간기업은 고용에 대한 부담이 줄고 인재 확보를 위해서라도 직원 임금과 처우를 개선할 수 밖에 없어요." 최저 임금과 사회적 경제가 일종의 사회 인프라로 작동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간 세계의 경제 기형도 많이 변했다. 뉴노멀 시대라고 부르는 현재의 경제 상황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저성장 상황이다. “10년 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일들이 일어나고 있죠. 영국이나 프랑스가 유럽연합(EU)를 탈퇴하거나 탈퇴 논의를 한다는 것도 그 당시로서는 말도 안되는 일이었어요."

사회적 경제는 불황기의 산물이다. 사회적 경제가 태동한 유럽에서도 불황으로 인한 실업 문제, 고용 불안, 빈부격차, 주거 문제의 타개책으로 만들어졌다는 설명이다. 1929년 경제 대공황을 겪던 이탈리아와 1945년 전쟁 직후의 일본이 그랬다. "일반적인 인식과는 달리 경기가 좋을 때는 투기를 하고 '버블'을 키우다가 어려울 때 주택조합도 만들고 소비조합도 만들어요. 한국의 경우 일제시대부터 사회적 경제는 있었지만 체계화된 것은 김대중 정부 때 생협에 대한 법을 만들어 제도화한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사회적 경제는 복지 정책과 더불어 눈에 보이지 않는 문화적 자산 형성에도 기여한다. "1960년대 영국 노동당이 실업 수당을 정비하자 '비틀즈'와 '도어즈'가 나타났죠. 현재까지도 '브릿팝'이라 불리는 영국의 대중은악은 높은 음악성과 대중성을 갖추고 전세계에서 사랑받고 있어요. 사회 복지가 문화가 융성하는 기틀이 된 것이에요."

그는 사회적 경제가 제대로 성장하려면 지역 단위의 활동이 활발하게 진행돼야 한다고 말한다. 우 박사는 "이 정권이 성공하려면 지역 중에서도 광주를 신경써야 할 거다. 복지든 경제든 광주가 테스트베드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