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년’이라는 키워드와 ‘스타트업’이라는 키워드를 하나로 연결할 경우 어떤 삶의 경험을 할 수 있을까? 실제 장년 스타트업 창업에 나선 인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주도적인 장년창업, 야생을 두려워하지 말아라”(김수섭 상승국제특허법률사무소 대표)

김수섭 대표는 KBS와 특허청을 거쳐 자신의 특기를 십분 활용, 현재 특허법률사무소를 창업해 운영하고 있다. 전기전자 및 정보통신 기술 분야의 스타트업 및 중소기업에 적합한 기술개발전략과 기술보호를 위한 특허전략개발 등의 업무에 집중하고 있으며 개별 기술기반 스타트업과 중소기업들에 적합한 특허전략을 개발하는 일도 병행하고 있다.

▲ 김수섭 대표.

-창업을 하기 전, 어떤 일을 했는지?

첫 직장인 KBS에서 12년간 방송기술직으로 송신시설 자동화시스템 개발업무를 수행했다. 개발한 자동화시스템을 설치하기 위해 전국의 모든 KBS TV 및 FM 고지송신소 곳곳을 누볐다. 이어 방송기술 업무를 수행하면서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정보통신기술사에 합격했고 이로 인해 기술사 특채로 특허청에서 특허심사관으로 근무할 기회를 얻기도 했다. 특허청에서는 11년간 전기전자 분야의 특허심사를 수행했으며, 그 시기 전자상거래, 반도체, 전자, 전력기술 심사과 등에서 다양한 분야를 접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가졌다. 지금은 상승국제특허법률사무소의 대표로서 특허권 등 산업재산권 전반에 대한 법률자문과 아울러 기술개발 및 특허전략 컨설팅 업무를 제공하고 있다.

 

-창업을 결심한 계기는?

사실 KBS 재직 당시부터 창업은 오래 전부터 생각하고 있었다. 다만 어떤 분야에서 어떤 아이템을 가지고 창업할 것인지가 문제였다. 정보통신기술사를 취득하고 나서 기술사사무소를 개설할 생각도 했지만 전체 시장이 크지 않았고 수익구조도 불안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던 차에 특허청에서 심사관으로 근무할 경력직 사무관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고 지원했다. 뭔가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었고 심사관 5년 경력이면 변리사 시험에서 일부 과목 면제 혜택을 주기 때문이다. 특허청으로 이직할 때 세무사인 친구가 이야기하기를 한 분야에서 전문가 소리를 들으려면 10년은 해야 한다고 하더라. 그것 때문인지는 몰라도 특허청 근무가 11년이 되던 2015년에야 변리사 시험에 합격했다. 그 사이 공부하고 싶었던 경영대학원에 가서 경영학 공부를 하고 다양한 기술 분야의 특허심사를 하면서 바쁘게 지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운전면허증을 따고 나면 당장 운전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가. 기술사와 변리사까지 취득하고 나니 창업을 결심하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지금까지 축적한 방송 및 정보통신기술, 지식재산법률, 경영 분야의 다양한 지식과 경험들을 바탕으로 나만이 제공할 수 있는 특화된 서비스를 시장에 제공해 보고 싶어졌다. 그리고 마치 오래된 숙제를 꺼내어 들고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으로 창업을 결심했다.

 

-창업 후 어려운 일도 많았을 텐데

사업을 꾸려나가다 보면 많은 부분들이 처음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것이 제일 어려운 것 같다. 특히 예측한 수요가 어긋나 수입이 줄고 지출만 계속되면 자금이 부족해지는데 보통 개인사업자의 경우 부동산을 담보로 대출을 받는 등 많은 부분을 스스로 조달해야 하는 점이 힘들었다.

