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경시대의 인류는 무미건조한 반복의 학습이 곧 집단의 연속성과 이어졌다. 달과 태양의 움직임으로 사계절을 인지하고 농사를 지으면서 이러한 분위기는 완전한 삶의 규칙으로 굳어졌다. ‘봄이 되면 씨를 뿌리고 여름에 열심히 일을 하면 가을에 수확을 할 수 있고 겨울에는 다음 농사를 준비한다’는 규칙.

하지만 기술의 발전으로 시대는 변하기 시작했으며, 전통 농경사회의 미덕이던 경험의 가치도 크게 달라졌다. 이제 오래 전부터 내려오는 반복의 학습은 신기술에 자리를 내줬으며, 인간의 사회를 규정하던 업의 재정의도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경륜이 ‘구시대의 찌꺼기’로 돌변하는 순간이다. 인생 백세시대의 우울한 단면이다.

현실에 내몰린 장년

경륜이 새로운 기술의 변화에 자리를 내어주며, 노동시장의 변화도 극적으로 이뤄지기 시작했다. 이제 기업은 더 이상 장년의 노후를 보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남녀 직장인 635명을 대상으로 체감 퇴직연령에 대해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공기업에 근무하고 있는 직장인들이 스스로 체감하고 있는 퇴직연령은 평균 53.9세, 중소기업은 51.7세, 대기업은 49.8세로 나왔다. 백세시대라고 보면 일할 수 있는 시기가 딱 인생의 절반 수준인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장년층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벌어둔 재산이 많다면 여유로운 일상을 보내면 그만이다. 하지만 대부분이 치열한 생존의 터전을 벗어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지난해 11월 삼성생명은퇴연구소가 발표한 ‘한국인의 은퇴 준비 2016’에 따르면 한국의 노후는 위기 그 자체다.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노후 소득을 위한 장기저축 비율은 40대에서 43%에 불과했으며 50대도 54%에 그쳤다. 이를 은퇴점수로 환산하면 종합지수 56점, 재무지수 57점, 건강지수 55점, 활동지수 50점, 관계지수 58점에 불과하다. 모두 ‘위험’군에 속한다.

 

윤원아 삼성생명 은퇴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외환위기 이후 조기퇴직이 일반화되었으나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노후의 소득을 준비하는 사람이 적다”며 “특히 베이비부머 세대인 50대는 경제활동기에 노후 준비의 필요성을 미처 깨닫지 못해 타격이 크다”고 전했다.

결국 두 가지 선택이 가능하다. 바로 재취업과 창업이다. 직장인 전용 SNS 블라인드(BLIND)를 서비스 중인 팀블라인드가 자사 서비스를 이용하는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언제까지 일하고 싶은가’라고 묻자 전체 57.9%에 달하는 응답자가 60세 이후에도 경제활동을 지속하길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16%는 70세 이상까지 경제활동을 원한다고 응답하기도 했다.

재취업부터 보자. 현실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카드일까?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지난해 40세 이상 중장년 1032명을 대상으로 재취업 관련 조사를 한 결과 재취업을 원하는 구직자 43%가 준비기간 없이 퇴직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리고 이 중 37%는 퇴직 후 1년 이상 취업하지 못했다.

 

재취업에서 업무 연관성을 찾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지난해 재취업에 성공한 40세 이상 중장년 172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재취업 중장년의 직무이동 분석 조사’를 보면 재취업에 성공한 중장년 약 40%는 이전 업무와 무관한 새로운 분야로 전직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무직 경력자의 경우 4명 중 1명꼴로 생산현장직으로 갔다는 점도 확인됐다. 경비·단순노무직 재취업자의 연령대는 50대가 48.0%로 가장 많았으며, 60대가 37.4%, 40대는 14.6%인 것으로 조사됐다.

배명한 전국경제인연합회 중소기업협력센터 소장은 “50대는 퇴직자가 상대적으로 많고 단순 노무직 분야에서도 일할 기회가 주어지고 있으나 60대는 고령자 기피풍조로 이 분야에서도 50대에게 밀리고 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나아가 “기술교육 이수나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그렇다면 창업은 어떨까. 중소기업청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신설법인은 3만3339개에 달한다. 전년 동기 대비 3.9% 증가한 수치며 동기 기준으로는 역대 최고라는 설명이다. 3만3339개 신설법인을 살펴보면 도소매업 6760개, 제조업 6698개, 건설업 3725개, 부동산임대업 3364개 순이다.

신설법인의 주요 연령층을 살펴보자. 연령별 분포는 대표자 연령별로 40대(1만2118개), 50대(8774개)로 나타났다. 전년 동기 대비 50대(438개), 60대(546개)를 중심으로 대부분 연령에서 증가한 가운데 50대 제조업(270개)이 가장 크게 증가한 것으로 확인됐다. 정리하자면 창업 열풍이 강하게 몰아치는 가운데 장년층을 중심으로 신설법인의 숫자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는 뜻이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정부는 ‘일할 수 있는 사람’의 범위를 조절하기에 이르렀다.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12월 ‘55세 이상인 사람’을 의미해 온 ‘고령자(高齡者)’ 명칭을 ‘장년’으로 바꾸는 ‘고용상 연령차별금지와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을 심의·의결했다. 지금까지 50살 이상을 준고령자, 55살 이상을 고령자로 구분한 것을 크게 바꾼 셈이다. 나아가 고용노동부는 장년의 인생 이모작 사전 준비 지원을 위해 정부나 사업주의 생애경력설계서비스 제공 근거 규정을 마련했고, 유사한 기능을 하는 각종 장년취업지원기관을 정비해 재취업을 희망하는 장년들에게 체계적이고 전문화된 취업지원·직업능력개발·생애경력설계서비스 등을 제공되는 내용도 포함시켰다.

