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숲속으로, 53×41㎝ oil on canvas, 2013

 

“인간에게 숲은 무엇이며 어떤 의미를 주는가? 숲이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물질적 자원이며 쾌적하게 해주는 환경적 자원임은 누구나 인정한다. 그러나 나는 숲이 이것을 훨씬 뛰어넘어 인간의 정신적 근원과 본성을 찾는데 큰 역할을 한다고 믿는다. 숲은 우리가 육체적 그리고 심리적으로 건강한 삶, 다시 말하면 몸과 마음이 평안하고 균형 잡힌 삶을 살기위해 기본적으로 교류하여야 하는 대상이다.”<치유의 숲, 신원섭 著, 지성사 刊>

 

그 숲길의 입구엔 다채로운 색깔의 키 크고 늘씬한 접시꽃들이 ‘안녕, 햇살이 너무 좋은 날씨군요. 이 산책로를 찾아 주신 걸 환영해요!’라고 하듯 활짝 웃으며 피어있었다. 흰색과 연한핑크빛깔이 어우러진 커다란 꽃잎들이 하늘거릴 때면 진노랑으로 볼록 올라온 한가운데 꽃술이 더욱 화사하게 도드라져 도저히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매혹적이었다.

꽃들은 언제나 바람과 친숙하고 예민했다. 늘 그들이 가벼이 흔들리는 것을 보고서야 잔바람이 이는 것을 느꼈다. 나지막한 언덕길 옆으로 자그마한 냇물이 흘렀다. 아른거리는 물결사이 바닥이 훤히 내려다보였다. 쏜살같이 어디론가 숨어버리는 이름 모를 작디작은 물고기며 수줍음이 많아 이끼로 몸을 두른 넓적한 돌들, 물가의 수양버드나무 가지들은 축 늘어져 냇물과 닿을 듯 말 듯 재미난 놀이를 하듯이 흔들리고 있었다.

 

▲ 162×130㎝

 

그러면 물빛은 연초록으로 물들다 레몬옐로빛깔로 바뀌면서 맑고 투명한 물감을 풀어놓은 듯 수채화를 그려내며 말을 걸어왔다. 휘어진 좁은 길을 돌아서자 한낮인데도 숲속은 어둑한 느낌이 들 정도로 무성했다. 깊은 숨을 내쉬며 천천히 걸었다. 크고 작은 또 길쭉하거나 둥근 잎 등 다양한 모양이 바람이 부는 방향에 따라 이러 저리 흔들릴 땐 오색영롱한 빛깔들이 순간 어른거렸다. 마치 물고기 떼들이 하늘을 날며 햇살에 드러나는 은빛비늘이 반짝이는 듯 황홀하면서 미묘한 몽환적 풍경을 떠올리게 했다.

어디선가 피아니스트 클라우디오 아라우(Claudio Arrau,1903-1991)가 연주한 슈만(Schumann) 곡 ‘숲속의 정경(Waldszenen op. 82)’이 흘러나왔다. 냇가 근처, 바위 틈, 저 건너 숲속에 숨은 듯 꽃무리가 피워내는 진한 꽃향기가 바람을 타고 코끝을 자극했다. 가슴이 열리고 천천히 눈을 감아보았다. 그대의 향기에 취했던 시절의 강렬한 이끌림 기억이 불현 듯 스쳐 지나갔다. 슬쩍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 (왼쪽)45.5×53.0㎝,2012 (오른쪽)90.9×90.9㎝, 2010

 

그리고 곧이어 코끝으로 밀려드는 꽃향기의 향연을 감지할 수 있었다. 현기증이 날 만큼 황홀한 내음의 세계에 도취되어 잠시 나무에 기대어 앉았다. 꽃향기 흐르는 냇가, 순백의 마음에 흐르는 미묘한 감정의 로맨틱한 사랑의 선율이 들려오는 듯 했다. 새들도 귀 기울이게 하는 자작나무 숲에서 꿈을 꾸듯 가벼이 노래를 하다 불현 듯 울컥 눈물이 솟는 것을 억누를 수 없었다.

“새가 이리저리 나뭇가지를 날아 이동하네. 새의 날개에 바람을, 새의 노래에 햇살 한 됫박 선물하고프다. 러시아자작나무숲 기억을 잊을 수 없다. 끝없이 이어진 아스라한 은빛나뭇가지의 향연…. 가슴 어딘가 숲의 감명을 간직하고 있기에 오늘도 나는 붓을 들어 그 모습을 공감각적으로 그려보네.”<류영신(ARTIST RYU YOUNG SHIN)작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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