결국 자금 조달이 창업 후 가장 어려운 부분인 것 같다. 정부의 자금 지원은 중소기업의 경우 기술기업 또는 수출기업에 대한 지원에 편중되어 있는 것 같고, 소상공인의 경우에는 사업 분야별로 필요한 부분이 다를 것 같은데도 일률적인 지원 프로그램만 있는 것 같다는 문제의식이 있다. 게다가 전문직 창업자들은 알아서 잘할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전문직 개인사업자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전무한 것 같다. 요즘은 전문직 종사자의 증가로 경쟁이 치열해져 사업 운영이 어려운 경우도 많은데 꼭 자금지원이 아니더라도 사업 분야별로 특화된 정부의 지원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보람을 느끼는 순간도 많았을 텐데

직장생활에서는 수동적인 업무 처리를 해도 큰 문제가 없지만 창업을 하면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스스로 결정을 해야 하고 그에 따른 결과를 받아야 한다. 따라서 창업을 생각하는 그 순간부터 창업과 관련된 모든 일들을 능동적이고 주도적으로 해야 하는데 이런 점에서 업무 만족도는 높은 편이다. 또한 창업 초기에는 처음 해보는 일들이 많은데 스스로 판단하고 새로운 결정을 내리는 과정을 통해 나만의 사업 시스템을 갖춰나가는 것이 가장 큰 보람인 것 같다.

 

-청년창업이 아닌, 장년창업만의 강점이 있다면?

아무래도 많은 경험과 지식이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오랜 경험과 지식이 있어야 창업 이후 마주칠 수 있는 다양한 상황에서 잘못된 판단을 내릴 가능성이 줄어든다고 생각한다. 다만 시대의 흐름도 따라갈 수 있어야 한다. 세상은 한참 앞장서서 가고 있는데 옛것을 고수하느라 시대를 역행해서는 곤란하다.

 

-장년창업의 선배로서, 비슷한 길을 걷고자 하는 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장년창업이 청년창업에 비해 불리한 점이 있다면 실패했을 때 재도전할 수 있는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리스크가 크다는 뜻이다. 결국 리스크 관리를 해야 하는데 장년창업에서 리스크를 줄이려면 자신의 경험과 전문성을 살릴 수 있는 분야에서 창업을 하는 것이 유리하고 창업 준비기간을 충분히 가져야 성공확률을 높일 수 있다고 본다. 사업자 간의 경쟁을 흔히 야생과 비교한다. 하지만 충분히 준비한다면 마냥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는 말을 꼭 하고 싶다.

 

 

“장년창업 위험하지만 승부를 걸 가치는 있다… 결국 판을 바꿔야” (박용규 아가도스 대표)

박용규 대표는 삼성과 LG 등 국내 대기업에서 소프트웨어 제품 개발을 했으며 HP코리아에서 IT 컨설팅도 했던 전문가다. 2000년 스타트업 창업 후 대기업에 피인수되어 한동안 직장생활을 했으나 다시 2014년 현재의 아가도스를 창업했다. 최근에는 누구나 자유롭게 플랫폼을 구성할 수 있는 ‘지능형 클라우드 웹·앱 자동저작 기술’을 선보이며 눈길을 끌었으며, 국내 기술기반 소프트웨어 업계의 최고 전문가 중 하나로 꼽힌다.

▲ 박용규 대표.

-두 번의 창업을 했다. 무슨 각오였나?

처음 창업을 했을 당시 느꼈지만, 대한민국 소프트웨어 사업이 아직 SI 모델을 벗어나지 못했고 나도 그렇다는 것을 느꼈다. 극복하고 싶어 연구개발에 매진해 대기업에 피인수되어 내부에서 많은 노력을 했다. 하지만 기업의 기본적인 DNA는 변하지 않았다. 물론 좋은 경험도 많았지만 나만의 길을 걸어가기 위해 두 번째 창업을 했다. 그것이 바로 아가도스다.

 

-창업할 때 가장 어려운 부분은?

아무래도 창업할 때, 특히 기술창업의 경우 리소스(Resource) 그 자체다. 휴먼 리소스도 있고 자본 리소스의 문제도 있다. 여기에 기술창업 자체의 문제점도 많다. 아가도스의 경우 플랫폼 기술에 기반을 두는데 솔직히 앱 서비스 등과 비교하면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이 그렇다.

