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쇼핑을 가본 사람들은 한국인이나 중국인에 관계없이 옷 가게에 들어갔다가 놀라움과 동시에 기쁨을 표출한다. 친분이 있는 한 중국인 유학생은 “중국에서는 통통한 편으로 여겨져서 옷 가게에서 언제나 미디엄 사이즈나 간혹 라지 사이즈도 권유를 받았는데, 미국에서 옷을 사러 갔더니 미디엄도 아니고 스몰을 입었는데도 넉넉하게 맞았다”면서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미국을 잠시 방문했던 친척 어른을 모시고 중장년층이 즐겨 입는 브랜드 매장을 방문했는데, 점원은 이 분의 사이즈를 눈대중으로 확인하더니 스몰과 미디엄 사이즈 옷을 척 꺼내놓으면서 입어보라고 권했다.

배가 조금 나와 있어서 한국에서는 77사이즈나 88사이즈 옷도 입는 분인데 스몰사이즈라니 가당치도 않다고 생각했지만, 점원은 이 브랜드 자체가 20대 젊은 층이 아닌 중장년층이 입는 브랜드라서 사이즈 기준이 아예 다르다고 설명한다. 결국 이 분은 스몰 사이즈인 셔츠를 여러 장 사고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쇼핑을 마쳤다.

동양인 여행객들이 갑자기 미국에 와서 살이 빠졌을 리도 없는데 구매한 옷의 사이즈가 대폭 작아진 이유는 바로 미국의 ‘허영 사이즈(Vanity Size)’ 때문이다.

허영 사이즈는 한국에서도 한 차례 논란이 된 적이 있다. 한국의 여성복 사이즈는 대체로 44, 55, 66의 식으로 되어 있다. 과거 아주 드물게 나오던 44사이즈가 많은 브랜드에서 나오고 연예인들이 44사이즈니, 심지어 요즘은 33사이즈니 하는 소리가 나오면서 실제로 44사이즈의 측정 지수가 얼마나 되는지에 대해서 논란이 일었다.

한국의 44사이즈 체형은 1979년 당시한국공업진흥청이 당시 여성들의 표준으로 키가 155㎝, 가슴둘레 85㎝로 정해놓고 이를 55사이즈로 지정했다. 이보다 5㎝씩 작은 키 150㎝, 가슴둘레 80㎝인 경우가 바로 사이즈 44가 되는 것이다.

2014년 기준 한국 여성의 평균 신장이 162.3㎝이고 이 신장의 표준 체중은 50㎏대인 것을 감안하면 55사이즈를 입을 수 있는 여성도 생각보다 많지 않은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특히나 44사이즈는 아주 작고 왜소한 체구의 사람들만이 맞는 사이즈인데, 요즘 TV에 나오는 연예인들은 너도나도 44사이즈가 맞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진실은 의류업체들이 고객들의 날씬해 보이고자 하는 욕구에 부응하기 위해서 기존 사이즈보다 의도적으로 작은 사이즈를 붙여놓은 것이다.

이를 미국에서는 허영 사이즈라고 부르는 것인데 어찌나 과도하게 사이즈를 부풀려 놓았는지 1950년대 사이즈 12였던 옷이 지금은 사이즈 6으로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1960년 63㎏이던 미국 여성의 평균 몸무게는 2014년 76㎏으로 크게 증가했다. 그러나 옷 사이즈는 오히려 줄어들었는데 1960년대 인기 모델이었던 트위기는 허리가 23.5인치밖에 안 됐지만 당시 입던 옷의 사이즈는 8이었으며 당시에는 가장 작은 옷 사이즈가 8이었다.

미국 의류업계는 허영사이즈로 자꾸 라벨에 붙은 옷 사이즈를 줄여서 사이즈 8에서 6으로, 2로 자꾸 줄이다가 더 이상 줄일 숫자가 없자 2000년 들어서 사이즈 0이라는 해괴한 사이즈를 만들었고 그보다 더 작은 00사이즈도 등장시켰다.

미국 여성의 67%가 사이즈 14나 이보다 큰 옷을 입는 현실에서 과거 사이즈를 고수했다가는 대부분의 여성들이 사이즈 20이 넘는 옷을 입게 되는데 이를 피하고 싶은 것이 고객들의 심리이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아예 몸의 굴곡이 있다는 뜻의 커비 사이즈(Curvy Size)를 개발해서 같은 사이즈라도 커비 사이즈의 경우 엉덩이를 1인치 더 크게 만들어서 어떤 신체 사이즈를 갖고 있더라도 더 작은 사이즈의 옷을 구입해서 만족하도록 허영 사이즈를 강화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