이러한 일련의 행보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백세시대가 열렸지만 경기침체로 평생직장의 개념은 사라졌고, 그 간극에서 재취업과 창업 열풍이 장년층의 당면과제로 부상했다는 것을 뜻한다.

문제는 이마저도 불확실한 경쟁에 내몰린다는 점이다. 당장 중소기업청의 신설법인 증가 추이만 봐도 ‘뜨거운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장년창업과 스타트업을 연결하라

장년과 창업의 연결고리에 집중하면 무엇이 연상되는가? 다양한 답이 나올 수 있지만 골목상권이라는 키워드에 힘이 실린다. 중소기업청이 발표한 올해 1분기 신설법인 현황 자료에 그대로 보인다. 이에 따르면 본 기간 신설된 법인의 주요 업종 중 도소매가 20.4%로 가장 많았으며 그 뒤를 제조가 19.7%를 차지했다.

새로운 전환점이 필요하지 않을까? “우리가 코딩을 해도, 반도체를 만들어도, 콘텐츠 사업을 해도 은퇴 후에는 누구나 치킨집을 할 것이다”는 명제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뜻이다. 공학계열 종사자가 은퇴 후 자신만의 작은 카페를 개업해 인생을 즐기는 것도 좋지만, 이를 원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다른 길이 마땅히 주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스타트업이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비록 벤처와 중소기업, 스타트업의 경계가 모호하지만 자신의 능력과 노하우를 기술의 발전으로 풀어내고, 이를 바탕으로 한국 경제의 새로운 흐름을 주도하는 것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여기서 스타트업 생태계를 조명해 보자. 지난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혁신센터는 스타트업 부흥을 위해 글로벌 ICT 기업과의 접점을 마련하는 방법론이 핵심이었다. 센터에 입주한 스타트업은 안정적인 지원을 받는 한편 대기업과의 연계 플레이에 나설 수 있었으며, 이를 활용해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식이다.

그 과정에서 정부는 창업을 곧 일자리 문제로 해석하기 시작했다. 상황이 심각했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부터 올해 1분기까지 기업 채용인원은 30만4000명으로, 전년 동기와 비교해 다소 늘어났으나 2011년 이후 정체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통계청이 발표한 고용동향에 따르면 올해 2월 기준 실업자 수가 지난달보다 33만 1000명이 증가한 135만명에 달해 실업자 수가 IMF 이후 16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한 마디로 ‘겨울’이다. 조세재정연구원이 인용한 OECD 분기별 고용동향 자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OECD 회원국 전체 고용률 평균은 66.8%에 도달해 전분기 대비 0.3%p 상승했으나 한국의 고용률은 65.9%로 전분기와 차이가 없었다.

다만 창업을 지나치게 일자리 문제의 ‘해결적 측면’에서 접근하다 보니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이 생겼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일부 청년들이 ‘도피처’로 창업을 택하는 사례가 나왔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이들을 ‘체리피커’라 부르며 경계하고 있으나, 이 역시 창업을 새로운 세상을 개척하는 인생의 승부수가 아닌 일자리 문제 해결의 패러다임으로 해석한 정부의 잘못이 크다는 것이 중론이다.

여기서 장년창업과 스타트업의 연결고리를 이어보자. 선뜻 교집합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중론이다. 정부 및 기업의 창업지원이 대부분 청년층에만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창조경제혁신센터를 통해 추진되는 다양한 지원정책을 비롯해 주요 대기업 및 보육지원단체의 핵심은 대부분 청년이다. 심지어 정부는 지난해 12월 발표한 세법시행령 개정안을 통해 16세 이상 29세 이하 청년이 창업을 할 경우 최초 3년간 소득세 및 법인세 75%, 이후 2년간은 세금의 절반을 깎아주는 정책을 발표하기도 했다. 당장 올해 1월부터 창업하는 사람부터 적용되고 있으며 군대복무 기간을 빼고 나이 기준을 고려하는 꼼꼼한 지원 정책으로 눈길을 끌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재취업이 아닌, 스타트업 창업을 꿈꾸는 장년층의 입지는 더욱 좁아지고 있다. 물론 스타트업 창업지원이 모두 나이 기준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장년은 장년만의 특화된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청년과는 또 다른 경쟁력으로 창업 출사표를 던져야 하는 특수한 상황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최근에는 장년창업에 관심을 둔 육성단체가 조금씩 등장하고 있으나, 이에 대한 정보도 잘 알려지지 않았고 상대적으로 탄탄한 내실을 자랑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결국, 어려운 상황에서 나름의 무기를 탑재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