이런 문제들이 축적되며 투자 생태계 등도 원만하게 작동하지 않는 분위기다. 기술 기반 스타트업의 경우 이런 문제가 더 심하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스타트업 창업은 곧 청년창업으로만 이어지는가?

스타트업 열풍 불었던 것 사실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청년창업에는 반대하고 있다. 물론 청년 스타트업이 긍정적인 측면은 있다. 하지만 심각한 문제는 현실과의 괴리감이다.

미국이라는 나라와 대한민국의 산업 프레임이 완전히 다른 상황에서, 미국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의 방식이 대한민국에 적절하게 통할 것이라는 전제가 잘못되었다고 본다. 더 심각한 문제는 잘못된 전제가 여과 없이 통하는 지점이다. 프레임이 다른 상황에서 프레임에 대한 체질개선 없이 의미 없는 소모전만 벌이는 분위기다.

냉정하게 말해서 청년창업은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본다. 그런데 우리는 청년 스타트업 창업에 대한 부분을 지나치게 미화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도 든다. 따지고 보면 모두의 문제다. 방법적인 측면에서 청년들에게 자금을 대출해 시드머니를 제공하는 등의 방법은 그리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청년들을 일찌감치 신용 불량자로 떨어트린 것 아닌가. 이런 상황에서 청년들은 스타트업 현장에서 단순한 앱 서비스나 만들며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다.

 

-장년창업이 보완이 될 수 있을까?

청년창업의 가치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분명히 위험한 장면이 연출되고 있고, 이러한 부분에 대한 근원적인 고민이 있다면 지금보다 더 좋은 환경이 구축될 것이라는 희망도 가지고 있다. 다만 장년창업의 중요성을 말하고 싶다. 지금 장년창업은 매우 어렵다. 당장 장년 창업가의 경우 정부 모태펀드를 받으려면 경영 운신의 폭이 크게 좁아진다는 점이 문제다.

정부 지원 및 연구과제 선정 등이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에만 집착하면서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고 본다. 너무 사업화 중심으로 몰려 있다. 아니, 스타트업 생태계가 지나치게 사업화 중심으로 쏠려 있다는 느낌이다. 연구개발과 소프트웨어에 대한 정부의 이해가 없다고 본다. 문제는 프레임이다. 판을 바꿔야 한다. 이런 것을 아무리 이야기해도 정부가 인식도 못 하는 점이 답답하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장년창업에 조언한다면

장년창업은 고무적이다. 다만 확실한 경쟁력이 있다면 모르겠지만, 사실 국내에서는 약간 위험하다. 특히 개발자의 경우 대한민국 소프트웨어 산업 프레임 자체가 철저하게 노동 집약적으로 구성되어 있어 문제가 크다. 사방에 벽이 있는 분위기라고 보면 된다.

다만 장년창업의 경우 축적된 인맥이 자산이다. 인적 네트워크와 자신의 노하우를 적절하게 녹여내는 방식을 고민하면 좋을 것 같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역시 근본적인 보완책이 아닌 것 같다. 노동 집약적 구조는 그냥 ‘사람장사’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장년창업 IT 스타트업이 그렇다.

다시 돌아가자면, 원천적인 본질의 문제는 소프트웨어 산업의 프레이밍이 변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장년 창업자를 조심스럽게 육성해 그들만의 장을 세워주어야 한다. 이런 것들은 청년들이 주도할 수 없다.

정리하자면 기술기반 스타트업, 특히 플랫폼 사업의 경우 국내 스타트업 육성정책의 사각지대나 다름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청년창업과 장년창업 육성의 판을 짜 봐야 분명한 한계가 있다. 장기적으로 우리도 SAP 모델이 나와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차라리 산업의 프레임을 새롭게 짜는 공격적인 전술도 필요하다고 본다. 모든 문제의 해결점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