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유투브에서 윤석철 교수의 ‘삶의 정도’에 대한 이야기를 접했다. 지인이 올려서 보게된 강민구 전 부산지방법원장의 이임사 말미에 담겨있었다.

‘혁신의 길목에 선 우리의 자세’라는 주제의 강연이었다. 판사라고하면 왠지 딱딱한 법전과 무표정 그리고 검은 가운이 떠오른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프레임에 갖힌 느낌이 든다. 하지만 이 분은 달랐다.

강민구 전지법원장은 현재 대한민국 법원이 사용하는 소프트웨어를 기획하고 개발해 관계자들의 업무 편의성을 높였다. 이 솔루션은 다른 나라의 법원이 채택해서 사용하고 있다. 스마트한 한국의 법률시스템으로 세계에 위상을 높인 전문가이다.

윤석철 교수의 관점에서 보면 강민구 전 지법원장의 경우 IT는 수단매체였다. 목적함수는 업무의 편의성과 자신과 법원행정 서비스의 고도화 이었을것이다. 이 동영상 강의를 약 100만명이 보았다고한다.

강연후 어느 분이 “ 가장 영향을 준 책은 어느 책인가?” 라는 질문에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후 40여년간 읽은 책중 한 권을 추천한다면 윤석철 교수의 ‘삶의 정도’이다. 10번을 읽었다.“라고 답변했다.

이 답변 한마디에 출판계에 매우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몇 년간 팔리지 않던 ‘삶의 정도’가 베스트 셀러 반열에 오른 것이다.

강 지법원장이 오프라 윈프리가 된 셈이다. 나도 교보를 방문해서 찾아보았지만 없었다. 마침 지인의 서재에 꽃혀있는 것을 보고 실례를 무릅쓰고 빌렸다.

하루 만에 다 읽었다. 윤 교수는 독일유학로 시작해서 자연과학(물리)와 미국에서 경영학을 통섭한 인재답게 삶의 정도를 공식화했다. 학문적으로도 유럽의 경험론과 미국의 합리론이 융복합된 보기드문 분이다.

인생의 공식을 목적함수,수단매체로 단순화 한 것이 필적할 만하다.

감히 사족을 단다면 인생은 ‘보다 높고 큰 목적을 이루기 위한 더 나은 방법론 찾기’ 또는 ‘더 나은 방법으로 멋진 꿈을 이루어내기’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책을 읽으면서 내내 도대체 사람은 목적일까? 수단일까? 고민했다. 잠정적으로 내린 결론은 사람은 수단이면서 목적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사람만이 유일하게 양면적 가치를 갖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즉, 어떤 사람이 지니고 있는 기술, 정보, 지식, 지혜등 재능은 수단이다.

그러나 사람 자체는 목적이다라는 관점이다.

기업의 경영에서 생존부등식은 원가보다 가격이, 가격보다 가치가 더 중요하다는 공식이다. 기업이 이익최대화라는 목적함수보다 가치를 제공하려는 생존부등식이 작동할 때 더욱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는 논리이다.실제 근거도 제시하고 있다.

그는 생존부등식을 만족시키기 위한 수단매체로 고객의 필요 아픔 정서를 공감하는 감수성과 상상력 그리고 탐색시행까지 세단계의 과정이 있다고 밝혔다.

시작은 소비자에 대한 공감능력이다.

그는 생존방식의 네가지 상한에서 ‘상생’ 즉, 나도 너도 모두가 사는 윈윈을 추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이 대목에서 나는 인생의 사칙연산을 생각해보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더하기(+)와 곱하기(×)는 강하다. 빼기(―)도 어렵지만 해낸다.

그러나 나누기 (÷)가 약하다. 노사를 포함한 인간관계에서 실망하게되는 이유이다.

마지막으로 우회축적이라는 개념을 새롭게 알게되었다. 우회축적은 결과가 나오기까지 간접적인 접근방식이 요구되며 반드시 시간의 축적이 필요하다는 개념으로 이해했다. 우회축적의 구성요소는 장기적 비젼, 도구, 단기적 희생이다.

‘삶의 정도’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함께 더불어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한다.

한국인은 지나치게 서열화,등급화 되어있다. 클래스가 높을 수록 어울리기 꺼려하는 경향이 있다. 급이 높아져야 잘 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급을 높이기 위해 노력한다.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왜 그런 목적함수를 가지게 되었는지, 수단매체는 정당한지. 그리고 그 이후에 어떠한 공식으로 살 것인지에 대한 방향성이 없다면 정작 잘 살고 있는것인지 반문하고 싶다.

이 질문을 한때 강남에서 잘나가던 순실님에게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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