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개봉한 영화 <인턴>(The Intern)은 수십 년 직장생활을 마치고 은퇴한 70대 남자 벤(로버트 드니로 분)이 젊은 스타트업 CEO인 줄스(앤 해서웨이 분)와 만나 벌어지는 일을 그렸다. 영화에서 벤은 젊고 탄력적인 스타트업 대표인 줄스의 멘토로 활약하며 현인의 아름다운 노하우를 전수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를 보고 많은 사람들은 스타트업이라는 젊고 패기 넘치는 조직과 인생의 연륜이 만나는 절묘한 컬래버레이션에 주목하기도 했다.

천천히 생각해보면 아름다운 일이다. 직장에서 이룰 것 다 이룬 사람이 패기로 뭉친 스타트업에 합류해 자연스럽게 자신의 노하우를 풀어낼 수 있는 것. 당연히 영화는 해피엔딩이다.

하지만 인생은 실전이다. 영화 <인턴>에서는 대기업에 근무했던 벤이 지혜로운 ‘구루(Guru, 인생의 스승)’로 등장해 모두가 행복한 삶을 끌어냈으나, 현실에서는 벤과 같은 사람도 성공한 사람이며, 심지어 모두가 행복하지도 않다. 거칠게 말하자면 영화 <인턴>은 마스터베이션이다. 일종의 판타지며, 현실을 제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 영화 인턴의 한 장면. 출처=영화 인턴

실제로 어떤가. 인생은 백세시대라는데 평생직장의 개념은 사라지고 있다. 기업이 개인의 인생을 책임지지 못한다는 것은 곧 경제 저성장의 기조가 대세가 되어 있다는 뜻이며, 자신의 길은 자신이 개척해야 한다는 절대적 명제와 마주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평범한 중장년은 말 그대로 삶의 위기에 몰렸다. 인생은 길어지는데 은퇴 시기는 빨라지고 있다. 살림은 어려워지고 팍팍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들은 아들 뻘인 청년들과 치열한 경쟁에 나서며 지금도 매 순간 아슬아슬한 삶의 나선을 방황하는 중이다. 제2의 인생이라는 수식어가 유독 불편하고 나태한 키워드로 보이는 이유다.

방법이 없을까. 벤처럼 젊은 스타트업에 인턴으로 입사해 낭만적인 인생 2막을 시작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치열한 세상에서 이런 방식이 현실로 구현되기 어렵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재취업과 창업을 고려해야 하지만, 또 이러한 선택은 철저히 개인의 것이지만 이러한 사적 영역을 대승적인 방법론으로 풀어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여기서 스타트업의 가치에 집중하는 것은 어떨까. 벤처럼 스타트업에 입사해 청년의 멘토로 활동하는 연륜 있는 구루로 활동하는 것도 좋지만, 그러한 역량을 온전히 나만의 새로운 인생을 위해 창출할 수 있다면? 축 늘어진 어깨로 퇴사 조치를 받은 후 사회에서도 퇴물로 낙인찍혀 쓸쓸하게 거리를 방황하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방식으로 또 한 번 세상에 도전장을 내미는 것. 기술과 새로움에 대한 갈망을 통해 청년들‘만’ 날뛰는 기회의 공간에서 자신의 이름을 새기는 것 말이다.

▲ 영화 인턴의 한 장면. 출처=영화 인턴

물론 이 역시 마스터베이션이며 판타지다. 설상가상으로 정부의 창업 정책은 대부분 청년층에만 집중되어, 상대적으로 장년창업에 대한 지원은 부족한 편이다. 장년창업 자체를 새로운 국가 경제의 동력으로 생각하지 않고, 사회 보호적 인프라로만 규정한 우리의 패착이다.

이제 달라져야 한다. 창업의 개념에도 새로운 시각을 도입해야 한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창업=소규모 골목상권’으로 규정하는 경향이 있다. 기업에서 정년퇴직한 후 자신만의 가게를 차려 소소한 일상을 즐기는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장년창업이다.

하지만 이러한 장년창업에 대한 기대감은 어려워진 경제 사정과 연결해 생각할 필요가 있다. 노후준비에 대한 논란은 차치한다고 해도, ‘소규모 골목상권이 핵심인 장년창업이 과연 정상적일까?’라는 문제의식이 있어야 한다. 개인의 호불호에 따라 갈리지만, 은퇴한 장년과 국가 경제적 측면 모두 고려해야 한다는 뜻이다.

생각해보자. 베이비부머 시대를 지나 이제 많은 사람들이 IT 및 기술 관련 직종에 종사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은 은퇴 후 전혀 새로운 창업에 나서는 경우가 많다. 긍정적일까? 이러한 전제가 긍정적인 현상이 되려면 별도의 선택지가 있어야 하지만, 안타깝게도 상황은 전혀 그렇지 않다.

여기에서 스타트업 열풍에 이은 기술기반 중심의 경제 시스템 재편 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장년의 노하우가 IT 및 신기술 기반의 패기 넘치는 스타트업 열풍과 만난다면 어떻게 될까? 기술을 잘 알아도, 혹은 잘 몰라도 상관이 없다. 다양한 노하우를 패기 넘치는 창업열풍의 중심으로 끌어올 수 있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역으로 환상에만 존재하는 영화 <인턴>을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해야 한다. 장년층 창업이 늘어나는 지점을 인생 2막으로 끌어내는 한편, 궁극적으로 벤과 줄스의 컬래버레이션을 현실에서 철저하게 구현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창업은 등 떠밀려 골목에 차리는 요식업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세월의 연륜을 최첨단의 스타트업에 담아보자는 뜻이다.

물론 쉬운 작업이 아니다.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하며 무엇보다 장년층의 기술에 대한 이해도가 비약적으로 높아져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다양한 지원정책의 방향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하는 부담도 있다. 장년층이라는 용어에 대한 재정의와, 이를 유연하게 끌어낼 수 있는 지속적인 관심도 필요하다.

게다가 장년창업의 실패는 청년창업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리스크가 크다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 미래를 위한 비전을 위해 ‘실패를 각오하고 충돌하는’ 청년창업과는 약간 다른 측면의 접근이 필요한 이유다. 최소한의 인프라와 교육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하지만 신중해도, 답을 찾는 것은 별도의 일이다. 찾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