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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엽의 낭만적 기업회생 이야기] 루이자 메이 올콧 <작은 아씨들>
   
 

부정수표단속법으로 아버지께서 구속 되신 날, 나는 <작은 아씨들>을 읽었다. 서울 구치소 민원실의 붉은색 디지털 접견 번호가 전광판에 나오길 기다리면서. 왜 수많은 책들 중에 하필 <작은 아씨들>이었을까. 그 억장이 무너지는 상황에서 달달한 책이 과연 눈에 들어왔을까.

아버지가 안 계셔도 이렇게 오순도순 지낼 수 있구나, 는 것을 책을 통해 확인하고 싶었나보다. 한 집안의 가장이 하루아침에 없어지는 상황. 그것도, 법원에서 선고를 받은 그 즉시, 바로 그 자리에서 입던 옷 그대로, 저 먼 곳으로, 잡혀 가는 상황. 그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을 때, 나는 절망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능함과, 아버지께서 구속이 될 가능성을 배제했다는 무관심과, 그럼에도 뭘 해야 할지 모르는 무지함을 인정해야 하는 순간이었다.

저 멀리, 푸른 죄수복을 입으러 떠나시는 아버지를 보며 가족 어느 누구도 무엇 하나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집안은 분열되고 갈등이 일어난다. 책임 공방이 일어난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그러한 갈등이 전혀 보이질 않는다. 오히려 소소한 갈등을 낭만적인 따스함으로 봉합된다. 나에게는 그러한 서정적이고 따사로운 봉합이 필요했는지 모르겠다.

아버지께서 구속 될 당시, 나는 아버지와 갈등이 있었다. 5층 건물 전체를 회사 사옥으로 다 쓰다가 어느 날 갑자기 쪽방 신세를 하니 얼마나 짜증이 나겠는가.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도로가 훤히 보이는 넓은 방에 음악을 크게 틀어 놓는 버릇이 있던 나는, 그 시간에 시스템 다이어리를 체크하며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어제 실적과 오늘 예상 실적을 체크하시며 담당자들을 면담하고, 미리 미팅 계획을 세우는 준비를 50년간 하셨기에, 아침에 여유롭게 음악을 듣는 것이 사치라고 느끼셨다. 이런 일상의 작은 일들 하나하나가 서로에게 가시가 돋친 괴물을 만들었다. 내가 혼잣말을 하는 것도, 내가 어쩌다 흥얼거리며 리듬을 타는 것도, 어쩌다 핸드폰으로 수다를 떠는 것도, 왠지 업무에 집중하지 않는 것 같아 뿔 달린 괴수가 되어 공격했다.

나는 직원 없이 회사 일을 하다 보니, 매일 매일이 야근이었고, 집에서는 해외 거래선 전화까지 챙겨야했다.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다가도 해외에서 걸려오는 전화를 받기가 부지기수였다. 일에 있어서 집과 회사의 구분이 모호해졌다. 아침에 정시에 출근해야 ‘하는 것’도, 정시에 퇴근해야 ‘하는 것’도, 일과 시간에 집중해서 일해야 ‘하는 것’과 같은 기존 업무 스타일은 더 이상 적용되지 않았다. 갑자기 닥친 수많은 일들을, 더 늦기 전에, 그때그때 수습하고, 모자라면 채우고, 당장 눈앞에 떨어진 급한 불부터 끄다보니, 업무에 순서도 없고, 일의 경중도 없어보였을 것이고, 모든 것이 어수선한 가운데 진행되었다. 상황에서 오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이야기한다면 변명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의 상황은 늘 그랬다. 100여명의 직원을 거느린 한 조직의 임원에서, 졸지에 바닥을 치며 하나씩 다 해결해야하는 개미 노동자로의 변신은 내가 받아들여야 하는 운명이었다. 아버지께서는 알아주시길 바랬다. 일을 잘하지는 않지만, 요령을 부리지 않았고, 피하지 않고 대했기에 나름, ‘열심히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면 적어도 아버지께서는 열심히 한다고 칭찬해 주시기를 바랬던 것 같다. 아니면, 그동안 ‘따로’ 목욕을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함께’ 목욕을 하게 된 기분이랄까.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알몸을 보여준 황당함이랄까. 그래도, 그런 급작스러움에도 내가 바랬던 것은 칭찬과 격려였던 것 같다. ‘아. 우리 막내. 너무 애쓴다.’는 따스한 말 한마디. 너무 과분한 바램이었을까. 갑자기 바뀌어버린 환경에 적응하는 방법이 이렇게 다를 줄은 상황이 바뀌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낯선 환경. 침울한 분위기. 입소하신 첫 날, 아버지의 마음은 어떠셨을까. 평생을 일구어 온 사업에게서 받은 보상이 고작 한 평이 모자라는 시멘트 바닥에 이름조차 불리지 않고 익명의 수번이 불리는 현실에 얼마나 절망하셨을까.

이 책의 첫 부분은 온 가족들이 있는 가운데, 아버지의 편지를 읽어주는 것으로 시작된다. 연세도 많으신 아버지께서 목사님 신분으로 전쟁에 참여하신 것을 가족들은 모두 다 자랑스러워한다. 아마도 가정의 경제적인 지원을 위해서 전쟁에 자원입대 하신 것이 아닌 것이 아닌가 싶다. 한 집안의 경제를 짊어져야 하는 ‘아버지’라는 의미는 그만큼 무겁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네 딸을 뒤로, 언제 죽을지 모를 전장을 향해 처벅처벅 걸어가는, 소설 속 아버지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아마도 그는, 경제적으로 무너져내려가는 집안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전쟁에 참여하는, 극단적인 선택을 감행했을 것이다. 그런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라도 하는 듯, 네 딸들과 어머니는 눈이 내린 한 겨울 날 옹기종기모여 따뜻한 난로가에 앉아, 아버지의 편지를 함께 읽는다.

