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시가총액 대장주 애플의 연이은 투자등급 하향조정과 간판 기술주의 매물이 마구 쏟아지며 미국 주식시장에서 FANG(페이스북-아마존-넷플릭스-구글)이 휘청이고 있다. 반면  일본의 SNRS(소프트뱅크-닌텐도-리쿠르트-소니)는 물론 아시아의 21세기 '신룡(新龍)'으로 꼽히는 STAT(삼성전자-텐센트-알리바바-TSMC)가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여기에 중국의 BAT(바이두-알리바바-텐센트) 트로이카에서 바이두를 빼고 러에코를 넣은 RAT(러에코-알리바바-텐센트) 에도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팡'이 주춤거리자 다크호스가 뜬다

최근 미국 주식시장의 가장 극적인 변화는 뭐니뭐니해도 기술주의 폭락이라고 할 수 있다.  12일(현지시간) 뉴욕증권거래소에서 다우존스 30 산업평균지수가 전거래일보다 36.30포인트 하락한 2만1235.67에 거래를 마쳤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가  2.38포인트(0.10%) 내린 2429.39에,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지수는 32.45포인트(0.52%) 낮은 6175.47에 장을 마쳤다.

다우지수는  구성종목인 마이크로소프트도 0.8% 하락하고 글로벌 대장주 애플이 최근 투자의견을 매수에서 중립으로 하향한 미즈호증권의 직격탄에 2.5%나 떨어지는 등 기술주 하락에 맥을 추지 못했다.

특히 나스닥 시장에서는 FANG의 약세가 이어지고 있다. 이날 페이스북이 0.8% 내렸고, 아마존이 1.4%, 넷플릭스가 4.2%, 알파벳이 0.9% 하락했다.

흥미로운 지점은 기술주 하락의 대안으로 통신, 금융, 에너지가 꼽히고 있다는 점이다.  이분야 주식은 저점을 형성하고 있어 머지 않아 바닥을 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소모적인 경쟁이 지속되는 가운데 네트워크 사업자의 초연결 시대 적응이 어려울 것이라는 부정적인 전망을 듣고 있는 통신과 전통사업에 가까워진 금융,  미국 셰일혁명과 석유수출구기(OPEC)의 감산합의가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에너지 분야가 새삼 주목을 받는 셈이다.

FANG이 주춤거리는 사이  일본의 SNRS가 각광을 받고 있는 것도 흥미롭다.  소프트뱅크는 최근 중동 오일머니와 합작한 비전펀드가 화려하게 출범한 가운데 구글이 포기한 보스턴 다이내믹스를 인수해 초연결 기업 이미지를 굳히는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최근에는 손정의 회장의 아킬레스건이라는 통신사 스프린트의 실적까지 오르면서 승승장구하고 있다.

닌텐도는 콘솔 스위치(Switch)가 대박을 쳐 강렬한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다.  닌텐도는 증강현실 게임 포켓몬고를 성공시킨 나이언틱과 지식재산권(IP)을 통한 협력에 나서며 부활의 신호탄을 쏘았다.  취업정보업체 리쿠르트는 미국 취업 관련 검색 엔진 인디드(Indeed) 인수로 그 가치가 점점 날카로워지고 있다.

올해를 '부활의 해'로 명명한 소니의 실적도 주목할 만하다. 소니는 4월 실적발표에서 지난해 매출 7조6032억엔, 영업이익 2887억엔을 올렸다고 밝혔다.   최근에는 프리미엄 TV 시장에서 삼성전자와 LG전자를 바짝 추격하고 있으며 카메라 이미지 센서 등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올해 5000억엔의 영업이익을 예상하고 있다.

STAT도 주목해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 영국의 투자회사 세븐인베스트먼트 매니지먼트의 보고서에서 아시아의 삼성전자와 텐센트, 알리바바, TSMC를 4룡(龍)으로 분류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IM부문의 갤럭시 신화가 살아나 갤럭시S8의 대성공이 점쳐지고 있고 하반기 갤럭시노트8에 대한 기대도 높아지고 있다.  핵심 경쟁력인 반도체 및 부품 경쟁력도 주목할 부분이다. 삼성전자는 슈퍼 사이클에 진입한 메모리 반도체 최강자로 군림하고 있으며 시스템 반도체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함께 별도의 파운드리 사업부 분사 계획까지 밝히는 등 총체적 부품 경쟁력 제고에 힘을 쏟고 있다. 

텐센트는 중국의 게임 퍼블리셔에서 출발해 O2O 시장의 포식자로 발전한 기업이다. 모바일 메신저 위챗을 중심으로 하드웨어 단말기에 상관없는 별도의 앱 생태계까지 창출하는 중이다. 알리바바는 전자상거래 시장의 강자면서 역시 다양한 O2O 영역에 진출했으며 TSMC는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의 50% 이상을 독식하고 있는 대만 제조업의 자존심이다.

