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나스닥 기술주들이 급락하자 버블 논란이 일고 있다. 하지만 버블이라고 하기엔 미국 기술주들을 제외한 여타 국가 기술주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 과거 닷컴버블 시절 나스닥 기술주는 물론 여타 국가 기술주들이 상상을 뛰어넘은 시장 밸류에이션 평가를 받았던 것과 비교하면 기술주들의 ‘버블’을 논하기 어렵다. 다만, 상대적으로 빠르게 상승한 주가의 조정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지난 9일(현지시간) IT대표 기업 4인방 FANG(페이스북, 아마존, 엔비디아, 구글)의 주가가 급락했다. 이날 페이스북은 전일대비 3.3%, 아마존 3.16%, 엔비디아 6.46%, 구글 3.4% 각각 큰 폭의 내림세로 장을 마쳤다.

이러한 상황을 연출한 장본인은 시트론 리서치(Citron Research)다. 시트론 리서치는 리포트를 통해 엔비디아의 주가가 130달러까지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고 이는 IT업종과 나스닥 전반의 익덱스 매도로 연결됐다.

시트론 리서치는 엔비디아의 장기전망은 밝으나 컴퓨터 게임 등 핵심 사업군의 성장세는 둔화되는 반면,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자율주행 등 신사업의 가치는 고평가됐다고 평가했다. 특히 데이터센터는 인텔, 구글 등의 잠재적 경쟁자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시트론 리서치는 공매도 전문 리서치 기업으로 지난해 말 엔비디아의 주가가 90달러까지 하락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또 작년 초에는 테슬라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을 내면서 테슬라 주가 하락을 견인하기도 했다.

그만큼 시트론 리서치의 매도 의견은 시장에서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하지만 엔비디아와 테슬라의 주가는 이를 무시한 채 오히려 역사적 고점을 갱신하는 등 강한 상승세를 보였다. 그렇다면 이번에도 시트론 리서치의 의견은 무시되는 것일까.

올해 상반기 글로벌 증시 동향을 보면 최근 3~4년간 강세를 보였던 미국 증시는 주춤한 반면, 미국을 제외한 선진국과 이머징 중심의 강세가 나타났다. 특히 이머징 시장에서는 IT관련주의 상승세가 돋보였다.

한편, 연초대비 글로벌 성장률은 3.4%에서 3.5%로 소폭 상향된 가운데 미국성장률은 2.1%대에서 정체된 반면, 유로존과 일본의 성장률 전망치는 상향됐다.

불과 지난해만 하더라도 세계 경제는 ‘뉴노멀 시대’라 표현할만큼 성장에 대한 기대감은 강하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들어 올해와 내년의 성장률 전망치는 완만한 기울기로 상승하는 국면에 접어들었다.

종합해보면 미국 증시는 적정수준보다 빠르게 상승한 주가지수의 레벨부담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울러 트럼프의 경제정책에 대한 의구심과 기업이익 모멘텀 부재로 이전과 같이 미국 증시가 글로벌 증시를 리드하기 어려워 보인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같은해 말까지 급격히 상승한 미국채 금리는 점차 하락하고 있다. 당시 미국채 금리는 성장에 따른 인플레이션 기대감이 그 수준을 끌어올렸으나 현재는 반대의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다.

▲ 미국 장단기 금리차(10년물-2년물) 추이 [출처:키움증권 HTS]

아울러 미국의 장단기 국채 금리차(10년물-2년물)도 올해 초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장단기 국채 금리차가 상승할수록 호황을, 하락할수록 불황을 암시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시트론 리서치의 의견은 무시되기 어렵다. 특히 미국 증시 상승을 이끈 기업들이 FANG였다는 점에서 이들 기업의 주가 둔화는 자연스럽게 미국 증시 상승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버블’은 어디쯤 왔을까

현재 시장의 관심은 글로벌 증시의 상승이 멈출 것인지 여부에 쏠리고 있다. 지난 수년간 FANG의 버블 논란이 끊임없이 제기돼왔고 현재는 그 상승탄력이 약해진 것은 분명해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분위기가 증시의 하락으로 전환될 것인지 여부는 이르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과거 증시 역사를 되돌아보면 버블의 절정이 다가올수록 글로벌 주가 흐름의 동조화 현상이 강해졌다. 대표적으로 2000년대 초반 닷컴 버블 당시 나스닥 기술주 열풍이 세계 각국의 기술주 강세로 이어지는 현상을 보이기도 했다.

