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불만족한 삶에서도 핑크빛 미래와 희망을 꿈꿀 수 있던 고성장 시대는 저물었다. 뒤이어 저금리, 저물가, 고실업률 등이 고착화되는 저성장 기조가 이어지면서 이른바 ‘뉴 노멀(New Normal) 시대’가 도래,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에도 새로운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1인 가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함에 따라, 가족 중심보다는 개인의 생활방식을 중시하고 이에 맞게 시간표를 구성하는 추세가 눈에 띈다. 또 불확실한 미래보다 지금 당장 행복하게 사는 것에 집중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경향이 뚜렷해졌다.

우리나라의 문화적 특성으로 여겨졌던 ‘밤 문화’에도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낮 동안 바쁘게 일하고 움직여야 한다면, 심야 시간을 이용해 운동이나 취미생활 등 자신이 하고 싶은 ‘꺼리’들을 찾고 실제로 행하는 데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이처럼 심야 시간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이들의 소비 행태에도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심야 시간을 이용한 새로운 활동 영역으로 스크린 야구와 같은 레저활동을 즐기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또 자정 이후에 심야 영화관을 찾는 사람들이 급증하는 등 밤 시간에 이루어지는 새로운 소비 트렌드가 주목된다.

신한카드 트렌드연구소가 오후 10시부터 새벽 3시까지(2016년 7월~12월) 카드 이용 830만건을 분석한 결과, 심야 시간대 레저활동으로 스크린 야구(52%)가 가장 많았다. 이어 볼링 (42%), 당구(38%), 실내골프(21%) 순이었다.

최근 1~2년 사이에 급증한 스크린 야구장의 경우, 2030대를 중심으로 트렌디한 공간으로 떠오른 데다 시간과 날씨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장점 덕분에 인기가 높다. 또, 최근 회식 문화가 건전해지고 기존에 야구를 즐겨 하는 동호회 등 단체 손님들의 발길도 이어지면서 밤 시간대 이용률이 높아지고 있다는 게 연구소 측의 설명이다.

오랫동안 음주 이후 회식 장소로 각광받아왔던 노래방(57%)은 여전히 심야시간대 여가 활동에서 부동의 1위에 이름을 올렸다. 뒤이어 PC방(38%), DVD방(21%), 만화방(18%), 오락실 (14%), 영화관(11%) 순으로 집계됐다.

특히, 최근에 프랜차이즈 형태로 급증한 만화방은 기존과 달리 카페 형태를 연상시키는 젊은 감각의 인테리어는 물론 다양한 음료에서 음식 메뉴까지 구비하는 공간으로 탈바꿈하면서 심야 시간대에도 인기를 얻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심야 영화를 즐기는 사람들도 폭발적으로 늘었다. 2011년과 2016년 주중 시간대별 영화관 이용 패턴을 비교해 보면, 밤 12시부터 새벽 6시 사이 결제 건수가 5년 전과 비교해 지난해 236.6%나 급증했다. 오전 6시~낮 12시(93.0%), 낮 12시~오후 6시(96.9%), 오후 6시~밤12시( 94.2%) 증가세와 비교하면 압도적인 수치다.

신한카드 트렌드연구소 측은 “영화의 경우 특별한 활동을 하지 않고 편하게 앉아서 시청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퇴근 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고 접근성이 높다는 점에서 수요가 많다”고 분석했다.

 
 

밤에 활동하는 ‘YOLO! 외치는 1인 가구’

우리나라는 유독 밤에 활동하는 문화가 다른 나라와 비교해 발달했다고 여겨졌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사람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밤 문화 영역을 다양하게 확장해가고 있는 배경은 무엇일까.

우선 과거 대가족 중심의 전통 가족문화에서 핵가족으로 가족 형태가 변해왔고, 올해 처음으로 ‘1인 가구’가 핵가족의 비율을 추월했다. 이는 삶의 초점이 가족 중심에서 자연스럽게 자신을 중심으로 새로운 생활양식이 형성되면서, 바쁜 낮 시간대보다는 개인에 따라 자유롭게 시간을 활용할 수 있는 심야 시간을 선호하게 된 것으로 풀이된다.

아울러 젊은이들의 실업률이 높아지고, 프리랜서, 연구원, 작가 등 직업의 다양화가 이루어지면서 기존에 ‘9 T0 6’에 맞춰 일하던 틀에서 벗어나 개인의 라이프스타일에 맞게 시간을 관리하는 ‘시간테크’족도 늘었다. 일하는 직장인이라면 낮 시간을 자유롭게 활용하지 못할 수밖에 없는 여건이기 때문에 비교적 자유로운 밤 시간을 이용하길 원하는 경향도 보인다.

미래를 준비하기보다는 현재를 즐기는 ‘욜로족’의 증가도 밤 활동을 즐기는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는 특징이다. YOLO(욜로)란 You Only Live Once의 줄임말로, 불확실한 미래보다 지금 당장 행복하게 사는 것에 집중하는 라이프스타일을 뜻하는 신조어다.

과거 낮에는 일하고 밤은 ‘내일을 위해’ 휴식을 취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자리 잡고 있었다면, 최근 젊은이들은 내일을 준비하기보다는 지금 당장을 중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러한 것들이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으면서, 오히려 북적거리는 낮보다 밤 시간대를 활용해 스스로 원하는 것을 실행하는 데 적극적인 특성을 보인다.

윤인진 고려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과거 한국사회 제도나 가치관, 생활양식이 가족에 기반해 이루어졌다면, 이제는 1인 가구가 압도적으로 많아지면서 기존과는 또 다른 생활양식이 등장한 것”이라며 “밤늦게까지 여가 활동을 즐긴다는 것은 집에 일찍 들어갈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고 분석했다. 혼자서 원하는 시간대에 누구의 구애도 받지 않고 삶을 즐길 수 있는 충분한 환경이 조성됐다는 이야기다. 또 개인 활동과 휴식의 공존을 위해 주중 평일 밤에는 취미와 관련된 활동을, 주말에는 완벽한 휴식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도 특징이라는 게 윤 교수의 설명이다.

개인을 둘러싼 가족과 사회적 규범에 대한 통제력이 지금의 5060세대가 2030세대에 겪었던 시절과는 많이 달라진 점도 있다. 심야 시간에 행해지는 젊은이들의 여가활동에 대한 가족의 규범이나 사회적 규범이 느슨해진 분위기도 하나의 이유로 들 수 있다는 게 윤 교수의 의견이다.

윤 교수는 “특히 경쟁이 심화된 사회에서 미래에 대한 보장이 없고 직장 내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하다 보니, 이런 것을 풀지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환경에 살고 있다”라며 “일이 다 끝난 심야 시간에 개인이 원하는 문화를 소비하는 것을 스트레스 해소의 일환으로 활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규은 연세대학교 인간행동연구소 연구원은 “사실 단순하게 소비자 입장에서 본다면 우리나라 특성상 낮에 바쁘게 일을해야 하는 구조”라면서 “이에 낮 시간 동안 먹거나 소비할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가 없기 때문에 밤을 활용한 새로운 시장이 창출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한 예로 낮 동안 바쁜 직장인들의 경우 세차할 시간도 없어 밤늦게나 새벽에 하는 경우가 왕왕 있는데, 이에 24시간 셀프 세차장이 인기라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