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작가다. 작가로서 가장 영예로운 일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는 것이다. 그 방법을 찾기 위해 유명 베스트셀러 작가에게 질문을 했다 “어떻게 하면 저도 베스트셀러 작가가 될 수 있습니까?” 그러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베스트셀러가 될 때 까지 계속해서 책을 출간하면 된다.”라고.

 

피카소는 92살로 생을 마감하면서 그림 1876점, 조각 1355점, 도자기 2880점, 스케치와 뎃셍 1100점, 부식 동판화 2만7000점 등 5만점에 이르는 엄청난 양의 작품을 남기고 떠났다. 피카소의 작품 양은 기존의 예술작품을 일거에 뒤집어엎은 마르셀 뒤샹 4만 5000여 작품 수에 두 배에 달한다. 작품 수도 대단하지만 피카소의 변화무쌍한 작품 세계와 예술적 여정은 감탄사를 절로 자아내게 한다. 그래서 흔히들 “피카소를 빼놓고 20세기 미술을 말할 수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피카소가 이렇게 유명한 예술가로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그렇다. 자신의 작품이 가치를 인정받을 때까지 그리는 것이다. 그리다 그리다보면 언젠가는 하나의 작품이 인정받게 되고, 그러면 그가 그린 모든 작품은 명작이 된다. 이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는 길과 같은 방법이다.

그래서일까. 피카소의 위대함은 입체주의를 탄생시킨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는 형태와 재료 사용에 끊임없이 새로움을 추구했고 예술가는 특정한 유파나 사조에 속한다는 통념을 뒤엎었다. 그는 세기를 가로지르며 자신의 부단한 변모에 세상을 변화시켜 갔다. 따라서 피카소는 어떤 스타일의 그림을 그렸는지 정확히 말하기는 불가능하다. 일부 미술사들이 그의 창작 생활을 다음의 몇 가지 시기로 나누기도 했다.

즉 청색시대(1901년~1902년 청색이 지배하는 작품), 청색~장미색 이행기(1904년), 장미색 시대(1905~1906년), 입체주의(1908~1914년), 앵그르풍 시대(1915년부터 사실적 초상화로 복귀), 초현실주의 (1925~1939년), 앙티브 시대(1946~1948년), 말년(1945~1973년) 등으로 나뉜다. 피카소의 이러한 행보는 무엇보다 어느 한 가지 기치에 국한되지 않으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피카소는 “그림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연구하는 것이고 접근방식에는 끝이 없다.”라고 술회했다.

미국의 추상표현주의 미술의 선구적 대표자인 잭슨 폴록(Jackson Pollock)은 피카소의 다작에 치명상을 입었다. 잭슨 폴록은 이렇게 절규한다. “제기랄, 피카소! 그놈이 다 해 처먹었어! 손을 안댄 곳이 없어” 폴록은 그를 저주했다. 평면회화부터 빛의 예술까지 모든 장르를 섭렵한 피카소, 폴록에게 새로운 시도는 불가능해 보였다. 도저히 피카소를 넘어설 수 없으리라는 절망감에 빠져 독한 담배와 술에 절어 지내기도 했다.

이러한 원리는 기가막힌 창의적인 예술가들의 경우에도 동일하게 성립된다. 대한민국 국민이 가장 좋아하는 고흐뿐만 아니라 모차르트 등의 독창적인 예술가들은 수 없이 많은 작품을 남긴 예술가다. 성공하고 싶다면, 작업량을 지속적으로 늘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다.

이와 관련하여 ‘저주받은 개구리 왕자’의 이야기가 단적으로 우리의 인식을 깨운다. 마녀의 저주를 받은 왕자가 개구리로 변해 우물가에서 수많은 개구리들과 함께 울어야 하는 처량한 신세에 빠졌다. 그런데 공주가 나타나 저주받은 개구리에게 입을 맞추자 다시 멋진 왕자로 되돌아오고, 공주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가 줄거리다.

그렇다면 공주는 수많은 개구리 중에 하필 그 개구리가 저주받은 왕자인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공주의 영민함일까? 아니다. 정답은 왕자로 변할 때까지 연못가의 모든 개구리에게 하나하나 입을 맞추어 보는 공주의 끈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어느 부족의 용한 주술사가 기우제만 드리면 비가 온다는 것도 비슷한 원리다.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기 때문이다.

성공하고 싶고, 베스트셀러가 작가가 되고 싶으면 성공할 때까지, 베스트셀러가 탄생될 때 까지 지속적으로 노력하면 된다. 공주가 키스할 때 까지 자신을 업그레이드 시켜가는 것이다. 결국 성공이라는 것은 ‘질’과 더불어 ‘양’도 중요할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