또 버블의 종료가 임박할수록 글로벌 증시는 동조화를 보이기 어렵다. 이는 기술격차가 뚜렷한 때로 2000년 나스닥 바이오테크 지수는 3월초까지 93% 폭등한 후 클린턴 대통령의 게놈 정보 무료 공개 발언으로 급락했다. 하지만 같은해 6월 유전자 지도 초안 공개로 수익성 악화 우려가 완화되자 재차 상승에 성공했다.

만약 지금이 IT주들의 버블 국면이라면 이들 기업은 상상을 초월하는 시장밸류에이션을 평가받아야 하며 글로벌 증시의 동조화 현상이 더욱 강해져야 한다. 그러나 현재 상황은 미국 외 선진국과 이머징 증시가 강세를 보이고 있는 만큼 나스닥 기술주들의 버블을 논하기 어려운 것이다.

▲ 출처:삼성증권

현재 FAANG(FANG에서 애플 추가)의 올해 예상 평균 주가수익비율(PER=주가/주당순이익)은 32.5배, 내년에는 25.8배로 전망된다. 또 2017년 예상 평균 주당순자산비율(PBR=주가/주당순자산)은 8.3배, 2018년 6.5배를 기록할 전망이다.

PER과 PBR의 절대수치를 보면 FAANG의 주가는 고평가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가치평가공식 중 하나인 EV/EBITA(기업내재가치를 법인세, 이자, 감가상각비 차감 전 이익으로 나눈 비율)를 보면 올해 FAANG 평균은 14.8배, 내년에는 11.8배로 측정된다.

아울러 이들의 평균 자기자본이익률(ROE)은 올해 25.8%에서 내년에는 26%를 기록할 전망이다. 특히 자기자본이익률은 말 그대로 자기자본대비 얼마의 이익을 올리는지 평가하는 지표이기 때문에 이 지표의 수치가 높을수록 PER, PBR과 같은 수치도 올라가게 된다. 즉, 수익성이 충족되는 기업은 단연 시장에서 그 가치도 높게 평가받는다는 것이다. 그만큼 FAANG의 버블을 논하기엔 이른 시기라 할 수 있으며 현재는 일종의 조정국면에 들어선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한국증시를 대표하는 기업이자 IT관련주로 꼽히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올해 예상 PER은 각각 7.9배, 4.2배이며 예상 PBR은 각각 1.4배, 1.2배로 상당히 낮은 편이다. 또, 이들 기업의 EV/EBITA는 각각 3.2배, 2.1배로 여전히 저평가됐음을 보여준다.

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올해 예상 ROE는 각각 18.9%, 33.9%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만큼 삼성전자, SK하이닉스는 수익성과 시장밸류에이션 측면에서 FAANG대비 현저한 저평가로 판단된다.

미국 기술주들에 대한 고평가 논란에 이어 시트론 리서치의 보고서로 촉발된 시장의 암울한 분위기는 일시적 조정에 불과할 전망이다. 아울러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이머징 시장으로 자금이 몰려드는 상황은 버블 논란이 시기상조라는 점을 말해주고 있다.

FANG 기업들의 주가가 폭락하자 SNRS(소프트뱅크, 닌텐도, 리쿠르트, 소니)로 표현되는 일본 대표기업들이 주목을 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현 국면에서 기술주들이 버블이라면 투자자들은 여타 기업으로 눈을 돌리지 않는다. 만약 버블이라면 모든 기술주들이 동반 폭락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FANG의 주가 급락은 심리적으로 여타 국가 기술주들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결국 기업의 실적과 시장 밸류에이션에 집중해야 하는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