사랑과 입맞춤을 아이들에게 전해주오. 낮에는 그 아이들을 생각하고 밤에는 아이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늘 딸들의 사랑 속에서 크나큰 위안을 얻고 있다고 말해주오. 아이들을 다시 볼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일 년이 너무 길게만 느껴지지만 힘든 시간들이 허사가 되지 않도록 모두 열심히 노력하며 기다릴 것이라 믿소. 아이들은 내가 했던 말들을 잘 기억할 것이오. 당신에게 착한 딸이되고 자신의 책임을 충실히 다하고, 마음속의 적과 용감히 맞서고, 아름답게 자신을 가꿈으로써 내가 돌아갔을 때 우리 작은 아씨들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더 싶어지길 바라오. (p.33)

회사가 부도가 나고, 기업회생에 들어가자, 처음 몇 달은 나에게 불면의 시기가 찾아왔다. 밤에 잠을 이룰 수 없게 되자, TV를 켜고 의미 없는 시간을 몇 시간째 보내는 일들이 많아졌다. 멍청하게 눈을 고정한 채 몇 시간동안 흐리멍텅하게 TV를 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새벽이 되곤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이렇게 인생을 의미 없이 보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짜피 이 시기는 지나게 될 것이고, 이 순간은 다시 돌아 올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라는 생각에 도달하게 된 것이다. 나는 무작정 노트북을 켜고 무언가를 쓰기 시작했다. 무언가를 쓰고 나면 가슴이 후련해지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처음에는 무엇을 써야 할지, 어떻게 써야 할지 몰랐지만, 이내 내 마음의 소리를 찾아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내 자신과 깊은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낮에는 법원을 가서 채권단과 힘겨운 싸움을 하고, 때로는 턱없이 높은 ‘법’앞에 한 숨 쉬더라도, 밤에 터벅터벅 집에 오는 길은 그리 외롭거나 힘들지 않았다. 지하철에서 만나는 첫째 딸 메기의 책임감과 허영심에 잠시 웃음을 지을 수 있었으며, 둘째 딸 조 덕택에 글쓰기의 매력에 잠시나마 동일시 할 대상을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내려야 하는 교대역에서 잠시 개찰구를 벗어나기 전 의자에 앉아 셋째 딸 베스를 만났다. 그녀는 조용하고 수줍음이 많지만 헌신적이어서 사람들에게 늘 귀여움을 받는다. 또한 훌륭한 피아니스트이기도 하다. 그녀가 선홍열로 늘 아픈 것이 가슴 아플 따름이다. 막내 딸 에이미는 가장 귀엽고 사랑스럽지만, 경제적인 관념이 없고 투정부리기를 좋아하는 등, 여성으로서 갖추어야 할 미덕과 단점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입체적인 성격이다.

나의 괴로운 현실과 맞닿아 있으면서도 아프거나 슬프지 않게 지속적으로 읽어내려 갈 수 있는 힘을 이 소설을 나에게 부여해 주었다. 전쟁에 계신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네 딸들의 모습 속에서 구치소에서 푸른 죄수복을 입고 계시면서 가족의 품을 그리워하실 아버지가 오버랩 되었고,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서 이 책 저 책 보고 싶은 욕망을 억누르며 오직 글쓰기에 매달리는 둘째 딸 조의 모습을 통해서 노트북을 켜고 내 가슴 속 응어리를 덜어내고자 자판기를 두들기는 나의 모습을 투영시켜 보았다. 비록 아버지의 부재로 인한 자리가 <작은 아씨들>에서는 오순도순 정다운 모습으로 그려졌지만, 우리 가족의 현실은 비틀비틀 갈라진 사시나무처럼 갈라져갔다는 것만 다를 뿐이었다. 그러나 소설이 반드시 비판적 시각이나 시대적인 고찰이 있어야 된다고 누가 그랬는가. 나는 오히려 그 누구보다도 편안함을, 그 누구에게서 받지 못한 위안을 <작은아씨들>에게서 받았다.

<작은 아씨들>을 다 읽은 것은 교대역 대합실에서였다. 다 읽은 책을 손에 들고 집으로 향했다. 평소와 다름없이 우편함을 본 순간, 구치소에서 처음으로 보낸 아버지의 편지가 도착했음을 알아차렸다. 나는 그 편지를 이 책의 표지 안쪽에 따스하게 감싸 넣었다.

(주)아이메디신 이사. 금수저로 살아온 그에게 갑자기 닥쳐온 가족 기업의 부도는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었다. 남다른 감수성으로 일과 생활의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자 한다. 칼럼 <낭만적 기업회생 이야기>은 경영일선에서 만난 일과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문학과 함께 공존하고자 하는 그의 행보이다. 저서로 <파산수업> <구본형의 마지막 수업>이 있음.

정재엽 (주)아이메디신 이사, <파산수업> 저자  |  expert@econovill.com  |  승인 2017.06.12  14:2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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