냉정하게 보자면...
팡이 최근 주춤거리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애플과 팡을 하나로 묶어 기술주로 명명한 관점에서 팡의 동력상실을 설명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따른다.

지난해 1월 '팡'이라는 존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을 무렵 애플이 다소 주춤한 것을 상기해보자. 지난해 1월 애플은 2015년 기준 아이폰 판매량이 7480만대에 그치며 순이익은 전년 같은 기간 대비 2.2%, 매출은 1.7% 늘어나는데 머물렀다.

반면 팡의 실적은 날카로웠다. 페이스북은  2015년 4분기 총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52% 증가한  58억400만달러를 기록했다.  광고 매출은 56억300만달러를 기록해 전년 대비 57%가 증가했다.  2015년 연간 매출은 179억3000만달러로 전년 대비 44% 증가했다. 광고 매출은 171억달러로 전년 대비 49% 늘었다.  모바일 월활동사용자(Mobile MAU)는 14억 4400만명, 모바일 일활동사용자(Mobile DAU)는 9억3400만명을 기록했다.

아마존도 마찬가지다. 당시 아마존은 막 부진의 늪에서 헤어나오는 중이었으며 이에 힘입어 블룸버그가 집계한 세계 400대 부호 랭킹에서 제프 베조서 최고경영자(CEO)는 2015년에만 재산을 300억달러에서 587억달러로 불렸다. 넷플릭스는 글로벌 론칭 서비스를 막 시작한 단계였고 구글은 여전히 건재했다.

▲ 넷플릭스 글로벌 진출. 출처=넥플릭스

결론적으로 '기술주의 하락=팡의 동력상실'이라는 시각은 현실과 괴리가 있다.  기술주에 팡을 포함시켜 전반적인 하락을 설명하는 것보다 플랫폼 사업자의 '비상'이 이뤄지고 있었다는 평가를 내리는 것이 맞았다.

애플은 운영체제를 디바이스에 담아 판매하는 게 기본 비즈니스 모델이고 실제수익이 하드웨어에서 창출되기 때문에 하드웨어 회사로 보는 것이 맞다. iOS라는 소프트웨어 생태계를 가지고 있지만 실제 수익이 나는 곳은 하드웨어라는 뜻이다.

팡은 대부분 플랫폼 사업자이자 소프트웨어 전문기업이다. 페이스북은 통신사와 망 중립성을 계기로 대립각을 세울 정도로 의심의 여지가 없는 플랫폼 및 소프트웨어 초연결 사업자며 아마존은 이커머스 사업자로 활동하며 그 누구보다 모바일 플랫폼 사업에서 역량을 키운 사례다. 넷플릭스는 콘텐츠의 매력으로 플랫폼 사업자를 자임하며 구글은 안드로이드 생태계가 있다.

이런 이유에서 근 팡의 부진은 기술주의 측면으로만 설명할 수는 없다. 엔비디아와 같은 GPU 기업의 하락이 기술주 전반의 하방압력을 주도하는 분위기는 감지되지만, 그 보다 기술기반 플랫폼 하드웨어 기업의 약세가 시작되었다고 보는 편이 타당하다. 중국 BAT 트로이카에서 포털 업체인 바이두가 탈락하고 그 자리를 러에코가 메운 대목도 이러한 변화의 전조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일본 SNRS와 아시아 STAT의 비상은 무엇을 의미할까? 팡의 대안으로 통신, 금융, 에너지가 꼽히는 것처럼 이들의 가치가 지금까지 지나치게 저평가돼 있다는 상황인식에서 논의가 출발한다. 이들 중 강력한 기술기반 플랫폼 기업이 없다는 것도 핵심이다.

거대 ICT 기업처럼 큰 그림을 그리기는 어렵지만 초연결 시대가 열린 '기회'를 바탕으로 자기가 보유한 기술력을 적절하게 풀어낼 수 있다는 게 중요하다. 소프트뱅크도 마찬가지지만 닌텐도, 리쿠르트,  소니는 자체 거대한 초연결 생태계를 창출하는 방식보다 거인과 협력하는 모델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STAT도 마찬가지다. 삼성전자는 부품 경쟁력, 그 외 중국 업체들은 나름 글로벌 규모의 ICT 생태계를 꾸렸으나 세상의 중심인 신진 시장에 완전히 뿌리를 내린 것은 아니다. TSMC는 말 그대로 철저한 부품 인프라 업체다.

여기에 팡의 주가가 최근 다소 하락했으나 1년 단위로 보면 크게 뛰어 올랐다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그런 이유로에서 기술기반 플랫폼 기업들의 거품이 빠졌다고 보기는 어렵고, 능력 이상의 가치를 주식시장에 어필했으나 약간의 영점조절을 통해 현실적인 간극을 메우는 수준으로 봐야 한다.   팡의 일시적인 성장동력 상실을 두고 기술주의 죽음이라는 격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 '너무 나간 해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