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는 어떻게 경제를 바꾸는가> 조권 지음, 흐름출판 펴냄

한국은 경제규모로는 세계 10위권이다. 하지만 회계투명성은 세계 최하위 수준이다(IMD 회계투명성 순위. 2016년). 대기업 분식회계와 그로 인한 부실대출이 야기한 연쇄부도로 IMF 외환위기를 겪고서도 각종 회계 스캔들이 그치지 않는다. 한국 기업의 가치가 유독 저평가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현상은 여기서 비롯되고 있다. 이 책은 한국의 회계 불투명성에 대해 집중 분석하고 있다. 20여년간 회계법인과 금융감독원에서 회계관행과 제도개선 과정을 지켜본 저자가 회계부정을 막을 처방전을 썼다.

그동안 회계투명성을 높이려는 정부 차원의 다양한 시도가 있었다. 회계감사를 강화하려고 회계사의 숫자를 크게 늘렸다. 결과는 달랐다. 회계사의 약 40%가 회계감사를 하지 않고 있다. 덤핑 회계감사 관행으로 회계감사는 보수는 낮고 위험성은 높은 기피업무가 됐다. 회계사 다수가 컨설팅이나 기장업무로 돌아섰다. 4대 회계법인(삼일, 안진, 삼정, 한영) 인력 중 60%가 5년 이하 경력자로 채워졌다. 이렇다 보니 업종별로 다양하고 복잡한 회계감사 실무를 하는 데 필요한 전문성이 확보되기 힘들게 됐다.

기업의 분식회계는 회계법인의 감사인이 적발하고 있는가. 그렇지도 않다. KPMG 설문조사 결과 그 비율은 4% 정도에 불과하다. 나머지 94%는 기업 내부고발이나 내부감사기구에 의해 드러난다. 하지만, 기업의 내부감사제도에 의해 임명된 감사위원들이 재무제표를 이해하지 못하는 퇴직 원로 임원들로 채워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집단소송제도가 도입되었지만 소송허가를 받는 데만 3심제를 거치게 돼 있다. 기업이 항소를 거듭하면 실제 재판에는 이르기 힘들다. 이렇듯 회계투명성 제고를 위한 제도가 만들어지면, 이를 무력화하는 과정이 반복돼 왔다.

저자는 규제를 까다롭게 하고 처벌을 강화하는 것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효과적인 회계투명성 관련 정책들이 법제화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시행과 제도의 정착에 이르기까지 시민들의 지속적인 관심도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책에는 제도 대비 효과가 매우 높을 만한 대안이 하나 나온다. CEO 수감 참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CEO가 직접 감사인에게 결산결과를 보고하고 의문사항에 대해 답변하는 절차를 두자는 것이다. 실제 현장에서 회계사들은 결산 감사 때 해당 기업 CEO의 얼굴을 보기 힘들다. 감사인은 회계팀 등 관련 부서가 제시하는 재무제표를 보고 이를 확인하는 절차만 수행한다. 이 기간 CEO는 감사인을 멀리 피해 있는다. CEO는 회계법인에서 왔을 때와 철수할 때만 인사차 만날 수 있다. 회계부정을 주도한 CEO가 아니라면, 이런 관행은 기업 경영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더구나 ‘적정’ 판정이 나오면 회계팀으로부터 감사 과정에 대한 설명도 듣지 않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뒤늦게 터지는 회계부정 사건에서 정작 CEO는 영문도 모르는 경우가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경영자 수감의무화는 CEO들에게 회계투명성에 대한 각성의 기회가 될 수 있다. 회계 문외한인 CEO들에게는 교육의 기회가 될 것이다. 재무제표를 작성할 책임은 경영자에 있기 때문이다.

책에 정리된 기업이 회계부정을 저지르는 이유와 회계부정의 대표적 유형은 다음과 같다.

<회계부정을 저지르는 이유>

- 투자 유치와 대출을 위해

- 주가 안정이나 상승을 위해

- 구매처와 외상거래를 지속하기 위해

- 정치권 로비 자금을 만들기 위해

- 대주주나 경영진의 회사 자금 횡령

- 전문경영진의 연임과 성과 보수를 위해

- 임금 인상을 저지하기 위한 실적 축소

- 탈세

 

<회계부정의 대표적 유형>

- 양도성예금증서를 빌려 현금자산 부풀리기

- 재고자산 부풀리기

- 채권채무 조회서 위조

- 외상매출 부풀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